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설정한 비핵화 협상 시한이 임박했지만 양측 입장이 좁혀지기는커녕 오히려 상황만 악화되면서 한반도 정세가 다시 격랑에 휘말릴 가능성이 우려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일(현지시간) 북한에 비핵화 합의 준수를 촉구하면서 필요할 경우 무력을 사용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북한이 압박 수위를 계속 높여왔음에도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다 돌연 초강경 경고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좋은 관계라는 말은 빼놓지 않았지만 2017년 이후 쓰지 않던 '로켓맨' 표현을 다시 사용하며 북한을 자극했다.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냉랭해진 북미관계를 그나마 지탱해온 정상 간 친분마저 금이 갈 위기에 놓인 셈이다.
북한 당국자들로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최고 존엄에 대한 모욕이자 체제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 대미 강경 메시지로 되받아치는 충성 경쟁은 이제 불을 보듯 뻔하다.
실제로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 발언이 알려진 직후인 4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를 이달 하순에 소집하기로 결정한 사실을 공개했다.
2013년 3월 열린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선 경제·핵 병진노선이 제시됐고 지난해 4월 전원회의에선 경제발전총력집중 노선이 결정됐다.
따라서 이번에도 이미 공언했던 '새로운 길' 등의 중대 결정이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 대한 기대를 미리 접고 연말까지 기다릴 것 없이 기선 제압하겠다는 것이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북한은 미국의 대북 협상태도와 남한 정부의 대북 태도를 강력하게 비난하면서 비핵화 협상 중단과 핵보유국 지위 강화 입장을 천명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김 위원장이 중대 결정에 앞서 즐겨 찾았던 백두산에 이번에는 군부 인사들을 대거 동행한 점에 주목해 "북한 매체에서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선군정치' 용어가 재등장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까지 상황 흐름으로 볼 때, 마주 달리는 양측을 멈춰 세울 특단의 조치가 없는 한 비핵화 협상은 회복 불능의 파국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카운터파트였던 김영철 등 통일전선부가 힘을 잃으면서 북미 간 물밑채널도 거의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북미 정상간 '친서 외교'를 통한 극적 반전을 기대하기도 했지만 그 가능성도 희박해졌다.
이에 따라 문재인 대통령 역할론이 또다시 거론되지만 이전과는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북한은 문 대통령에 대한 깊은 실망감을 표출하며 남한 배제 전략을 노골화 했다. 북미 중재에 다시 뛰어들기 위해서는 치러야 할 비용이 훨씬 커진 것이다.
한 전문가는 "상황이 어느 때보다 엄중하기 때문에 미국과 다소 얼굴을 붉히는 한이 있더라도 비상한 상황에 맞는 비상한 대책이 나와야 하지만 과연 그럴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회의적으로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