총선 압승으로 절대 과반 의석을 차지한 터라 실제 강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일단은 원 구성 협상에 주도권을 쥐려는 포석이란 분석이 많다.
◇ "야당과 협상할 일 아니다"
민주당 윤호중 사무총장은 27일 당선인 워크숍 직전 열린 당 비공개 최고위원회 뒤 "상임위원장 배분 문제는 야당과 협상할 일이 아니다"라며 "절대 과반 정당인 민주당이 상임위원장 전석을 갖고 책임 있게 운영하는 것이 민주주의 원리에 맞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야당에선 즉각 반발했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난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는 "지금 국회를 엎자는 것이냐. 힘으로 밀어붙이면 하라고 하십쇼. 아니면 일당독재로"라며 발끈했다.
그러자 윤호중 총장은 "국회 운영을 책임지겠다는 것이지 국회에서 처리하는 모든 안건에서 소수당의 의사를 무시하고 독주독단하겠다는 건 아니다"라며 살짝 수위를 낮췄다. 그러면서도 "상임위원장 배분 문제를 협상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는 게 당의 분명한 입장"이라고 분명히 했다.
김태년 원내대표 역시 "우리가 모든 상임위에서 과반이 가능하다. 과거 150여석일 때 관행을 (야당에) 말하지 말라는 게 사무총장의 말"이라며 힘을 보탰다.
◇ 기선제압? "협상의 기술"
사실 이런 논의는 당내 일각에서 예전부터 있어왔는데 공개석상에 드러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것도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원내대표 오찬회동 하루 전, 대야(對野) 관계 악화를 부를 만한 발언이라 정치권에선 다소 의외로 받아들여졌다.
왜 이런 엄포가 나왔을까.
우선은 '기선제압' 측면으로 분석된다.
이를 두고 우상호 의원은 "협상의 기술"이라고 평가했다. 과거 자신이 원내대표를 맡았을 때도 원 구성 협상 중 국회의장 선거를 표결에 부치자는 말로 상대를 압박했다고 전했다.
이런 전략이 가능한 건 이번 선거에서 여야 균형이 무너지고 민주당이 절대 과반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상임위원장은 국회법상 상임위원 표결로 결정하는데 이론상 과반을 차지한 민주당이 18개 위원장을 모두 가져갈 수 있다.
87년 민주화 이후 세워진 13대 국회 이후 통상 여야는 의석수를 기준으로 위원장 자리를 각당 중진 의원에게 배분했다. 상임위원 숫자가 비슷한 상태에선 여야 합의 없이 어떤 결정도 내릴 수 없기 때문에 다수당은 파행을 피하고자, 소수당은 권력 견제를 내세우며 회의를 주재할 위원장을 나눠가진 것이다.
다만 우 의원은 "다수당은 원래 그렇게 말하게 돼 있고 그게 압박이 된다"면서도 "서로 신뢰가 있기 때문에 결국 합리적으로 생각할 것"이라며 실제 독식으로 이어지진 않을 수 있다는 듯한 여지를 남겼다.
◇ 지도부 회의서 격앙된 반응
전날 통합당에서 "상임위원장 배분이 11:7로 정해졌다(김성원 원내수석부대표)"는 식으로 발표한 것도 민주당 지도부가 강경한 입장을 내놓는 데 한몫했을 것으로 분석된다.
민주당 비공개 최고위에서는 "원내지도부가 자리를 걸고 상임위원장 독식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격앙된 반응까지 나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최고위 직후 윤호중 총장이 "(야당이) 과거 미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몇 석은 자기들 것이다'라고 얘기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 데는 이런 배경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물론 교섭단체 협상을 담당하는 원내지도부가 아니라 당 사무조직을 관할하는 사무총장이 입장을 공식화한 건 이례적이다. 이에 관해 당 관계자는 윤 총장이 이해찬 대표 최측근이라는 점에서 "대표 의지가 많이 반영된 것"이라고 전했다.
윤관석 정책위 수석부의장은 "윤 총장 발언이 단순 협상용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한 4선 중진 의원도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미통당에 '지나치게 욕심부리지 마라'라고 엄포 놓은 차원"이라고 평가했다.
블러핑(bluffing·허풍 전략)이 아니라 정말 상임위를 독식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관례나 견제의 원칙보다 책임 정치를 강조하는 원내지도부(김영진 원내수석부대표) 기류가 이를 뒷받침한다.
그러나 이런 극단적 방안은 당내에서도 이견이 상당하다. 다수결 원리와 국회법만 이렇게 자꾸 따지다 보면 의회 정치는 지난 20대 국회처럼 실종될 우려가 크다는 지적이다. 총선에 불출마한 한 의원은 "그렇게 되면 서로 막가게 될 것"이라고 경계했다.
더구나 상임위원장 독식 체제를 깬 건 과거 민주당 계열 정당의 요구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비판이 불가피하다.
해외 사례가 많지 않다는 점도 부담이다. 한국 의회발전연구회 등에 따르면 미국, 필리핀, 남아프리카공화국, 프랑스 등을 제외하면 상임위원장을 의석수를 기준으로 여야에 분배하는 나라가 대체로 우세하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최근 발행한 보고서에서 이런 점들을 고려해 "협의체적 정치관행을 다수제로 바꾸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