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생존 갈림길에 선 르노삼성이지만 노동조합은 여전히 회사와 강경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노조 역시도 회사 위기 상황을 알고 있지만 죽기 살기로 싸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분규 사업장, 합리적 회사라는 평가를 받던 르노삼성은 왜 무너졌을까?
◇ 박수받던 무분규 사업장은 왜 무너졌나
르노삼성 부산공장은 한때 무분규 사업장, 합리적 노사 관계로 박수받던 공장이었다. 지난 2015년부터 3년간 무분규로 임금 및 단체협약 협상(임단협)을 마무리하는 등 원만한 노사 관계를 이어갔다.
르노삼성 노조는 금속노조 등 상급단체에 소속된 노조가 아닌 개별 기업노조로 활동 중이다. 자연스레 자동차 업계의 단체 행동과도 거리가 멀었다.
이처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던 르노삼성 노사 관계가 무너졌다. 2018년도 임단협을 시작으로 2019년도 임단협 모두 장기간 파업과 직장폐쇄 등 극한의 대치 상황이 발생했다.
갈등이 터진 시기 자체도 좋지 않다. 회사 설명대로 르노삼성이 그동안 위탁받아 생산했던 닛산 SUV 로그 차량의 물량이 올해 3월이면 동이 난다. 새로운 물량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노사 갈등이 터졌다.
다만 생존의 갈림길에서도 르노삼성 노조는 강대강 대치를 선택했다. 노조가 폭발한 지점은 뚜렷하다. 그동안 노조가 많은 것을 양보한 상황에서 또 노조에 양보를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르노삼성 부산공장은 사실 전 세계 공장에서도 생산성이 매우 우수한 공장으로 꼽힌다. 지난 2017년 글로벌 컨설팅 회사 올리버 와이먼의 생산성 평가에서 부산공장은 전세계 148개 공장 중 8위에 올랐다. 르노그룹 내에선 3위를 차지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부산공장의 노동강도가 높은 상황에서 세운 기록이란 점이다.
부산공장은 1개 라인에서 7개 차종을 만드는 '혼류 생산' 공장이다. 혼류 생산은 그때그때 필요한 차를 만들기 때문에 재고 발생이 적고 경영상 효율적이지만 각기 다른 차를 만들어야 하는 노동자 입장에선 노동 강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부산상공회의소에 따르면 르노삼성 부산공장의 1인당 노동생산성은 2012년 5,800만 원에서 지난 2016년 2억 2,000만 원으로 늘어나는 등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르노삼성은 쌍용차와 한국GM과는 달리 영업이익도 우수하다. 지난 2012년 노사가 대규모 희망퇴직을 시행한 이후 르노삼성은 수년간 흑자 행진을 이어갔다. 2012년 -5.06%였던 영업이익률이 ▲ 2014년 3.9%로 크게 늘었고 이후로도 ▲ 2016년 6.62%, ▲ 2017년 6%, ▲ 2018년 6.3%로 꾸준히 6%대를 유지했다.
그러는 사이 프랑스 본사로 들어가는 배당금도 수천억 원으로 증가했다. 르노그룹은 '그룹 배당 정책'에 따라 각 지역 자회사로부터 배당금을 걷고 이후 재투자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르노삼성 관계자는 "회사 배당금은 그룹으로 들어간 뒤 다시 신차 연구개발비 등으로 순환 투자 중이며 르노삼성도 올해 6개의 신차를 출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르노삼성이 벌어들이는 돈의 대부분이 프랑스로 들어가는 것이다. 지난 2014년부터 2018년까지 프랑스 본사로 들어간 배당금만 약 6,500억 원에 달한다. 르노가 지난 2000년 삼성차를 인수할 당시 지불했던 6,150억 원은 이미 회수한 지 오래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도 직원 기본급은 수년째 동결됐다. 노조가 폭발한 지점이다.
르노삼성 노조는 2012년과 2013년에 임금 동결에 합의했고 2015년엔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2017년 기본급 인상이 이뤄졌지만 2018년 들어 기본급이 다시 동결됐다. 이어 현재 갈등을 빚고 있는 2019년도 임단협에서도 회사는 기본급 동결을 요구했다.
◇ '부산 1위' 사업장 흔들리자 부산이 움직인다
회사 입장은 다르다. 공장 경쟁력을 위해 기본급을 동결한 만큼 그에 대한 보상으로 일시금을 지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회사는 기본급 동결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매번 일시금을 지급하고 있다. 회사는 이번 2019년 임단협에서도 기본급 동결을 제시했고 그에 따라 일시금 600만 원과 통상임금 100% 인상을 제안했다.
물론 일시금보단 기본급 인상이 노동자에겐 더 매력적이다. 기본급 인상 효과는 매년 축적되고 상여금, 잔업비 등에도 인상효과가 발휘되지만 일시금은 받는 금액이 전부인 셈이다.
그렇다면 회사는 왜 기본급 인상이 아닌 600만 원 수준의 일시금을 지불하려는 것일까? 르노삼성은 '공장 경쟁력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산공장의 인건비가 르노그룹 내에서 가장 높은 만큼 고정금인 인건비를 더는 올릴 수 없다는 것이다. 대신 변동금 성격의 일시 보상금으로 그것을 대체하겠다는 것이다.
르노삼성 관계자는 "현재보다 더 높은 고정성 인건비 수준으로는 수출 물량 확보에 어려움이 크다"며 "XM3 수출 물량을 어느 공장이 생산할지 아직 결정되지 않았고 현재와 같이 불안정한 부산공장 상황에서 바로 결정되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결국 현재 부산공장과 스페인 바야돌리드 공장이 XM3 물량을 두고 경쟁 중인 상황에서 인건비를 올리면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다만 각 나라별 공장의 정규직과 비정규직 수가 다르고 임금 체계, 환율이 다른 상황에서 인건비에 대한 절대적인 비교가 불가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여기에다 혼류 생산 방식인 부산공장의 생산성과 노동강도를 고려할 때 단순히 비용만으로 경쟁력을 따질 수 없다는 것이다. 노조관계자 역시 "회사 측에 인건비를 비교한 자료를 요구했지만 받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부산광역시의 제조업 매출 1위 사업장인 르노삼성이 흔들리자 부산 지역 시민단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부산 지역 시민 단체가 지난 20일, '르노삼성 발전 부산시민회의'를 제안했고 르노삼성 노조가 참여를 결정하면서 파업이 중단됐다. 지난해 12월 20일부터 시작된 파업이 부산 지역 사회의 중재 끝에 일단 멈춰선 것이다.
시민단체의 움직임을 기점으로 르노삼성 노사는 집중교섭도 재개하기로 했다. 다음 달 4일부터 7일까지 집중교섭을 진행해 임금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