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과 달리 전혀 '긴급'하지 않게 지급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 지 한참이다. 여야는 4.15총선 과정에서 너도나도 전 국민 지원을 약속했지만, 총선 이후 정부여당간 이견과 미래통합당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로 우여곡절을 겪었다.
결국 여야는 소득하위 70%에서 전국민으로 대상을 확대하면서 늘어나는 예산(4조 6천억 원)을 모두 국가에서 부담하되 1조 원은 기존 예산의 세출을 조정해 마련하기로 했다.
애초 1조 원은 지방재정 몫이었는데 어려운 지방정부 형편을 감안해 이를 모두 국채 발행으로 충당하려다가 야당의 반발에 부딪혀 당정이 입장을 바꾸면서다.
이례적으로 돈줄을 쥐고 있는 정부(기획재정부)와 미래통합당이 한목소리를 내며 재정확대에 반대한 근거는 재정건전성이다. 국채를 발행해 돈을 풀면 나중에 후대의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논리는 크게 두가지 면에서 타당성이 약하다는 지적이다. 코로나19 시태는 향후 어떤 경제적 영향을 미칠지 가늠하기 어려운 미증유의 사태 앞에서 지엽적 논의에 너무 빠져 있는 게 아니냐는 게 첫째 이유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연거푸 경기 부양 대책을 위한 긴급구호 자금을 늘렸다. 당초 8500억 달러 규모에서 1조 달러로 늘린 데 이어, 결국 2조 달러 이상(약 2500조 원)을 추진하고 있다.
독일도 20년만에 재정균형 원칙을 깨고 자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인 1조 유로(1330조 원)를 쏟아붓고 있다. 국내총생산(GDP)의 30%대다. 이탈리아 일본 영국 호주 스페인 등도 우리보다 GDP 대비 비중이 높다.
'코로나19, 동향과 전망'이라는 책은 낸 전병유 한신대 교수는 "우리나라도 GDP 대비 5% 수준인 100조 원 정도의 재정 투입이 필요하다"면서 "단기 지원으로 50조 원 정도, 2차 파동이나 글로벌 경제침체에 따른 장기 불확실성에 대한 대응으로 약 50조 원 정도를 준비해둘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많게는 4조 600억 원, 적게는 1조 원 규모의 재정을 놓고 옥신각신하는 정치권의 모습은 현실 인식이 너무 안이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재정안정을 이유로 긴급재난지원금에 제동을 거는 것은 과거 '긴급'하지 않으면서도 막대한 세금을 축낸 국책 사업을 떠올리게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4대강 사업과 해외자원개발 사업이다.
모두 이명박 정부에서 야심차게 추진한 사업이지만 많은 공기업을 재정위기로 몰아넣은 것들이다. 당시 여당은 통합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이었다.
역시 수십조 원이 투입된 해외자원개발은 사업에 발을 들인 공기업들을 부실로 몰아넣었다.
6900%의 부채비율을 기록하며 잠본잠식에 빠진 광물자원공사는 지난 2017년 말 추가 지원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되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폭탄'이 됐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관계자는 "광물자원공사를 광해관리공단과 통합하는 법안이 제출되긴 했는데 반대 의견도 있어 통과가 불투명하다"고 밝혔다.
알짜 공기업이었던 석유공사, 가스공사 등도 모두 자원개발 사업 후유증으로 재정악화에 신음하고 있다. 해외자원개발 사업은 '국제 호구가 됐다'는 비판을 들을 정도로 거의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이들 사업보다 규모도 작고 국민 경제로 직접 자금이 흐를수 있는 재난지원금을 놓고 이뤄진 논란을 국민은 어떻게 바라볼까. 재정건전성 문제를 엄격히 봐야할 때는 느슨하게 보고, 반대로 급한 불을 꺼야하는 위급한 상황에서는 재정 문제를 깐깐히 따지는 건 아닐까. 여기에는 경제가 아닌 정치 논리가 작용한 게 아닐까.
만약 이 두가지 사업 가운데 하나를 포기하거나 규모를 줄였다면 재난지원금을 위한 재정은 충분히 축적하고도 남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