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전범' 낙인 한국인들…"나는 바보였다"

태평양전쟁 전범재판 포로감시원 조선인 23명 사형
마지막 남은 조선인 전범 이학래 증언 "밤낮 나와요"
"무가치한 것 위해 헌신하다 바보가 됐다는 말 절실"

26세에 싱가포르 창이형무소에서 전범 재판을 받고 사형 당한 포로감시원 조문상(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우리는 보통 간단명료한 것에 끌리기 마련이다. 깊게 고민할 필요 없이 생각과 말 그리고 행동을 그것에 맞추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까닭이리라. 그러나 그 자리에는 진실로 향하는 비판과 성찰이 들어서기 힘든 법이다. 간략하고 단순하면서도 분명한 태도를 의심할 때, 그 너머 진실은 고개를 든다.

지난 1945년 일제가 연합군을 상대로 벌인 태평양전쟁에서 패한 뒤 그 책임을 묻는 전범 재판이 열렸다. 당시 조선인 23명이 전범 판결을 받고 사형 당했는데, 이들 대다수는 포로감시원 신분이었다. 죄목은 전쟁 포로에 대한 인도적 대우를 명시한 제네바협약 위반. 그나마 살아남은 조선인 전범들에게 그 사실은 평생 감추고픈 비밀이었다.

싱가포르 창이형무소에 조선인 전범 사형수 임영준과 이학래 둘이 남았다. 이 가운데 임영준이 먼저 형장으로 끌려가던 날, 그는 종일 말이 없었다. 먹지도 마시지도 않던 그는 마지막으로 남게 된 이학래에게 유언 같은 말을 남겼다.

"당신이 감형됐으면 좋겠다. 만약 당신이 사형 당하지 않고 나간다면, 내가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고 꼭 말해 달라."

확답을 줄 수 없던 이학래는 임영준과 악수만 나눴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그는 감형으로 풀려났다. 살아남은 그에게 임영준의 말은 평생을 따라다녔다. 그는 어눌한 한국말로 "(임영준의 말이) 밤낮 나와요(떠올라요)"라고 했다.

오는 11일(월) 오전 11시 CBS라디오에서 방송되는 특집 다큐멘터리 '조선인 전범-75년 동안의 고독'에서 조선인 전범 박윤상은 "나는 빠가야로(바보)"라고 자조했다.

이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CBS 정혜윤 PD는 "그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비판 없이 정말 열심히 했고 그 결과로 전범이 됐다"며 말을 이었다.

"이학래 씨가 스스로 '바보'라고 칭한 데는 그들(일제)이 원하는 대로 뭐든 했다는 반성이 담겼다. 자신의 무지를 성찰하는 그 슬픔은 나에게도 전해졌다. 나 역시 뭔가에 열정적으로 헌신한다. 여기에는 '무엇을 위해서?'라는 물음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학래 씨가 전하는, 너무나도 무가치한 것을 위해 헌신하다가 바보가 됐다는 말이 절실하게 다가온 이유다."


◇ "나는 그 힘에 충성했다'…그 무지함에 슬프고 분노한다'

조선인 전범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국가보상 소송 변호인 이마무라 쓰구오(오른쪽)와 CBS 정혜윤 PD가 관련 재판 기록을 검토하고 있다. (사진=CBS 제공)
60분짜리 이 다큐멘터리는 지난 1984년 강원도 양구에서 생을 마친 한 농부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에게는 왼쪽 갈비뼈 일곱 대가 없었다. 생전 그는 "인디언 화살에 맞았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사실 그는 전범 판결을 받고 보복성 학대를 받은 인물이었다. 그 결과 결핵을 앓고 갈비뼈 절단 수술을 받은 것이다.

1981년 정신질환을 앓던 한 남자가 길거리에서 생을 마친 일, 1990년 한 회사원이 일본대사 차량에 올라타 유인물을 뿌리다 연행된 사건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전범 낙인이 찍힌 조선인들의 일본 내 저항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격렬했다.

정혜윤 PD는 "현 아베 일본 수상의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가 A급 전범임에도 불구하고 1957년 수상이 되는데, 당시 조선인 전범들이 수상관저를 점거하기도 했다"며 "이들은 그때 '너희 일본은 한국인인 우리를 일본인으로 처벌받게 만들었고, 출소한 뒤에는 한국인이라며 외면했다'는 비판을 제기했다"고 전했다.

태평양전쟁 당시 전범 판결을 받은 조선인 7명이 1991년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국가보상 청구재판 역시 같은 맥락이다. '조선인 전범-75년 동안의 고독'은 우리나라 방송으로는 처음으로 당시 자판 자료를 다룬다.

정 PD는 이 재판을 두고 "역사의 재판장에서 정의의 이름으로 폐기처분된 사람들이 다시 한 번 정의를 묻는 과정"이라고 표현했다.

"1945년 태평양전쟁 전범 재판은 승자인 연합군이 정의를 묻는 재판이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정의의 이름으로 재판한다는 연합군 입장은 크게 환영받았다. 당시 재판 쟁점이 포로 학대에 맞춰지면서 포로감시원으로 있던 조선인들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일본군 책임자가 아니라, 현장에서 나를 괴롭혔던, 내 따귀를 때렸던 포로감시원들을 전범으로 지목한 것인데, 정의 실현과는 거리가 멀었다."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재판 증거 가운데 1942년 노구치부대에서 포로감시 특수부대를 모집한다는 신문 광고가 있다. '조선인을 포로감시원으로 모집하는 것은 엄청난 영광이다' '당당한 대동아공영권 지도자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당대 식민 교육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정 PD는 "그 시절 철저하게 세뇌 당해 일제가 원하는 인간형이 된 스스로를 '바보'라고 표현하는 조선인 전범들의 진술은 이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며 설명을 이어갔다.

"그들의 진술은 우리나라에 알려져 있지 않다. 그냥 전범으로 낙인 찍힌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사실 전범 판결보다 훨씬 귀기울여야 할 점은 '왜 전범이 됐나'라는 물음에 담긴 비밀이다. 그들은 '실제로 나는 그 힘에 충성했다' '나는 일본에 순종하고 복종하는 것이 올바른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증언한다. 무엇보다 핵심은 '이런 나의 무지함에 슬프고 분노한다'는 그들의 비판과 성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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