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피해 회복을 위해서는 가해자 형사처벌뿐 아니라 피해에 대한 적절한 배상이 필수적이지만, 이를 담보하기 위한 법원의 절차는 피해자와 거리감이 있는 상황이다.
의정부지법 관계자는 25일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박씨가 재판부에 재산명시목록을 제출해 불구속 처리됐다"고 밝혔다.
해당 감치재판은 박씨가 법원 강제조정으로 5000만원의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됐음에도 이를 이행하지 않아 이뤄진 것이다. 당장 박씨가 재산목록을 제출해 손해배상 집행 가능성이 생겼기 때문에 감치를 하지 않은 것일 뿐, 박씨의 손해배상 책임이 덜어진 것은 아니다.
박씨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한 A씨 측 법률대리인은 "재산명시서에 제출한대로 집행을 시도할 것"이라며 "재산을 일부러 처분하거나 숨긴다면 채무면탈로 고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형법은 강제집행을 면할 목적으로 재산을 은닉·손괴·허위양도하거나 허위의 채무를 부담해 채권자 권리를 해하려하는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고 있다.
박씨의 경우 고소된 성폭력 사건으로 형사처벌을 받지는 않았다. 이에 박씨가 피해를 주장한 A씨를 무고죄로 고소했지만 A씨 역시 허위로 박씨를 고소하거나 명예를 훼손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 인정돼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민사소송에서야 법원은 박씨가 A씨에게 끼친 피해에 대해 5000만원을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특히 채무자의 신병을 확보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인 '감치'는 매우 제한적으로만 이뤄진다. 양육비 미지급 관련 소송을 담당한 한 변호사는 "성폭력 사건은 물론이고 아이의 생존권이 걸려있는 양육비 미지급 소송에서도 채무자를 감치시키려면 여러 지난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며 "감치가 돼도 채무자는 일부만 배상하거나 배상 계획만 증명하고 사라지기 일쑤"라고 말했다.
그나마 양육비의 경우 일반적 채권-채무 관계를 넘어 아이의 생존권이 걸린 공적 문제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여러 제도개선 방안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성폭력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 배상 문제는 일반적 채권-채무관계보다 못한 처지에 놓여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피해자가 가해자 처벌이 아니라 배상을 요구하면 '꽃뱀'으로 여기는 인식이 팽배한 것은 물론이고, 성범죄 피해자가 채권자로서 가해자(채무자)의 재산 변동을 계속 주시하고 입증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2차 피해로 이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성폭력 피해자 측을 주로 대리해온 한 변호사는 "민사 집행 절차의 개선도 필요하지만 이용률이 저조한 형사상 배상명령도 법원이 당장 성범죄 피해회복을 위해 할 수 있는 조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