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 형제의 난이 남매의 난으로

(왼쪽부터)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사진=자료사진)
2002년 11월 16일 밤 9시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이 사망하기 15시간 전.

혼수상태에 빠졌던 조 회장이 갑자기 정신을 차리면서 유언을 남기기 시작했다. 병실에 남아있던 대한항공 직원이 이를 받아 적기 시작했다.

'대한항공과 인하대는 장남에게 주고…'

이같은 유언을 바탕으로 한진그룹의 핵심기업인 대한항공은 장남인 조양호에게 돌아갔고 이를 바탕으로 한진그룹 회장직에도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둘째동생인 남호와 넷째인 정호는 유언장이 위조됐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그룹의 핵심 비상장사였던 정석기업의 지분 배분 문제를 놓고도 이들은 조양호와 또다른 소송전을 벌였다.

형제간의 골은 아버지 제사를 양력으로 할지, 음력으로 할지 같은 소소한 문제로까지 번졌다.

'형제의 난'으로 결국 한진그룹은 항공·호텔은 조양호가, 중공업은 2남인 조남호가, 해운은 3남인 조수호, 금융은 4남인 조정호가 소유하는 것으로 계열분리를 이뤘다.

한진가 '형제의 난'이 2019년 연말 들어 '남매의 난'으로 대물림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장녀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23일 법률대리인을 통해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에게 '공동운영의 정신을 지키지 않는다'며 공개 비난에 나섰다.

조 전 부사장은 "조 회장이 가족간의 협의에 무성의와 지연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향후 다양한 주주의 의견을 듣고 협의를 진행해 나가고자 한다"고 밝혔다.

조 전 부사장이 조 회장을 공개비난하고 나선 직접적인 이유는 지난달 단행된 그룹 임원 인사에서 자신의 복귀가 불발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땅콩 회항 소동 이후 자리에서 물러났던 조 전 부사장은 지난해 3월 칼호텔네트워크 사장으로 복귀했으나 동생인 조현민 전무가 '물컵 갑질' 사건을 일으키자 다시 자리에서 물러났다.

조 전무는 사건 이후 복귀했지만 유독 자신만은 복귀를 하지 못하고 있는데 대한 반감이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여기에 지난 5월 대기업 총수 지정 당시 한진그룹 총수를 누구로 공정위에 신고할 것인지를 놓고 남매간 갈등이 있었다. 남매가 한진그룹 총수 문제에 합의를 이루지 못해 공정위의 대기업 지정이 일주일 뒤로 미뤄지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조 전 부사장도 이번 공개비판에서 "상속인간의 실질적인 합의나 충분한 논의 없이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대규모 기업집단의 동일인(총수)이 지정됐고 조 전 부사장의 복귀 등에 대해 조 전 부사장과의 사이에 어떠한 합의도 없었음에도 대외적으로는 합의가 있었던 것처럼 공표됐다"고 적시하기도 했다.

조 전 부사장이 이처럼 조 회장을 공개압박할 수 있는 힘은 지분에서 나온다. 현재 한진그룹 지주회사인 한진칼 지분은 장남인 조원태 회장 6.46%, 장녀인 조현아 전 부사장 6.43%, 차녀 조현민 한진칼 전무 6.42%, 모친 이명희 고문 5.27% 으로 3자녀 사이에 지분이 거의 비슷하다.

지분이 엇비슷한만큼 남매간의 다툼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다툼의 정점은 내년 3월 한진의 사내 이사를 뽑는 주주총회가 될 전망이다. 조원태 회장 입장으로서는 우호지분을 끌어들여 사내 이사가 돼야 한다. 우호 지분은 3대 주주인 델타 항공(10%)이 유력하다.

문제는 가족 지분이다. 델타 항공을 우호지분으로 한다고 해도 17%를 넘지 못한다. 조 전 부사장과 조현민 전무, 모친인 이명희씨의 지분을 모두 합치면 18.27%로, 조 회장과 델타항공의 지분을 넘어선다.

조 회장으로서는 조현민 전무와 이명희씨의 지분을 우호적으로 확보해야 하지만 모친과의 관계가 썩 원만하지는 않다는 소문도 있다.

이에 따라 한진그룹 남매의 난이 이명희씨의 향배에 따라 판가름 날 것이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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