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절박하게' 필요한 사람들이 큰돈이 든 가방 하나를 두고 쟁탈전을 벌인다. 저마다 게임의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입에 발린 말을 하며, 협박과 배신, 살인도 주저하지 않는다.
지난달 19일 개봉한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감독 김용훈)을 거칠게 요약하면 이렇다. 돈 때문에 얽히고설킨 인간군상을 '범죄 액션'이란 장르로 풀어낸 영화는 이미 숱하게 나와, 관객에게도 익숙한 상황.
이번 영화로 첫 장편 상업영화를 연출한 김용훈 감독은 동명의 원작 소설의 장점을 가져가되, 영상으로 구현하기에 더 적합하도록 아이디어를 반영했다. 언론 시사회에서도 '영화가 잘 나왔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고, 제49회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까지 받으며 기분 좋게 출발했다.
영화 개봉을 하루 앞둔 지난달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의 김용훈 감독을 만났다. 여러 명을 주인공으로 세우고, 그중 한 명을 꽤 늦게 등장시키는 까다로운 조건 속에서 뚝심 있게 영화를 완성한 그에게 작업기를 들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소네 케이스케의 동명 소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을 원작으로 했다. 소설의 어떤 면을 보고 영화화하고 싶었는지 궁금하다.
원작을 너무 재미있게 봤다. 2017년 정도에 봤는데, 이 원작이 사실은 독특한 구조를 갖추고 있고 또 제가 되게 좋아하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어서 연출적인 욕심이 굉장히 날 정도의 작품이었다. 그런데 영화화하기에는 여러 숙제가 있었다. 너무 소설 베이스의 이야기라서, 소설에서만 가능한 설정이 있었다. 그걸 영상화하는데 필요한 아이디어가 있어야 했고, 정리를 해야 했다. 제작사와 투자사도 원작 소설을 봤지만 (마찬가지로) 풀 숙제가 있다고 판단한 상황이었는데 제가 정리한 아이디어를 보고 '아, 이건 재미있겠다'라고 생각해서 같이 진행하게 됐다.
▶ 영화화에 적합하게 하려고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었나.
가장 크게는 구조? 소설만이 갖는 특징이 있어서… 그걸 영화적 구조로 뼈대를 맞춰야 했다. 제가 생각한 건, 전반전에는 각 인물이 짐승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후반전부터는 또 다른 포식자가 등장해서 그 짐승들이 만나게 되는 구조였다. 그 구조가 소설의 구조와는 다르다. 이건 스포일러긴 한데, 소설은 되게 떨어져 있는 시기처럼 보인다. 각 인물이 되게 떨어져 있는(분리된) 사건처럼 진행되다가 엮이게 되는데, 영화 찍을 땐 동시간대처럼 보이는 얘기였으면 관객에게 반전이 좀 더 매력적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 영화는 총 6장으로 구성돼 있고, 각 장에 이름이 붙었다. 이렇게 한 의도는.
시나리오상에서는 없었던 설정인데 편집 과정에서 제가 그런 아이디어를 냈던 것 같다. 근데 저는 장이 없는 것도 그만의 매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장을 넣은 건, 관객들이 이 영화를 따라가는 데 가이드적인 요소로 가면 좋겠다는 마음에서였다. 주인공이 누구인지 모를 법하게, 워낙 많은 인물이 나오니 이정표를 만들어줘야, 관객들이 좀 더 따라오기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영, 중만, 미란의 비중이 높은데, 관객들이 이 인물들에게 연민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태영은 자기를 굉장히 포식자처럼 생각하고 스마트하다고 믿지만 관객이 보기에는 되게 부족해 보인다. 그 자체가 재미있겠다 생각했다. (정우성이) 그동안 영화에서 보여준 이미지와 괴리가 있어서 어떻게 매치시킬까도 궁금했고, 관객은 (그간) 보지 못한 걸 보는 재미가 있다고 봤다.
같이 하게 됐을 때 저는 외적인 것부터 변화를 주고 싶었다. 그래서 옷도 (정우성이 평소에) 잘 입지 않을 것 같은 것으로, 헤어도 좀 망가진 느낌으로 자연스럽게 흐트러진 걸 했고, 핸드폰도 트렌드에 처져 있게 했다. 그런데도 안 되더라. 너무 멋있어가지고. (웃음) 반전 아닌가? 선배님도 '그거 쉽지 않을 건데, 안 될 거야~' 하셨다. 솔직하신 거다. (옷 입혀봤는데) '아, 안 되는구나!' 느꼈다. (웃음) 사실 '어떡하지?' 싶더라.
첫 장면 찍으시는데 확 내려놓으시더라. 정우성 선배님의 어떤 새로운 면을 봤다. 되게 재밌더라, 이 캐릭터가. 새로우면서 진짜 호구 같은 거다. (웃음) 그래서 다음 장면 찍을 때는 선배님이 어떤 느낌을 보여주실까 궁금했다. 여러 번 놀랐다. '어, 이렇게 내려놓으시나?' 할 정도로 캐릭터를 확실하게 살려서 표현해준 부분이 있었다.
중만은 소설에서도 시나리오에서도 뭐라고 해야 하지, '무색무취'였다. 평범한 사람이 짐승이 되어가는 거라고 생각했다. 원작이란 다른 건, 원작은 좀 더 고민하고 숙고한다. 되게 많이 참는다. 지르지 못하고. 각색 과정에서는 좀 더 표현하게 했다. 한국 사람들은 어느 정도 하면 표현을 하니까. 그런 변화를 만들었는데, 거기에 페이소스가 묻어나는 느낌은 배성우 선배님이 만드신 거다. 전 그게 너무 좋았다.
