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측은 29일 오전 금강산국제관광국 명의로 통일부와 현대아산에 금강산 시설철거 계획과 관련한 답신을 보내왔다. 북측은 남측이 제안한 별도의 실무회담을 가질 필요 없이 문서교환방식으로 합의할 것을 주장했다.
통일부가 전날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통해 실무회담 개최를 제의하는 통지문을 보낸 지 하루 만이다.
정부는 일단 현대아산 측과 긴밀히 협의하면서 대응 방향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북측이 마주앉는 것조차 거부하는 상황에선 선택의 폭이 매우 제한될 수밖에 없다.
북측이 비록 '남측 관계부문과의 합의'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형식적 절차에 불과할 수 있다. 자신들이 요구한 서면 방식에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일방적 조치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럴 경우 남북경제협력의 상징적 버팀목인 금강산 관광은 10여년 간의 방치 끝에 역사 속으로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개성공단 역시 같은 운명을 겪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북측의 실무회담 거부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작심하고 초강수 발언에 나설 때부터 어느 정도 예견된 측면이 있다.
그는 지난 23일 보도된 북한매체를 통해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너절한 남측시설"을 "싹 들어내라"고 지시했다.
이에 정부는 차제에 금강산관광 문제를 포괄적으로 협의하자고 역제안하며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고자 했지만 현재로선 무망한 일이 됐다.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이 직접 언급을 통해 시설물 철거로 제한한 상황에서 실무자들이 그 이상을 얘기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분석했다.
김 위원장으로선 금강산을 인접한 원산 갈마지구 개발과 묶어 '독자 개발'로 방향을 정해놓은 상황이다. 남측으로부터 합당한 반대급부가 없는 한 계획을 바꿀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는 "북남관계가 발전하지 않으면 금강산관광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되어있는데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라며 '선임자'들까지 비판대에 올렸다.
결국 북측을 실무회담에 끌어내기 위해서는 단지 회담을 위한 회담이 아니라 뭔가 특별한 제안이 나올 수 있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
김준형 국립외교원장은 이날 TBS라디오에 출연해 "북한 입장에서 보면 우리의 근본적인 자세가 베팅을 하고 미국을 설득시킨다는 쪽에 무게가 실리지 않으면 단순히 금강산 문제를 가지고 실무회담에 나오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실무회담 제안과 함께, 회담에서 논의될 우리 측 내용에 대해서도 최소한 운을 뗄 필요는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전날 논평에서 "지금은 5.24 조치 해제 등 남북교류를 제한하는 조치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를 통해 문제 해결의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북측의 진짜 관심사는 금강산이 아니라 비핵화 상응조치로 요구하고 있는 체제안전보장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내년 한미연합훈련 실시 여부가 남북관계에서 중요한 바로미터가 될 것"이라며 이에 대한 과감한 결정을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