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재판 피고인인 전씨가 신성한 법정에서 이런 안하무인의 태도를 보인 것에는 누구보다 법원의 책임이 크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3월 11일 법정에 섰던 전씨는 이날 1년 1개월 만에야 다시 법정에 등장했다.
이 기간 동안 9차례에 걸쳐 증인신문이 진행됐지만 정작 피고인 전씨의 모습은 한 차례도 법정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첫 법정 출석 이후 알츠하이머 병을 앓고 있다며 재판에 출석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자 당시 사건을 맡았던 장동혁 전 부장판사가 이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장 부장판사는 "불출석을 허가하더라도 방어권 보장이나 재판에 지장이 없다"고 판단했다.
형법 제163조는 "검사, 피고인 또는 변호인은 증인신문에 참여할 수 있다"고 규정했을 뿐 피고인의 참석을 강제하지 않고 있어, 장 부장판사의 판단에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법조계 일각에서는 절차를 진행하거나 판결을 선고하는 공판기일에는 형법이 피고인의 출석을 강제하고 있다는 점, 공판기일에 증인신문도 함께 이뤄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공판기일에 증인신문을 함께 하는 방식으로 재판을 진행했다면 9번에 걸친 증인신문 과정에 전씨를 얼마든지 법정에 세울 수도 있었다는 설명이다. 전씨를 법정에 세우겠다는 의지 자체가 없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전씨가 지병을 이유로 공판 출석을 한사코 거부하는 와중에도 골프회동을 하거나 12.12 쿠데타 주역들과 오찬을 하는 등 법제도를 악용하는 듯한 정황이 계속 나왔지만 재판부의 판단은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장 부장판사가 4·15 총선 출마를 이유로 지난해 1월 사퇴하면서 민감한 재판을 차기 재판부에 떠넘기는 모양새마저 연출됐다.
이런 이례적인 상황이 일반인들에게 일어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전씨 같이 재판에 나서지 않은 채 재판이 진행되는 경우는 재판 출석이 어려울 정도로 정신이나 몸에 이상이 있는 경우가 아니면 거의 없다. 일반인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단언했다.
재판부가 전씨의 '어깃장'을 온전히 받아준 것에는 정치적 판단이 작용됐을 것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한 법조계 인사는 "판사 입장에서는 전씨가 법정에 출석해 쓰러지거나 돌발적인 행동을 할 경우 자신에게 돌아올 책임이 부담스러웠을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판사가 재판을 진행함에 있어 정치적 고려를 했다는 반증"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전씨의 요구를 법원이 전폭적으로 수용하면서 '법은 만인에게 공평하다'는 믿음과 법원의 권위마저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소수 권력층 앞에 유독 약해지는 고질병이 도졌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새로운 재판부가 향후 재판 과정에서 이런 비판의 목소리를 잠재울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