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 특별대표는 16일 오전부터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북핵 수석대표협의를 가진데 이어 청와대를 찾아 문재인 대통령을 면담하고 김연철 통일부 장관과 오찬회동을 갖는 등 촘촘한 방한 일정을 소화했다.
그는 특히 이 본부장과 협의 후 약식 기자회견을 갖고 "북한의 카운터파트에게 직접적으로 말하겠다"며 "일을 할 때이고 그 일을 완수하자. 우리는 여기에 있고 당신은 우리와 어떻게 접촉할지를 안다"고 말했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과의 판문점 회동을 제안한 것이다.
그는 또 북한이 임의로 설정한 '연말 협상시한'에 대해 미국은 동의한 적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도 "균형 있는 합의에 도달하기 위한 유연한 협상"과 "실현 가능한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창의적 방안"을 언급했다.
하지만 이는 북한이 '대화를 위한 대화', '시간끌기 술수'라며 거부했던 기존 입장을 되풀이한 수준이다. 북미 간 일촉즉발의 긴장을 완화할 처방으로는 함량 미달인 셈이다.
그는 오히려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거론하며 비판적 어조로 자제를 촉구했고, 최근 잇단 담화에 대해서도 "매우 적대적이고 부정적이며 불필요하다"면서 지금까지 북미 간 협의를 제대로 반영하지도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북측이 원하는 답변이 전혀 아닌 것이다.
따라서 북미 판문점 접촉은 이번에도 불발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비건 대표의 국내 체류 일정이 하루 더 남아있긴 하지만 추가적인 대북 메시지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사실 비건 대표는 한국으로 출발에 앞서 "미국의 방침은 바뀐 것이 없다"고 이미 밝혔다. 회담 성사보다는 회담 결렬 책임을 피하기 위한 방한이라는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양 교수는 "예를 들어 '6.12성명에 토대한 비핵화 조치와 함께 북한이 요구하는 발전과 생존권에 대해 논의하기 위한 모든 준비가 돼있다'는 정도의 메시지는 나왔어야 했다"고 큰 아쉬움을 나타냈다.
일부 기대를 모았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친서 전달 여부도 헛된 희망으로 끝나게 됐다.
과거 수차례 '친서 외교'로 교착국면을 돌파했고 '브로맨스'로 불릴 만큼 정상간 친분을 과시해온 만큼 이번에도 막판 변수가 될 것이란 희망적 사고였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미국연구센터장은 "친서 전달이 목적이라면 다른 방법으로 조용히 했을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도 친서를 보내기엔 부담스러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이 비건 대표를 15개월 만에 단독 접견한 것도 관심을 끌었지만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주목할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청와대는 이날 접견에 대해 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지속을 위한 노력을 당부했고 비건 대표는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구축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이루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나가겠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다만 청와대로서는 국무부 부장관 임명을 앞둔 비건 대표에 대한 장기적 관리 필요성도 있었을 것으로 분석된다.
우 센터장은 "만약 폼페이오 장관이 (상원의원 출마로) 사퇴하고 비건 대표가 장관대행을 맡으면 아무래도 한국 문제를 소홀히 할 수밖에 없으니 비핵화 문제에 계속 관심을 갖게 하려는 노력 같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북한으로서도 비핵화 협상의 최종 결렬은 매우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지만 현재로선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