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전신주는 한국전력공사 측에서 이전·교체 계획을 세웠지만, 부지 소유권 문제 등을 이유로 조처를 하지 못하다가 결국 재난으로 이어진 것으로 파악된다.
◇ 부지 소유권 문제 등으로 2년 전 세운 이전·교체 계획 집행 '못해'
CBS노컷뉴스 취재결과 한전은 지난 2017년 사고 전신주에 대한 이전·교체 계획을 세웠다. 원활한 관리를 진행하기에 해당 전신주의 접근성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산불발생 당시 해당 전신주는 차도를 기준으로 50m여 정도 떨어진 곳에 설치돼 있었는데, 이마저도 울타리 뒤에 세워져 있었다. 한전 측은 관리의 어려움에 공감해 2년 전 이전·교체 계획을 세웠지만, 부지 소유권 문제로 난항을 겪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 역시 한전의 전신주 관리부실 부분에 집중해 수사를 벌여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전신주에 대한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이유 때문인지, 산불발생 이후 전력차단 장치인 '개폐기'와 연결 전선인 '리드선'과의 접합점에 씌워져 있는 '덮개 안'에서 많은 이물질이 발견되기도 했다(CBS노컷뉴스 4월 9일. [단독] 고성 산불 원인이 '미세먼지'?…한전 책임회피 논란).
당시 사건을 담당한 경찰 관계자는 "덮개 안에서 볼펜심만한 나뭇가지 수십 개가 발견됐다"며 "다른 덮개 안에서도 먼지 등 이물질이 있었다"고 전했다. 사고 당시 개폐기에 연결된 전선인 리드선은 모두 6개였다.
이에 대해 한전 관계자는 "2년 전 해당 전신주에 대한 이전·교체 계획을 세운 것은 맞지만, 이번 산불과는 무관하다"며 "부지 문제도 잘 해결되면서 국공유지인 현재 위치에 새롭게 세운 것뿐"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 경찰, 책임자 9명 '불구속' 기소의견으로 송치…이재민들 강한 불만
20일 경찰은 한전과 협력업체 관계자 등 9명을 불구속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지난 19일 송치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업무상 실화, 업무상 과실치사상, 전기산업법 위반 등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결과를 바탕으로 수사를 진행한 결과 전선 자체의 노후, 부실시공, 부실관리 등 복합적인 문제로 전선이 끊어지면서 산불이 발생했다.
그러나 경찰수사가 예상과 달리 책임자들에 대한 구속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이재민들은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수사결과 발표 이후 고성 한전발화 산불피해 이재민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 노장현 위원장은 취재진과 만나 "경찰은 책임자에 대한 영장을 두 번이나 청구했는데 검찰이 기각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위조된 표창장 하나도 거짓이면 구속되는 마당에 수많은 이재민이 발생한 동해안 산불에서 한 명도 구속되지 않고 불구속 재판이 진행되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맹비난했다.
이어 "8개월 동안 진행된 수사결과가 이 정도 수준이라니 참담할 뿐"이라며 "검찰은 과연 수사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비대위는 이날 오후 춘천지방법원 속초지원을 직접 찾아 "지금이라도 책임자를 구속하라"며 경찰의 수사발표를 강력히 규탄했다. 비대위는 오는 25일 한전과 피해액 보상 비율에 대한 6차 협상을 진행한다.
앞서 지난 4월 4일 오후 7시 17분쯤 시작된 고성·속초지역 산불로 2명이 사망하고 1490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또 산불로 인해 1260억원이 넘는 재산피해가 발생했으며 2872㏊의 산림이 화마로 휩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