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25일 SBS '가요대전'에서 벌어진 일을 정리한 것이다. 사고 두 달이 넘었으나 4일 현재까지 진상조사 결과는 공개되지 않았다. SBS는 12월 25일, 12월 26일 사고 사과문과 12월 29일 '가요대전' 재방송 공지를 올린 후 이 사고에 관해 꾸준히 말을 아꼈다. 그런데 의외의 곳에서 이 일을 바라보는 SBS 내부 시선이 노출됐다. 지난 2일 오후 SBS 시청자위원회 홈페이지에 올라온 '제348차 시청자위원회 1월 회의록'이었다.
지난 1월 22일 열린 시청자위원회에서 이윤소, 박진 두 위원이 '가요대전' 사고를 언급했다. 이 위원은 게시판에 많은 비판의 댓글이 올라왔다는 점을 우선 짚었다. 그러면서 "출연자와 스태프 안전은 기본 중의 기본"이기에 "이러한 사고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하게 안전 수칙을 만들고, 이를 지킬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박 위원은 "이런 사건이 없도록 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리고 문제에 대한 대처도 중요하다"라며 SBS의 대응 방식을 지적했다.
이때 유윤재 예능 1CP와 박기홍 콘텐츠전략본부장이 답변을 내놨다. 유 CP는 △사고는 조사했고 △동일한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대책을 철저히 마련하고 있으며 △피해 아티스트(레드벨벳 웬디)에게 직접 사과했고 △가족들에게도 사고 경위를 확실히 설명 드린 것으로 알며 △여러 치료 과정을 적극 지원 중이고 △유사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조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본부장 역시 △철저한 조사 △가족과 본인에 대한 충분한 사과 △매주 연락하며 차도 확인 등을 언급했다. 다만 박 본부장은 "모든 안전 수칙을 지킨 상황에서 일어난 안타까운 사고가 아니라, 최소한의 안전 수칙도 지키지 않은 상황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예견된 사고 이런 댓글들이 많지 않나. 그런 것들은 사실은 (레드벨벳) 팬들 중심으로 쓰여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런 큰 행사를 할 때는 수도 없이 체크하고 점검하고 하지만, 아주 작은 부분에서 이제 이런 일들이 일어났을 때 그리고 이런 비판을 받게 되었을 때 방송사가 '아닙니다. 저희는 모든 준비를 완벽하게 했습니다' 이렇게 말 못 하는 거다. 그러면 더 욕먹는다. 방송사가 완벽하게 준비했으면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어, 이런 비난이 폭증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전했다.
박 본부장은 "지금까지도 안전 교육을 안 한 건 아니다. 안전교육도 다 하고 관객들에게도 고지를 하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저희가 무엇이 좀 부족한 점이 있었는지를 생각하겠다"며 앞으로는 안전 수칙에 대한 동의를 반드시 구하는 작업까지 할 것이라고 첨언했다.
SBS 내부에서 이번 사고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가늠할 수 있었던 발언 내용은 1월 시청자위원회에서 나온 내용이다. 2월 시청자위원회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온라인으로 진행됐고, 위원들이 프로그램에 관한 의견을 서면 제출하는 선에서 갈음했다. 사실상 축소된 상태로 회의가 열리다 보니, 위원들이 '가요대전' 사고에 관한 이후 경과나 대책을 질의하고 답을 들을 기회가 아예 만들어지지 않았다.
◇ 방송사의 안전사고 비판하면, 특정 팬덤?
박 본부장의 발언이 회의록을 통해 공개되자 비판적인 반응이 이어졌다. 방송사의 안전 불감증을 지적하는 목소리를 특정 팬덤에 한정시킨 발언이 특히 질타를 받았다. 정말 이번 사고에 관해 SBS의 책임 있는 자세를 요구하는 의견이 특정 팬덤에서만 나온 것일까. 이 사안은 시청자위원회뿐 아니라 같은 달 시청자평가원에서도 문제가 제기된 부분이었다.
시청자평가원 중 한 명인 이준형 대중문화평론가는 "안전 불감증으로 인해 한 가수가 부상을 입은 만큼 진행 과정과 사전 점검에 문제가 없었는지 되돌아보고 재발 방지에 만전을 기하기 바람"이라는 의견을 냈다. 이에 SBS는 "차후 치밀한 기획과 준비를 통해 안전에 만전을 기해 올 연말에는 시청자들이 편하게 가요대전을 즐길 수 있도록 하겠음"이라고 답변했다. 관련 내용은 지난 1월 9일 SBS '열린TV 시청자세상'에서 방송되기도 했다.
