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
① 피해 가족 아픔은 '진행형'…"매일 사진 보며 대화" ② 안녕하지 못했던 지난 1년…아이들, 사고 후유증 '고통' ③ '관리 사각지대' 농어촌민박…안전불감증 '여전' ④ 다시 다녀온 사고현장…우리는 '무슨' 교훈을 얻었나 (끝) |
지난 11일 취재진이 찾은 사고 펜션 건물 주변으로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커다랗게 걸려 있었던 펜션 간판은 떼어졌고 베란다용으로 만든 목조물도 철거됐지만, 건물은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떼어진 후 남아있는 간판 흔적이 마치 아무리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상처'와 같았다.
건물을 둘러보던 중 사고가 발생했던 방 외벽에 새롭게 설치된 가스 배출구가 눈에 띄었다. 어떤 용도로 건물을 사용할지 알 수 없지만, 가스보일러를 재설치했음을 알 수 있었다. 아직까지 해당 건물은 별다른 상업 용도로 사용되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일부 업주들은 관련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거나 설치에 불만을 표출하는 등 안전불감증은 반복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경보기에 대한 제품 안내나 검증 없이 그저 설치에만 초점을 두고 있는 부분이다.
강릉펜션참사가 발생한 지점에서 400여m 떨어진 곳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임성용(32)씨는 최근 당황스러운 일을 겪어야 했다. 1만 5천 원을 주고 구매한 일산화탄소경보기가 오작동한 까닭이다.
이어 "일산화탄소경보기를 설치하라고 하는데 정작 국내에 나온 제품은 거의 없고, 제품 성능에 관한 정보도 찾기 어렵다"며 "가격마다 기능도 천차만별인 듯한데, 정부나 지자체 등 유관기관은 설치를 지시만 할 것이 아니라 관련한 안내를 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오작동 우려 없이 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어떤 제품을 설치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단순히 경보기 설치만 의무사항으로 규정한 것은 전형적인 '보여주기식 행정'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강릉시 역시 이와 관련해 허점을 인정하고 있다.
강릉시 관계자는 "경보기를 자부담해야 하는 업주 입장에서는 저렴한 제품을 구매하려고 할 텐데, 과연 사고를 막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경보기 성능에 대한 표준화한 지침 마련은 필요하다"고 공감했다.
특히 정부는 참사 이후 가스보일러를 정기적으로 점검하도록 조치했지만, 현재 지원체계로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한국가스안전공사에 따르면 건물 100㎡ 이하, LP 가스시설 저장용량 250kg 미만인 업소의 경우 정기점검 대상이 아니다. 주로 영세한 농어촌민박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경우 가스공급업체가 정기점검해야 한다.
하지만 가스공급업체 중에는 1인이 운영하는 곳이 있을 정도로 열악하고, 폐업도 잦아 지속적인 점검이 이뤄지기 어렵다. 또 숙박업소 1곳에 가스를 공급하는 업체가 여러 곳인 경우 체계적인 관리도 불가능하다.
가스안전공사 관계자는 "모든 업소를 다 점검하기에는 인력 등 한계가 있다"며 "오히려 '가스보일러 안전점검 지원센터'를 별도로 만들어 점검 요청이 왔을 때 가스안전공사와 가스공급업체가 점검반을 구성해 파견하는 방식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제안했다.
어느덧 1년이 지나고 있는 강릉펜션참사. 참사 이후에도 반복되는 안전불감증과 땜빵식 보여주기 정책 등은 과연 우리가 안전사회로 나아갈 의지는 있는 것인지, 깊은 의문을 남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