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11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 WHO 본부에서 열린 언론 브리핑에서 "코로나19가 팬데믹으로 특징지어질 수 있다는 평가를 내렸다"고 밝혔다.
이어 "그것(팬데믹)은 잘못 사용하면 비이성적인 공포를 불러일으키거나 전쟁이 끝났다는 정당하지 못한 인정을 통해 불필요한 고통과 죽음을 초래할 수 있다"며 지금까지 WHO의 신중론을 다시 한번 변호했다. 그러면서 "현 상황을 팬데믹이라고 묘사하는 것은 코로나19가 제기한 위협에 대한 WHO의 평가를 바꾸지 않는다"며 "WHO가 하는 일과 각국이 해야 하는 일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또 "여러 나라가 이 바이러스가 통제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며 "집단 감염이나 지역 전염이 벌어진 많은 국가들 앞에 놓인 도전은 그들이 (이런 나라들이 한 대처와) 같은 것을 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그들이 할 의지가 있느냐에 있다"고 지적했다.
테워드로스 사무총장은 "코로나19에 대해 이란과 이탈리아, 한국이 취한 조처에 감사한다"며 "그들의 조처는 중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사회와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주고 있다는 점을 안다"고 덧붙였다. WHO는 지금까지 1968년 홍콩 독감과 2009년 신종 인플루엔자 당시 팬데믹을 선포한 전례가 있다.
WHO가 이날에서야 이번 사태를 팬데믹으로 규정했지만 유럽에서 코로나19가 폭발적으로 확산되면서 세계 주요 국가에서는 이미 팬데믹이 시작됐다는 지적들이 있어왔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산하 국립면역호흡기질환센터 낸시 메소니에 국장은 지난달 말 코로나19가 질병과 사망을 유발하고 지속적인 사람 간 전파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이들 요소는 팬데믹의 두 가지 요건을 충족한다"고 주장했다. 하버드 대학의 전염병학자인 마크 립시치도 "내 생각에는 우리가 팬데믹에 도달했다"고 언급했다. 독일의 옌스 슈판 보건부 장관은 지난 4일 연방 하원에서 "중국에서 발생한 코로나19가 팬데믹이 됐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CNN 방송은 지난 9일 자체적으로 현 상황에 대해 '팬데믹'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마이클 라이언 WHO 긴급대응팀장은 이날 언론 브리핑에서 팬데믹 선포를 결정한 과정을 설명했다. 우선 팬데믹 선포가 자문 기구인 긴급 위원회 소집 등의 수학 공식 같은 절차나 알고리즘이 없으며 다만 팬데믹이라는 단어가 내포한 의미와 각국에 미칠 파급력 등이 막대하고 각국이 펼쳐온 대응책을 포기하는 것으로 오용될 수 있어 고심했다고 설명했다.
마리아 판케르크호버 WHO 신종질병팀장은 전염력, 전파 경로, 고위험군, 환자가 사망에 이르는 과정, 방지책, 사회적 영향 등을 토대로 코로나19가 팬데믹이라는 특징을 지녔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되면서부터 WHO의 대응이 너무 소극적이었다는 비판은 이번 팬데믹 선언 과정에서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테워드로스 사무총장은 지난 5일까지도 "우리는 아직 팬데믹 상황에 있지 않다"며 각국 보건당국과 시각차를 드러냈지만 상황이 유럽 등을 중심으로 급속도로 악화되자 결국 말을 바꾼 셈이 됐다. WHO는 중국에서 한창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했을 당시에도 자문 기구인 긴급 위원회 회의를 두 차례나 진행하고 테워드로스 사무총장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난 뒤에야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언해 지나치게 중국 눈치를 본다는 세계의 따가운 지적을 받아야만 했다. 중국의 적극 지원으로 WHO 사무총장에 오른 것으로 알려진 테워드로스 사무총장은 이후로도 틈만 나면 중국의 코로나 바이러스 대처에 대한 지나친 과찬으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