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작품은 청각장애인인 부모님을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 '반짝이는 박수소리'(2015)였다. 세상은 너무 쉽게 장애인을 불쌍히 여기거나 불행하다고 믿었지만, 이길보라 감독은 곁에서 바라본 부모님의 '반짝이는' 삶을 담아냈다.
이길보라 감독은 주류가 아니기에 남들이 관심 두지 않는, '공적 언어'를 가지지 못한 이들에 자꾸만 시선이 갔다. 지난달 27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기억의 전쟁'도 여성,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 그동안 충분히 말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던 이들에게 집중한 작품이다.
1990년생인 이길보라 감독은 '다큐멘터리를 찍는 젊은 여성 감독'으로 주목받았으나, 동시에 그 위치를 빌미로 그의 작품을 섣부르게 판단하려는 자들도 있었다. 손쉽게 '사적 다큐'로 분류한 후 별로 중요하지 않은 어떤 것으로 재단한 것이다.
지난달 14일 오후,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길보라 감독은 "여성이 하는 이야기는 사적 다큐로 분류"돼 왔다고 말했다. 지금은 그런 시각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지만 은연중에 남아있는 것 같다고 한 그는, 앞으로도 다큐멘터리를 찍을 예정이다. 가장 좋아하고, 재미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 더 많은 사람이 베트남전에 관해 '말할' 수 있게
'기억의 전쟁'은 베트남 전쟁 당시 일어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을 증언하는 응우옌 티 탄, 응우옌 럽, 딘 껌 등을 따라가면서, 여전히 제대로 쓰이지 못하는 역사를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세 사람과 같이 영화를 본 적 있냐는 질문에 이길 감독은 미소지으며 "한곳에 모여서 다 같이 영화 봤는데 다들 너무너무 좋아하시고 자랑스러워하셨다"라고 답했다.
지난해 제작진은 베트남어 자막을 만들어서 영화를 가지고 갔고, 탄의 집에서 TV로 봤다. 출연진 세 명이 전부 모인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고. 이길 감독은 "세 사람은 서로 소통하지는 못한다. 보지 못하거나 듣지 못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제가 중간에서 수어를 한국어로 통역하면 베트남어로 통역하고, 이런 과정이 있었다. 그래서 다 같이 밥 먹고 영화 보는 과정이 굉장히 흥미로웠다"라고 전했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껌 아저씨는 글씨를 잘 못 읽으세요. 글을 배운 적이 없어서요. 한 명이 붙어서 영화 내용을 통역하면서 봤어요. 럽 아저씨는 안 보이니까 베트남어할 수 있는 사람이 지금 화면에 어떤 내용이 나오는지를 설명했어요. 베트남에서 극장 상영하면 되게 좋을 것 같아요. 통역 같은 걸 잘 준비해서 (소외되는 사람 없이) 영화를 잘 볼 수 있게 한다면 그것 자체로 굉장히 의미 있는 시도가 되지 않을까요?"
당시 이길 감독은 네덜란드에서 유학 중이라 한국에 없었다. 이길 감독은 그러나 "마찰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어떻게든 자기의 자리를 만들고 싶은 거라고 생각한다. 청춘을 바쳐서 경제 발전에 이바지했다고 생각하는데, 아무도 이런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고, 몸은 점점 늙고 병들고… 자기도 피해자인데 가해자이자 살인자로 모는 상황에서 그분들이 할 수 있는 액션은 그것밖에 없었을지도 모르겠다"라고 전했다.
'기억의 전쟁'은 프로듀서와 촬영감독 등 주요 스태프를 여성으로 두었다. "일단 제가 여성이랑 작업하는 게 편하다"라는 이길 감독은 "저는 이 영화에 여성주의적인 시각이 녹아있다고 생각한다. '여성이 만들면 다 여성영화인가?'라고 물을 수 있고, (여성영화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를 것 같긴 하다. 다만 저희는 전쟁을 비(非)남성의 시선으로 바라보려고 시도했다"라고 말했다.
이길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기보다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를 묻고 싶었다"라며 "저는 여전히 답을 찾고 있는데, 관객분들도 21세기를 사는 사람으로서 (과거를) 어떻게 기억할 건지, 다음 세대에게 어떻게 기억하라고 말할 수 있는지 같이 생각해보면 좋겠다"라고 부연했다. 군인과 정부만이 아니라 더 다양한 사람이 '나에게 베트남전은 무엇인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는 것, 그것이 이길 감독이 가장 바라는 것이다.
◇ 지금까지 그랬듯 앞으로도 계속 다큐멘터리를 찍겠다
탈학교 청소년이 된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로드스쿨러'(2008), 청각장애인 부모님의 이야기를 다루며 동시에 본인의 정체성을 탐구한 '반짝이는 박수소리'(2015), 베트남전 참전 군인이었던 할아버지에게 얽힌 기억에서 시작한 '기억의 전쟁'(2020)까지.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는 데서 출발한 이길 감독의 작품 세계는 꾸준히 넓어지고 있다. 그런데 누군가는 이길 감독의 작업을 '사적 다큐'로 단정하며 박한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어떤 사람들은) 은근슬쩍 그런 얘기를 흘려요. '거시적인 사회적 이슈를 다뤄야지. 엄마 아빠를 찍냐?'고요. 거기에 반박할 수 없었어요. 반박할 논리를 갖고 있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저에게는 너무나 중요했어요. 저희 엄마 아빠의 세상이 반짝이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게요. 아무도 그 이야기를 대신해주지 않아서 제가 했어요. 내가 하는 이야기, 여성이 하는 이야기는 너무 쉽게 사적 다큐로 분류되면서 작고 하찮은 것으로 여겨졌던 것 같아요. 남성이 가족을 찍었을 땐 사적 다큐로만 보지 않았으면서… 많은 사적 다큐가 만들어지면서 그런 담론은 서서히 없어지고 있다고 봐요. 은연 중엔 남아있지만."
예술가로서 삶을 지속할 수 있는지 가능성을 찾고 싶어 떠난 네덜란드 유학 경험은 '작업자의 자세'를 다시 배우는 계기가 됐다. 이길 감독은 "한국에 있을 때 지속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 건 결과에 집착했기 때문이다. 이 작업은 성공했네, 실패했네 이러기만 하니까 그다음 작업은 어떻게 할까 고민했다. 네덜란드 유학에서는 '시도'가 훨씬 더 중요하다'란 걸 배웠다"라고 밝혔다.
이길 감독은 "결국 완벽한 공간은 없는 것 같다는 걸 깨달았다. (네덜란드와 한국 모두) 엄청난 장점과 엄청난 단점이 다 있다. 그 두 가지를 같이 보는 게 엄청 귀중한 경험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그런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라면서도 "너무너무 좋았던 건 문화가 다양하다는 거였다. 우리나라는 단일 문화만 있는 것 같아서 다들 살기 힘든 게 아닐까. '너와 내가 같아야 한다'가 기본값이니. 그래서 서로 갉아먹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하는 게 아니라, 어떤 질문이 생기면 그 답을 찾아 나가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것처럼, 이길 감독은 '질문'을 원동력으로 일하는 창작자다. 항상 낯설게 보려고, 깨어있으려고 노력하며 앞으로도 다큐멘터리를 찍을 예정이다. 보는 것도 만드는 것도 제일 좋아하기 때문이다.
"저는 다큐멘터리를 제일 좋아해요. 만드는 것도 보는 것도요. 극영화 만드는 것보다 훨씬 더 재미있는 거 같아요. 전 항상 논픽션의 영역에 관심이 많아요. 가능성이 크고 무궁무진한 것 같아서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