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에 찾아가 수차례 결백을 주장해도 대답은 매번 "검찰이 의견을 정해놔서 어쩔 수 없다"는 말뿐이었다. 긴 싸움 끝에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아 다행히 전과자 신세는 면했지만 검찰과 경찰의 일방적인 수사는 여전히 납득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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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노컷뉴스는 당시 수사 상황이 담긴 녹취 파일을 입수했다. 해당 녹취가 말해주는 수사는 증거나 상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로지 검사의 지휘에 맞춰 수사가 꿰맞추듯 흘러갔고, 경찰도 반발은커녕 여기에 맥없이 따르는 모습이 여실히 드러났다.
김씨가 억울함을 호소하며 서울 서초경찰서 A경장에게 전화한 때는 2016년 10월 25일이다. 폐쇄회로(CC)TV라는 가장 확실한 증거물에조차 폭행 장면이 보이지 않는데도 경찰이 김씨의 상해 혐의에 기소의견을 달아 송치한 직후다.
'왜 기소의견을 달았냐'며 하소연하는 김씨에게 A경장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우리가 주관적으로 (결정)한 건 아니고, 검사 하명에 따라 진행했다"며 "담당 검사가 기소의견으로 송치하라고 했다. 이제는 재판에서 (억울함을) 풀어야 한다"고 대답했다.
다음날 A경장 상관인 서초경찰서 B형사팀장(경위)에게도 찾아가 따져물었지만 돌아오는 말은 같았다. B팀장은 "우리는 검사 지휘를 받으니까 '네, 알겠습니다'라고 할 수밖에 없다. (검사에게) '안 됩니다' 그렇게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답답한 마음에 김씨가 '형사님은 아무 의견이 없는 거냐'고 재차 묻자 B팀장은 "그렇다. 그만큼 우리가 힘이 없다"며 "검사가 그렇게 (기소의견으로) 지휘 내리면 해야지 뭐 어떻게 하냐"고 말끝을 흐렸다.
경찰의 설명을 들은 김씨는 이대로 뒀다가는 유죄로 갈 게 뻔하다는 생각에 검찰청사로 연락했지만 반응은 황당했다.
자초지종을 말하며 수사지휘 검사와의 면담을 요청하자 검찰 수사관은 대뜸 "사건 송치 이후에는 수사지휘 검사와 면담할 이유가 아무것도 없다"며 "검사님이 판단해서 한 사건에 대해 선생님(김씨)이 지금 따지는 거냐"고 윽박질렀다.
공판 검사실도 김씨의 의견을 묵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면담이 어려우면 편지라도 써도 되냐'고 물어보는 김씨에게 해당 검사실 수사관은 "털끝 하나 안 건드렸는데 검사님이 그렇게 (기소의견으로) 결정했겠냐"고 비웃었다.
뒤이어 김씨가 억울한 상황을 설명해나가자 말을 자르고서는 "본인(김씨) 말만 계속 들을 수 없다"며 "같은 얘기를 계속 하면 전화 끊겠다. 더 궁금한 게 있냐"며 통화를 마쳤다. 그렇게 김씨는 결국 단 한번의 조사도 없이 벌금 70만 원에 약식기소됐다.
검찰의 '답정너' 수사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김씨는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공판 과정에서 처음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관들은 '고소인이 제출한 영상에서 김씨가 고소인을 폭행한 장면은 확인되지 않는다'는 의견서를 뒤늦게나마 제출하며 김씨에게 힘을 보탰다.
법원도 김씨의 손을 들어줬다. 1심 국민참여재판에 이어 2심 항소심 재판부 모두 김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후 김씨는 자신을 상해 혐의로 고소한 박모씨(66)를 무고죄로 고소했고, 박씨는 혐의가 인정돼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박씨의 무고 혐의에 유죄를 선고한 판사는 "박씨가 폭행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장면이 녹화된 영상에서 김씨가 박씨의 팔을 잡아 뜯는 장면은 전혀 나와 있지 않다"며 "박씨가 허위 사실을 신고했다고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당시 경찰 형사과장도 최근 CBS 노컷뉴스와 통화에서 "같은 사안을 어떻게 판단하고 해석하냐에 따라 결론은 달라질 수 있다"면서도 "김씨의 경우 일반적인 소견으로는 사실 불기소(혐의없음) 의견으로 가는 게 맞았다"고 말했다.
CBS 노컷뉴스는 김씨의 사건을 수사지휘한 검사로부터 직접 상황을 설명 듣고자 수차례 문의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해당 검사는 대신 부속실 직원을 통해 '오래전 사건이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 용어 설명
▷ 답정너 :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라는 뜻의 신조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