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군 소속의 피의자에 대해서는 이러한 절차가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신상 공개가 이뤄져 온 듯하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지난달 24일 신상정보공개 심의위원회를 열고 텔레그램 성착취 '박사방' 운영자 '박사' 조주빈(25)의 신상을 공개했다. 이어 이달 16일에는 그의 범행을 도운 '부따' 강훈(18)의 신상도 공개했다.
두 사람은 검찰에 송치되기 직전 지방경찰청 신상정보공개 심의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신상이 공개됐다. 경찰 내부 위원 3명과 외부 위원 4명으로 이뤄진 위원회는 공개가 꼭 필요한지를 최종적으로 판가름하는 역할을 한다.
조주빈이 검찰에 송치된 뒤, 서울중앙지검은 형사사건 공개심의위원회를 열어 그의 신상정보와 일부 수사 상황을 기소 전까지 공개하기로 했다. 민간 경찰과 검찰 모두 신상공개를 시행하기 위한 제도적 절차를 갖추고 있는 셈이다.
박사방을 공동 운영하며 성착취물을 유포하고 방을 홍보한 것으로 알려진 또 한 명의 공범 '이기야'는 경기도의 한 육군 부대에서 현역으로 복무하는 이모 일병이다. 수도방위사령부 보통군사법원은 지난 6일 그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고, 군사경찰은 수사를 거쳐 이 일병을 지난 13일 군 검찰에 송치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17일 기자간담회에서 "민간 경찰도 수사 막바지 단계에서 공개 여부를 정한다"며 "수사가 마무리되면 공개 여부를 판단할 것 같다"고 이 일병의 신상공개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런데 군 수사기관에도 관련 절차가 마련돼 있는지 등을 묻는 질문에는 "민간 절차를 준용하지 않나 싶다"고만 언급했다. 아마 이같은 사례가 그간 흔하지 않았다는 이유도 작용했을 것이다.
군사경찰은 군 내에서 민간 경찰과 비슷한 역할을 하지만 행정안전부가 아닌 국방부 소속이다. 군 검찰과 법원의 기소와 판결도 민간 검찰과 법원의 그것과 같은 효력이 있지만, 군 검찰은 법무부 소속이 아니며 군 법원 또한 사법부가 아닌 국방부 소속이다.
물론 국방부에도 피의자의 신상이 함부로 공개되지 않도록 보호를 규정하는 제도는 있다. '군 수사절차상 인권보호 등에 관한 훈령'이 그것으로,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면 피의자를 재판에 넘기기 전에는 혐의사실과 실명을 공개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 훈령은 어떠한 경우에 실명을 공개할 수 있는지는 규정하고 있어도, 어떤 절차를 거쳐 실명을 공개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공보담당부서와 협의를 거쳐'라고만 돼 있을 뿐 제대로 언급하고 있지 않다. 이조차도 지난 2018년과 올해 훈령이 개정되면서 마련됐기 때문에 그동안 군 당국의 피의자 신상공개는 명확한 기준과 절차 없이 행해져 왔다.
지난 2005년 연천 530GP 총기난사사건 당시 군 당국은 사건 직후 열린 언론 브리핑에서 범인 김동민 일병의 이름을 곧바로 공개했다. 반면, 2014년 28보병사단에서 벌어진 의무병 살인사건의 주범 이찬희 병장의 신상은 기소된 뒤에야 재판에서 공개됐다.
같은 해 벌어진 22보병사단 GOP 총기난사사건의 범인 임도빈 병장의 경우엔 사건 나흘 뒤인 6월 25일 국방부가 국회에 긴급 현안보고를 하는 과정에서 언론에 실명이 공개됐다.
하지만 기존에 없던 제도를 만들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는 것은 불가피하다. 때문에 구속 기한을 한 차례 연장한다고 해도 다음달 3일이면 재판에 넘겨져야 하는 이 일병에게 적용되기엔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우리 사회의 형사법 제도는 무죄추정의 원칙에 의거해 피의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쪽으로 발전해 왔다. 언론 또한 기본적으로 피의자를 'O모씨'로만 보도하며, 예외적인 경우에만 실명을 보도하고 있다.
때문에 공익적인 목적상 신상공개가 꼭 필요하다면 이를 판단할 분명한 기준과 절차가 뒤따라야 하지만, 민간 경찰과 검찰에 모두 마련된 그 절차는 유독 군에만 없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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