박희아 대중문화평론가는 "댓글을 쓴 사람이 팬들로 추측된다고 해서 그걸 방송사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음악방송의 가장 큰 소비자인 아이돌 팬들의 니즈(요구)를 파악할 필요가 있는데도, 저런 발언을 했다는 것은 중요한 소비자층을 무시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박 평론가는 "'가요대전'이든 여타 음악방송 프로그램이든 팬들만 시청하지는 않는다. 특히 연말 시상식은 축제 콘셉트로 진행되는 만큼 더 많은 시청자가 볼 가능성이 크다. (회의록 발언을 보면 SBS가) 겉으로만 사고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고 한 것 아니냐는 인식을 대중에게 줄 수 있다"라고 전했다.
이종임 문화사회연구소 이사는 "이번 사고는 현장에 있던 사람들뿐 아니라 방송을 기다린 시청자들, 무대에 올라야 하는 가수들 모두에게 큰 충격을 준 사건이다. 사고는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발생하기에 사전 준비가 더욱 중요하다"라며 "SBS의 대처가 대중을 설득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연말 시상식에서 사고가 일어난 건 SBS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KBS2 '가요대축제'에서는 에이핑크의 무대가 다 끝나기도 전에 강제 종료됐고, MBC '가요대제전'도 음향 문제로 김재환의 무대가 절반 가까이 단축됐다. 열심히 준비해도 실수는 할 수 있다. 방송사가 시상식 때마다 차별화된 콘셉트를 가지고 축제의 장을 만들기 위해 들이는 노고를 폄하하려는 게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안전불감증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결국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더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사고 발생 '사실'만큼이나, 미흡했던 대처에 시청자들이 분노했던 사실을 기억하자. 사고의 원인과 사고 후 단기·장기적으로 어떤 노력을 해 재발 방지에 나설지를 신속하고 투명하게 밝혔다면 반발이 이렇게까지 커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부' 진상조사 결과를 왜 굳이 외부에 공표해야 하느냐고 되물을 수 있다. SBS는 지난 2017년 5월 SBS '8뉴스'에서 해수부 세월호 인양 지연 의혹 보도가 사회적 논란이 되자, 내·외부 인사로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 보도 경위를 알아보는 보고서를 발표한 적이 있다. 보도 시점이 5월 2일이었고 보고서가 나온 것이 5월 15일이니 2주가 채 걸리지 않았다.
방송 사고로 물의를 빚은 것을 자성하며 비슷한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공표한 영상을 콘텐츠로 만든 적도 있다. 2015년 4월 21일, SBS의 뉴미디어 브랜드 스브스뉴스 페이스북에 올라온 [<방송가에 침투한 일베?> 하...우리가 먼저 당해봐서 아는데... (절레절레)]이다. SBS, MBC, KBS 등 방송사의 일베 이미지 사고를 언급한 후, 먼저 이런 일을 겪은 SBS는 왜 사고가 반복되는지 돌아봤고, 재발 방지를 위해 로고만 모아놓은 별도 라이브러리를 운영한다는 내용이었다.
전례가 없는 것이 아니다. 이번 사고를 얼마나 무겁게 받아들여 고쳐 나가려는지 '의지'의 문제다. 또한 시청자는 방송사 편의에 따라 위치가 달라지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짚고 싶다. 관객석을 채워 '가요대전'을 빛내는 역할을 할 때는 괜찮았던 '어느 가수 팬'이라는 위치가, 잘못을 짚고 개선을 요구하는 주체가 되었을 때는 갑자기 '사소한 일부'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내부자이기 때문에 심각성을 덜 체감했던 문제를 시청자 덕에 선명히 깨닫게 됐다면, 오히려 아프지만 의미 있는 공부를 한 게 아닐까. 콘텐츠의 질을 넘어, 그 콘텐츠가 만들어지고 수행되는 과정의 적절성을 함께 살피는 시청자를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해 보인다.
※ 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노컷뉴스 기자들의 취재 뒷얘기를 가감 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 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 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