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강릉시 사천면에 사는 최모(54)씨는 10여 년 전 정부 보조금을 받아 화목보일러를 설치했다. 산림청은 지난 2007년부터 2009년까지 화목보일러를 설치하는 가구에 지원금을 지급하고 장려했다. 화석연료와 달리 '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한다는 것이 '청정연료'처럼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이후 나무에서 나오는 연기와 미세먼지 등이 문제가 되면서 정부는 '목재 팰릿 보일러'로 관심을 바꿨다. 문제는 화목보일러에 대한 안전관리나 사용지침 등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으면서 '안전 사각지대'가 발생했다는 점이다.
최씨는 취재진과 만나 "조경업을 하는 친구가 있어서 적어도 땔감 걱정은 없겠다는 생각에 화목보일러를 처음 사용하게 됐는데, 정부가 보조만 해줬지 예방이나 안전과 관련해 안내해 준 것은 하나도 없다"며 "그래도 일단 화목보일러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주변 이웃은 물론 산림 피해까지 이어질 수 있어 개개인 스스로 유의하는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또 다른 사천면 주민 양모(78) 할아버지는 "이번 고성 산불은 그래도 인명이나 민가 피해가 없어서 참 다행인데, 최근 저희 동네만 해도 주택들이 많이 들어서고 있다"며 "제대로 된 대책 마련이 이뤄지지 않으면 화목보일러 화재로 인해 산림과 민가 피해도 클 수 있다"고 진단했다.
지난 1일 산불이 발생한 곳에서 12km 정도 떨어진 고성군 죽왕면에서 만난 송모(76) 할아버지는 "이 동네에 총 156가구 중 20여 가구가 화목보일러를 사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산과 가까운 지역에 사는 가구는 아무래도 위험할 수밖에 없고, 특히 바람이 많이 불 때는 불씨가 날릴까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민원이 계속되자 국민권익위원회는 산림청에 권고지침을 만들 것을 요구, 산림청은 지난해 12월 '화목난로・보일러 사용지침'을 처음 만들어 각 지자체에 배포했다. 사용지침에는 화목보일러 관리 방법부터, 설치 기준, 안전관리 방법 등이 명시돼 있다. 그러나 정작 지자체는 화목보일러를 사용하는 전체 가구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실제 고성군은 지난해 기준으로 화목보일러 사용 가구를 추정하고 있을 뿐이었다. 강릉시는 강원도에서 화목보일러 관련 예산을 투입한 지난 2017년에 파악한 가구 수에서 아예 시계가 멈췄다. 도 차원에서도 전수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전체 표본 조사도 안 된 상황에서 사용지침은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다. 여기에 더해 사용지침은 '권고' 수준인 탓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산과 인접한 곳에서 화목보일러를 사용하는 것부터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우석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공하성 교수는 "지자체가 화목보일러를 사용하는 가구에 대한 전수조사를 제대로 하고 사용지침에 따라 홍보나 계도 활동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며 "산과 인접한 주택에서 화목보일러를 사용하는 곳을 중심으로 방화수림을 세우는 등 안전장치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숭실사이버대학 소방방재학과 박재성 교수는 "화목보일러 사용을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보고, 산 인근에서 화목보일러를 사용하는 경우 등 위험 지역을 단계별로 구분해 그에 따라 안전 관리를 체계적으로 세울 필요가 있다"며 "화목보일러와 관련한 사용지침도 좋지만, 산불 위험지역을 지정해 그에 따라 조처를 한다면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