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뉴스]성범죄 '진지한 반성'→'자동문 감형', 책임은 판사몫

문제적 감경요소들, 새 양형기준에도 포함 전망
"양형기준 '강화'만이 능사 아냐" 지적도

(사진=자료사진)
군대 내에서 상관이 지위를 이용해 성범죄를 저지른 경우 가중처벌토록 하는 군형법상 성범죄양형기준이 지난 18일 대법원 양형위원회에서 확정됐다. 'n번방' 사태로 디지털 성범죄군(가칭) 양형기준이 매 회의 때마다 주목을 받았던 것에 비하면 조용하게 통과된 셈이다.

이번 통과까지 양형위는 유관기관과 시민사회의 의견을 수렴해왔지만 가장 결정적으로 문제가 된 몇 가지 요구사항들은 '미처리' 상태로 남겨둘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는 올 연말 확정될 예정인 디지털 성범죄군 양형기준에서도 반복될 것으로 전망된다.

◇"군대·디지털 넘어 전체 성범죄 양형기준 개정 필요 사안"

지난해 말 군형법상 성범죄 양형기준 초안이 나온 뒤 올 초 한국여성변호사회와 한국성폭력상담소 등 유관기관들은 비판적 의견을 전달했다.

양형인자 중 일반 감경요소인 △'진지한 반성'의 남용을 막을 방법을 마련하라 △피고인의 평판과 업적을 감형사유로 삼아선 안된다 △초범이거나 사회적 유대관계가 분명한 점 등을 집행유예 기준에서 제외하라 등이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요구들은 이번 군형법상 양형기준 설정에 반영되지 못했다. 특정 범죄군의 양형기준에서만 변경할 수 없는 문제라는 이유에서다. 형사처벌 전력이 없거나 사회적 유대관계가 분명한 점 등은 다른 강력범죄의 양형기준에서도 참작 사유로 포함돼 있는 상황이다.

양형위원회 관계자는 "해당 논의는 군형법상 성범죄나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 설정의 취지에서 다소 벗어난 부분"이라며 "다른 범죄군과의 균형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별도 논의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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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하반기 재논의 예정인 디지털 성범죄군 양형기준에서도 상황은 비슷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성폭력상담소 등의 시민단체는 기존 성범죄 사건에서 법원이 △진지한 반성 △사회적 유대관계 △피고인의 평판 △주취 △초범 △친족관계에서의 부양 사실 등을 감형요인으로 삼는 것과 관련해 비판적 의견을 내왔다. 이는 디지털 성범죄군 양형기준 단위에서만 논의할 수는 없는 내용이라는 것이 양형위의 시각이다.


지난해 5월 출범한 제7기 양형위원회의 임기는 내년 5월까지 2년이다. 양형위는 출범과 함께 2년간 검토할 과제를 선정하는 데 이 때 정해진 주제에 위의 지적사항들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양형위 관계자는 "피해자와의 합의를 감경요소로 삼는 부분과 관련해서는 7기 양형위가 전체 양형기준 측면에서 재검토할 예정"이라며 "다른 지적사항에 대해서는 이번 회기 내 검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묵시적 지시도 가중처벌?'…"법관 판단의 영역"

또한 양형기준이나 관련법이 재정비돼 지나친 솜방망이 처벌을 걸러낼 수 있게 되더라도, 법관 개개인의 인식이 성범죄자에 대한 처벌수위를 결정적으로 가르는 상황은 여전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군형법상 성범죄 특별가중인자에는 '상관의 지위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거나 범행에 취약한 피해자에 대한 범행'이 포함됐다. '적극적 이용'의 예시로 '명시적으로 피고인의 직무상 권한 또는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라는 해설이 달리자 한국여성변호사회는 "'명시적'뿐만 아니라 '묵시적'으로 영향력이 행사된 경우도 포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군대의 특성상 상관의 직무상 권한이나 영향력 행사가 얼마든지 묵시적으로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양형위는 "묵시적이더라도 상관으로서의 지위를 적극 이용했다고 평가되는 경우라면 가중 양형인자에 해당된다"며 법관이 판단할 영역으로 남겨뒀다.

(사진=자료사진)
이에 대해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위계나 위력이 실제 작동했는지와 관련해 법관이 알아서 판단하도록 열어놓은 것으로 보인다"며 "경우에 따라서는 또다시 보수적인 판결을 유도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고 지적했다.

일반 감경요소인 '진지한 반성' 부분에 대해서도 양형위는 "반성의 진정성을 신중히 판단하고 그 근거를 판결문에 설시해야 한다는 것은 양형기준이 아니라 개별 법관에게 달린 사안"이라고 선을 그었다.

양형기준에서 권고형 범위가 높은 수준으로 설정된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법관이 가중·감경요소를 어떻게 적용하느냐에 따라 큰 차이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여성변호사회 소속의 한 변호사는 "문제적인 감경 관행과 관련해서는 7기 양형위에서 안되면 8기, 9기에서라도 재검토가 필요하다"며 "성범죄에 있어서 진지한 반성은 실질적 피해회복을 전제로 한다는 식으로 정의규정을 붙여 법관의 판단 방향을 유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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