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의원의 ‘물갈이’ 화살이 겨냥하고 있는 과녁지가 친박(親朴) 자신들, 그중에서도 그간 당내 기득권을 독차지한 영남권(TK·PK) 중진 의원들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이들은 당장 김 의원이 맡고 있는 보건복지위원장과 여의도연구원장 등 ‘자리’를 내놓으라며 반격에 나섰다.
하지만 이 같은 반발은 냉정한 자기 성찰 없는 감정적 대응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김 의원이 그리고 있는 쇄신의 밑그림에 친박계가 탈락할 가능성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텃밭’ 영남을 중심으로 뭉쳐 있는 그들이 별다른 선거 전략을 내놓지 못한 것은 더 큰 문제다.
김 의원의 요구에 공개적으로 선을 그은 사람은 황교안 대표였다. 황 대표는 18일, 전날 김 의원의 선언을 반영한 듯 “21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우리가 국민에게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면 저부터 책임지고 물러나겠다”고 했다.
김 의원은 지도부터 각성하고 불출마, 당 해체의 각오로 고강도 쇄신책을 내달라는 주문이었지만, 황 대표의 답변은 단순했다.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김 의원의 선언에 반응한 것은 정미경·신보라 최고위원, 두 사람 뿐이었다. 지도부가 묵살하려 든 것이다.
오히려 황 대표 주변에선 김 의원을 흔드는 발언마저 나오고 있다. 한 관계자는 이날 황 대표의 발언에 대해 “김세연의 요구를 절반 정도 들어준 것”이라면서도 “여의도연구원장을 맡으면서 새로운 정당을 연구하겠다? 이해가 안 된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이 여연원장 직을 내놔야 한다는 요구는 ‘불출마 선언’ 직후 조직적으로 제기됐다. 이른바 진박(眞朴) 성향으로 분류되는 몇몇 의원들은 “우리도 민주당의 양정철 원장 사례처럼 전략을 총괄할 수 있는 사람으로 새로 뽑아야 한다”고 얘기했다.
친박계가 여연 자리를 겨냥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 출신의 한 의원이 한국당 의원 단체 SNS방에서 김 의원을 먼저 비판했다고 한다. ‘김 원장이 여연원장으로 있으면서 받아본 당 지지율을 보고 절망해 혼자 살겠다고 탈출하려는 것’이란 취지로 불출마 선언의 진정성을 의심했다.
김 의원이 “당이 좀비처럼 됐다”, “국민적인 민폐 정당” 등 돌직구를 날린 데 대해 “왜 내부총질을 하느냐”는 즉각적인 반응도 있었다. 그러나 여연원장에서 내려오라는 얘기는 다른 차원의 공격이다.
사실상 ‘더 이상 당 상황을 객관적으로 알 수 있는 자리에 둘 수 없다’는 식으로 이는 한 배를 타기 어려워졌다는 인식이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황 대표의 대응과 친박계의 반발을 놓고 온도 차이는 있지만, 계파와 지역을 막론하고 뒷말이 나오고 있다.
한 수도권 비박계 의원은 “김 의원이 던진 메시지는 간명하다. 황 대표가 당직을 걸고, 구체적인 수치로 물갈이 기준을 내라는 것이다. 그런데 황 대표는 총선 뒤에 당직을 걸겠다니 선후가 틀렸다”며 “당연히 나올 수 있는 충언을 놓고 소(小)영웅주의로 몰고 가는 당 상황이 한심하다”고 꼬집었다.
영남권 일각에서도 “당 대표가 계속 실기하고 있다. 김 의원이 논란이 될 발언을 한 측면도 있지만, 그렇게 하기 전에 통합에 대한 찬‧반 정도는 정리했어야 했다”며 “영남이야 텃밭이라지만, 전국적으로 생각하면 전략적 대안도 없으면서 감정적으로 반응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황 대표가 마치 ‘배수의 진’이라도 친듯 총선 재신임 문제를 내건 것을 놓고도 당 상황을 수습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일각에선 “선거에서 지면 당 대표를 내려놓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며 “하나마나 한 소리에 불과하다”는 볼 멘 소리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