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를 누구의 개인정보인지 알 수 없도록 가명 처리한 뒤 이를 연구나 의료기기 개발에 활용하도록 한다는 계획이지만, 의료 정보의 특성상 식별될 수 있고 악용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 알 수 없게 가명 처리해 제공…바이오헬스 산업 육성 기대
보건복지부 임인택 보건산업정책국장은 15일 브리핑을 통해 "우리나라 병원이 보유한 방대한 의료데이터에도 불구하고 그동안은 법적 제약으로 인해 이를 희귀난치질환 치료제나 혁신적 의료기기 개발에 활용하기 어려운 실정이었다"며 "하지만 개인정보보호법이 국회를 통과하며 물꼬가 트였다"고 밝혔다.
그동안 개인의 건강에 대한 정보는 민감정보로 지정돼 별도의 동의를 받는 경우에만 쓸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 9일 개인정보보호법이 개정되면서 '가명 조치'를 거칠 경우 환자들의 임상 정보를 민간이 활용할 수 있게 됐다.
가명 조치는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이름이나 생년월일, 주소, 연락처 등을 가리고 나머지 정보만을 제공해 특정인을 알아볼 수 없게 만드는 일이다.
예를 들면, 제약회사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고혈압 환자들에 대한 진료 및 투약 기록 등을 요구했다면, 심평원이 심의와 절차를 거쳐 가명 처리된 정보를 건네주는 식이다.
복지부는 이러한 데이터를 이용하는 절차나 필요한 보안조치, 가명정보 활용시스템 요건 등이 담긴 '의료데이터 활용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올 하반기에 발표할 예정이다.
정부는 의료데이터의 민간 개방 확대가 3대 신산업 중 하나인 바이오헬스 산업 육성에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먼저, 인공지능(AI)이 결합된 의료기기의 경우에는 축적된 임상 정보가 인공지능의 학습 데이터로 기능할 수 있다.
가령, 수많은 엑스레이(X-Ray) 영상과 영상에 담긴 질병을 인공지능이 학습하게 되면, 인공지능을 활용해 다른 환자들의 진단에 활용할 수 있고 다양한 수술 방식을 학습한 로봇형 의료기기가 데이터를 바탕으로 최적의 방법을 찾는 것이다.
이외에도 희귀질환 치료에 있어서도 해당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유전적 특성과 치료 경과 등을 데이터로 활용할 수 있어 치료제 개발에 이바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의료 정보의 특성상, 다른 가명 정보보다 식별될 가능성이 높다는 데에 있다.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의 전진한 정책국장은 "어떤 병원에서 특정 수술을 받은 서울 거주의 20대 남성이라는 식으로 가명 처리가 될 경우 수가 적어 누구인지 금방 드러날 가능성이 높고, 유전자 정보는 개개인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가명 처리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가명 정보 자체로는 개인을 식별할 수 없지만 이 정보가 병원비 결제 내역이나 내원 기록 등 다른 경로로 입수된 정보들과 결합될 경우 특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민사회계는 민간에 개방된 건강 정보들이 암암리에 공유되면서 악용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개인의 정신병력이나 산부인과력 등 민감한 정보가 유출되면 취업의 제약을 받거나 보험사가 보험 가입을 거절할 수도 있고, 심지어 취약 계층을 노린 보이스피싱도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복지부는 다양한 우려에 대한 보완책을 마련하고 개인의 정보 주체권도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하반기 발표할 지침에 반영하겠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가명 처리된 정보를 재식별하는 것이 완전히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다양한 기법을 통해 보완해 나갈 것"이라며 "또 개인정보보호법은 재식별화를 시도하거나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강하게 처벌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유전자 정보에 한해서는 완전한 가명 처리가 어렵다는 점을 감안해 해당 정보를 활용할 때 반드시 개인의 동의를 구할 방침이다.
아울러, 애초에 자신의 의료데이터가 민간에 제공되길 원하지 않는 사람은 '옵트 아웃(Opt-out, 정보 수집 거부)'을 요청할 수 있도록 제도를 꾸리기로 했다.
복지부 임인택 보건산업정책국장은 "서구 국가의 '옵트 아웃' 제도처럼 개인이 명시적으로 원하지 않을 경우 정보가 처리되지 않게 되도록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