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력근로제가 52시간제 만병통치약?

정부·국회·경영계 모두 탄력근로제 관련 법 개정에 전력투구
주52시간 준비도 어려운데…정작 중소기업의 제도 수요는 아직 불확실
"복잡하고 많은 비용 필요한 탄력근무제보다 실효성 있는 대책 필요해"

(일러스트=연합뉴스)
내년 1월부터 50~299인 사업장에 확대 시행될 주52시간제를 위해 정부가 탄력적 근로시간제(탄력근로제) 보완 입법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중소기업의 실정에 맞지 않은 해법을 무리하게 추진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현재 정부와 여당은 물론, 보수야당과 경영계 모두 주52시간제 도입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최대 승부처로 탄력근로제 관련 법 개정에 힘을 쏟고 있다.

고용노동부 이재갑 장관은 지난 14일 "주52시간 관련 법안의 조속한 국회 통과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탄력근로제 관련 법 개정이 최우선 과제라고 강조한 바 있다.

앞서 여당은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합의안을 토대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기존 최장 3개월에서 6개월로 확대하는 개정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보수야당과 경영계가 단위기간을 1년으로 더 늘리고, 탄력근로제 외에도 선택근로제나 재량근로제 등 다른 유연근무제의 요건도 완화하라고 버티면서 법 통과는 반 년 넘게 미뤄졌다.

특히 지난 24일 중소기업중앙회는 실태조사 결과 주52시간제 시행을 위해 개선이 필요한 제도로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 기간과 요건 개선’(69.7%)' 답변이 가장 많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달 고용노동부 조사 결과에 나타난 답변 양상은 조금 다르다.

우선 노동부 조사에서는 주52시간제를 시행해도 문제없다는 기업이 61.0%, 준비 중이라는 기업도 31.8%로 주52시간제를 준비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기업은 7.2%에 불과했다.

준비 중인 기업도 탄력근로제가 포함된 유연근무제 도입을 선택한 경우는 38.1%(중복답변 포함)에 불과했고, 대부분은 기존 근무체계를 개편(67.5%)하거나 신규 인력을 채용(45.2%)했다.

준비하지 못한 기업도 그 이유로 유연근로제를 도입하기 어렵다고 답한 곳은 6.0%에 불과했고, 대부분은 추가 채용에 따른 인건비 부담(53.3%)을 꼽았다.

또 '주문 예측의 어려움' 답변도 13.7%나 됐는데, 사전에 근무 시간을 조정해야 하는 탄력근로제를 도입하기 어렵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탄력근로제 논란이 정치적 쟁점으로 부각되면서 정치권과 경영계가 필요 이상으로 매몰됐다고 지적한다.

부경대 황선웅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노동시간 단축 정책이 편향적으로 보일까 우려해 주고받기식으로 협상하느라 탄력근로제가 정치적인 쟁점이 됐다"며 "탄력근로제 관련 법이 개정되야만 주52시간제가 정착된다거나 기업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주장은 본질에서 벗어난 얘기"라고 비판했다.

이어 "계절 수요가 큰 업종이나 IT 등 일부 필요한 분야도 있지만, 상시적인 장시간 노동 체계가 근본 문제"라며 "이에 대한 부담을 줄이기 위한 실체적 지원부터 적극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작 탄력근로제의 단위기간을 확대하더라도 대다수 중소기업이 이를 적용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주52시간제 도입을 위한 기존 근무체계 개편조차 쉽지 않은 마당에 요건과 준비과정이 복잡하고, 일부 산업 분야에만 효과가 큰 탄력근로제까지 준비하려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화여대 이승욱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탄력근로제를 운영하려면 직원들의 노동시간, 향후 업무량 등을 정밀하게 계산해야 하는데, 이는 정부기관조차 어려워하는 작업"이라며 "탄력근로제가 적합하지 않은 업종일 수도 있고, 탄력근로제 준비 비용도 상당하기 때문에 다양한 대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예를 들어 1주 12시간으로 시간외근무 상한선을 엄격하게 제한하는데, 월이나 연 단위로 유연하게 정하도록 한다면 간편하게 대처할 수 있다"며 "다만 현재 노동자 개인에게 관련 동의를 받고 있는데, 이를 노조 혹은 근로자 대표의 사전 서면 동의를 받도록 한다면 노동시간 단축 취지도 크게 어기지 않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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