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불이 꺼진 채 굳게 문이 닫혀 있는가 하면 국감 자료, 각종 서적들이 문앞에 높게 쌓여있는 의원실들도 있었다.
◇다선부터 배정…이낙연은 '국정농단' 최경환 방으로
초선부터 최다선 의원들은 의원회관 3~10층 중에서 배정받는데, 선수(選數)가 높은 의원에게 우선권이 돌아간다.
예를 들어, 21대 국회 최다선인 6선의 박병석 의원이 이동을 원할 경우 박 의원에게 가장 먼저 선택권이 주어진다. 박 의원의 방은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방으로, 2번 양보한 끝에 얻은 '로열룸' 중 한 곳으로 손꼽힌다.
이런 식으로 선수가 낮을 수록 선배 의원들이 차지한 방을 제외한 나머지 중에서 원하는 곳을 고른다. 중앙 잔디밭이나 한강이 보이는 6~8층 등은 사실상 3선 이상의 다선 의원들에게 돌아간다.
4선의 이낙연 전 총리도 7층 '로열룸'을 차지했다. 얄궂게도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돼 투옥된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가 쓰던 746호로, 전망 좋기로 입소문 탄 곳이다.
이 전 총리 측은 "저희가 원한다고 한 건, 지난 번에 쓰던 7층에서 빨리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빈 방이라 빨리 들어갈 수 있었다"라며 "누가 썼던 방인지가 중요하겠느냐 (부정 탄다는 미신같은 것은) 전혀 중시하지 않는다. 전망도 좋더라"고 만족감을 표했다.
◇기(氣) 받고, 물려받고, 버티고
정치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방도 인기다. 전직 대통령들이 의원 시절 썼던 방이나 815호(광복절), 615호(6.15남북공동회담), 518호(5.18민주화운동) 등도 인기다.
518호는 무소속 이용호 의원이, 815호는 민주당 박찬대 의원이 그대로 사용한다.
민생당 박지원 의원이 사용하던 615호는 더불어시민당 몫으로 돌아간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삼남인 김홍걸 당선인이 배정받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전직 대통령들이나 당대표들, 국회의장이 썼던 방들도 "좋은 기(氣)를 물려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인기다.
문재인 대통령이 썼던 325호는 지난번에 이어 이번에도 민주당 권칠승 의원이 쓴다. 권 의원은 당내 대표적인 친문 의원으로 꼽힌다. 추미애 전 대표의 방은 21대 당권 후보군에 든 한 의원에게 돌아간다.
방 주인이 직접 후임을 콕 집어 얘기해 물려받는 경우도 있다.
반면, "다음주 본회의가 있다"며 15일까지 방을 빼라는 권고사항을 지키지 않는 일부 낙선자들도 있다.
미래한국당 원유철·민생당 채이배 의원 등 다음주 예정된 본회의나 상임위 회의 등으로 방을 빼지 못하기도 한다. 20대 국회가 임기 막판까지 임시국회를 여는 탓에 일부 의원실이 권고일을 넘기게 되면서 자연스레 후임자도 방을 물려받지 못하게 됐다. 이런 식으로 3선 이상 중진의원들의 이사가 밀리기 시작해 차례대로 재선, 초선의원들의 입주가 늦어지게 되는 '웃픈' 일이 벌어질 예정이다.
국회사무처가 국회 임기 내 방정리를 권고하는 이유는, 다음 임기가 시작하기 전 후임자를 위해 청소·도배 등을 하기 위한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한 당선인은 "177명 중 170번째로 선택권이 있지 않겠느냐"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초선의원으로 임기를 시작하는 당선인들은 다음주 중반쯤 새 방을 배정받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