지배인이랑 전화 통화할 때도 '와이프가 아파가지고…' 하는데 뭔가 되게 짠하면서 웃기지 않나. 페이소스적인 웃음이 나오는데 그런 걸 너무 잘 살리시더라. 저는 그런 걸 너무 좋아해서 선배님이랑 취향이 너무 잘 맞았다. 캐릭터의 연민과 유머를 정말 잘 해석해주셨고 잘 만들어주셨다.
미란 같은 경우는 (처음부터) 아예 바닥에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뭔가 어느 정도 기반이 있는 사람이었는데 어느 순간 추락했고, 다시 자신의 위치에 오르기 위해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사람이라고 봤다.
현빈 씨의 마스크를 보면 굉장히 도시적인 느낌이 있다. 거기서 추락한 모습이 보일 때 관객에게 더 재미있게 그려지겠다는 생각은 했다. 미란은 어떻게 보면 야누스적인 인물, (극중) 여성 캐릭터 중 가장 흥미로운 인물이라고 봤다. 현빈 씨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미란을) 입체적으로 표현해주신 것 같다.
▶ '전도연의 영화'로 홍보되는 것에 비하면 의외로 전도연의 분량은 짧은 편이다. 영화 중반 이후에 등장하기도 하고. 이런 선택을 한 배경이 궁금하다.
마케팅에서 전도연 배우를 앞세우고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나올 영화로 생각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고, 그게 당연할 거라고 생각한다. 저한테는 숙제였다. 제가 영화의 구조에 관해 선배님과 얘기할 때, 다른 분들도 그랬지만 전 선배님은 단 한 번도 자기 분량을 늘려달라고 하지 않았다. 어찌 보면 연희란 인물이 굉장히 중요하지 않나, 이 영화에서. 중간에 나와도 오히려 자기 분량은 이게 딱 좋다며 더 좋아하셨다. 전 선배님도 관객들도 (전도연의 등장을) 기다릴 텐데, 기다릴 수 있게 하는 것도 저한테는 큰 숙제였다.
전도연 선배님은 진짜 완벽하게 준비하는 프로이시다. 관객이 원하는 만족도와 기대치가 있듯이 스태프도 마찬가지다. 아직 전 선배님이랑 작업해 보지 못한 스태프도 많았고, 워낙 '와, 전도연!' 하는 기대가 있었다. 그걸 극복하기 위해 정말 준비를 철저하게 하시더라. 너무 꼼꼼하게 다 기록돼 있었다. (시나리오가) 진짜 까맣다. 포스트잇이 막 붙어있고 색칠이 다 돼 있으니 저도 되게 긴장하게 되더라. 이런 대배우가 이렇게 완벽한 준비를 해 오니까.
현장에서는 더 철저하신 것 같다. 조금 더 완벽하게 준비하신달까. 현장 준비하는 스태프들도 느낀 바가 똑같았을 것 같다. 긴장되긴 하지만, 영화에 더 집중하게끔 하는 배우의 또 다른 힘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막상 찍을 땐 긴장하고 선배님 연기 보면서 감탄하면서 순식간에 지나가는데, 끝나고 난 뒤에 스태프들 모두가 다 전 선배님이랑 또 하고 싶다고 했다. 노 페이(No pay)로도 하고 싶다고 할 만큼, 선배님하고의 작업은 창작자들에게 뭔가 짜릿한 걸 주는 것 같다.
▶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전도연과 정우성이 처음 만난 영화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각각 연희, 태영을 맡아 오래된 연인을 연기한다. 둘이 같이 붙는 장면이 적어서 아쉽다는 반응이 많은데.
시나리오 때부터 없는 분량이었다. (웃음) 마케팅 때부터 관객들이 가장 보고 싶어 하는 장면이 그거였을 것 같고, 두 사람이 오랜 연기 생활하는 동안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으니 두 분의 연기 케미를 궁금해하고 재미있었을 것 같다. 저한테는 그런 것보다 (이야기의) 완결성이 더 중요했다. 아쉬움은 있을 수 있지만…
예를 들어 태영을 죽일 때도 순식간에 죽여버리지 않나. 인물의 마지막을 (이렇게) 보여주는 게 재미있더라. 쓰레기차에 치이는데 아예 '저 죽음을 연민할 필요 없어, 개죽음이야' 이렇게 짧게 보여주는 게 되게 신선할 것 같더라. 옛날에는 한국영화에서 인물에 가까이 접근해 (죽음을) 자세히 묘사하곤 했는데, 이 영화는 굉장히 멀찍이 보여주고 순식간에 정리해 버린다. 이 영화의 어떤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다.
▶ 태영은 그동안 본인을 지켜준 것이 담배 '럭키 스트라이크'라고 말하고 다닌다. 그런데 그가 죽을 때도 함께 있던 그 담배가 거리에 나뒹구는 게 묘하더라. 원작에도 나오는 설정인가.
저는 태영이 믿음과 배신의 캐릭터라고 봤다. 원작에도 나왔지만 저도 럭키 스트라이크 부분이 재미있었다. 원작은 (태영이) 연희를 계속 원망하는 인물이었는데, 영화적으로는 자신을 배신해도 계속 뭔가 믿으려고 하는 인물로 설정했다. 그런 인물이 누군가에게 사기 치려고 하니 완벽하지 않은 거고. 그런 점이 선배님과 잘 맞더라. 한 번 속으면 사람을 의심하기 시작하고 안 믿는데, 선배님은 그럼에도 계속 믿으시려고 하는 것 같더라. 평소에도. '그래, 믿어보지. 내가 손해더라도' 하는 기본적인 성향과 태영의 성향이 매치된다고 생각했고, 이런 이야기도 선배님과 나눴던 것 같다. 럭키 스트라이크도 믿음의 한 요소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