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① 모성 배반→처벌… 韓 영화가 답습한 여성 캐릭터들
② 식모·호스티스→전문직… 韓 영화 속 여성의 직업 변천사 <계속>
'야한 영화의 정치학'의 저자이자 수원대 영화영상학부 객원교수로 활동 중인 영화평론가 김효정 씨는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한국 상업영화 안에서 '여성의 노동'이 어떻게 재현됐는지를 알아봤다.
우선 김 씨는 1950~1960년대에 가장 흔하게 나타난 직업은 주부('자유부인', '미망인', '제트부인'), 식모 혹은 하녀('하녀', '초우') 등이었다고 설명했다. 김 씨는 "1960년대 멜로드라마에서 보이는 여성 캐릭터의 직업은 대개 이랬고, 식모와 주부는 '특별한 노동'이 아니라는 점에서 같은 부류로 봤다"라고 설명했다.
1970년대로 넘어가면서부터는 술집에서 일하는 호스티스 캐릭터가 대거 등장했다. 김 씨는 '별들의 고향'(1974)이 엄청나게 히트하면서 '영자의 전성시대'(1975)가 나왔고, 이후로도 비슷한 내용의 영화가 여러 편 만들어졌다고 전했다.
김 씨는 "시골에서 온 아리따운 여성이 다방에 취직했다가 여기저기서 버림받고 가출하거나 실종되거나 죽거나 자살하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살아남은 여자가 거의 없다"라며 '여자들만 사는 거리', '오양의 아파트', '나는 77번 아가씨', '가시를 삼킨 장미' 등을 예로 들었다.
관객의 취향과 선호도를 알 수 있는 '관객 설문조사'가 처음 시행된 시기가 바로 이 때였고, 그 결과가 영화 제작에도 반영됐다는 게 김 씨의 설명이다.
김 씨는 "20년(1970~1980년대) 동안 한국영화에서는 일하는 여자란 대부분 호스티스였다. 이때(1990년대)부터는 로맨틱코미디가 많아졌는데, 미혼 남녀가 주인공이어야 해서 (극중 여성의 직업이) 주부일 수 없었다"라며 "이때부터 여성 주인공은 현실적이면서도 프로페셔널한 직업군으로 재현됐다"라고 밝혔다.
그 결과, 주부, 식모, 여공, 하녀, 호스티스 정도에 머물렀던 여성 캐릭터의 직업은 상당히 다양해졌다. '결혼 이야기'(1992) 최지혜는 성우, '101번째 프로포즈'(1993) 정원은 첼리스트, '마누라 죽이기'(1994) 장소영은 영화사 사장, '닥터 봉'(1995) 황여진은 작사가, '해피엔드'(1999) 최보라는 영어학원 원장이었다.
2000년대 이후로는 화장품 방문판매원('사랑해 말순씨'), 라디오 PD('봄날은 간다'), 교수('여교수의 은밀한 매력'), 안과 의사('분홍신'), 외제차 딜러('오로라 공주'), 핸드볼 선수('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등이 등장했고, 최근에는 교사('여교사'),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국가부도의 날'), 경찰('걸캅스'), 국회의원('정직한 후보')인 여성 캐릭터도 나오는 추세다.
김 씨는 남성 창작자가 다수였던 과거에는 영화 속 여성 캐릭터 또한 남성 중심적인 문화를 반영해 만들어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호스티스 영화에서는 스펙터클의 도구로 쓰인다. 언제나 공격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지만, 그 부분이 오히려 영화적인 즐거움의 절정으로 표현됐다"라고 부연했다.
김 씨는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에서 예술의 중심은 그들의 환희와 저항이 아니라 희생이나 눈물에 있었다. 고통을 짊어진 여성의 희생을 수호하는 형태의 영화가 많았던 것 같다"라면서도 "수적으로는 적지만 지속해서 현실을 반영한 직업군이 등장하고 있다. 이렇게 시사점을 던져주는 영화가 나오고, 여성 감독의 수가 점점 늘어나는 것 역시 주목할 만한 진보로 보인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