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미는 14일 서울 자양동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점에서 열린 이 영화 언론시사회 뒤 이어진 기자간담회에서 "진짜 용기를 내야 하는 일은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며 "시나리오를 읽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만드는 것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전했다.
극중 김지영 남편 정대현 역의 배우 공유 역시 "시나리오를 읽고 나 자신이 위로를 받았다. 그래서 이 영화를 했다"고 말했다.
'김지영 씨는 우리 나이로 서른네 살이다. 3년 전 결혼해 지난해에 딸을 낳았다. 세 살 많은 남편 정대현 씨, 딸 정지원 양과 서울 변두리의 한 대단지 아파트 24평형에 전세로 거주한다. 정대현 씨는 IT 계열의 중견 기업에 다니고, 김지영 씨는 작은 홍보대행사에 다니다 출산과 동시에 퇴사했다. 정대현 씨는 밤 12시가 다 되어 퇴근하고, 주말에도 하루 정도는 출근한다. 시댁은 부산이고, 친정 부모님은 식당을 운영하시기 때문에 김지영 씨가 딸의 육아를 전담한다.'
소설 '82년생 김지영'(민음사)은 이렇게 시작한다. 현실의 '나' 혹은 언니, 누나, 오빠, 형, 동생이 당면해 있는 삶과 결코 다르지 않다. 실제로 1982년에 태어난 여성 이름 가운데 김지영이 가장 많다니 '82년생 김지영'은 결국 우리네 이야기인 셈이다.
이는 소설을 쓴 작가 조남주가 책 속 '작가의 말'에 남긴 메시지에서도 어렵지 않게 엿볼 수 있다. 그는 "딸이 살아갈 세상은 제가 살아온 세상보다 더 나은 곳이 되어야 하고 될 거라 믿고, 그렇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세상 모든 딸들이 더 크고, 높고, 많은 꿈을 꿀 수 있기를 바랍니다"라는 당위를 전한다.
◇ 성차별 시대 대물림에 방점…"개인 아닌 사회적 풍경을"
영화를 연출한 감독 김도영은 "원작 소설 결말에서는 씁쓸한 현실을 보게 되는데, 영화 시나리오를 통해 2019년을 살아가는 김지영들에게 '괜찮다' '더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주고 싶었다"며 말을 이었다.
"지영이 어머니보다는 지영이가, 지영이보다는 그 딸이 더 나은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조남주 작가가 첫 관객으로서 '소설보다 한 발 더 나아간 이야기다' '선물을 받은 것 같다'고 문자를 보내줘서 고마웠다. 관객들에게도 가닿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다."
배우 정유미와 공유도 원작 소설을 읽었다고 했다. 둘 다 시나리오를 접한 뒤였다. 정유미는 "소설에서 더 구체적으로 묘사된 부분을 통해 (연기) 감정을 기댈 때도 있었다"고, 공유는 "영화를 통해 보다 섬세한 감정의 결,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전했다.
정유미는 "저는 (극중 김지영과 같은) 30대 여자이기는 하지만, 지영이 같은 삶을 살아보지는 않았다"며 "개인적인 공감보다는 이 캐릭터를 잘 표현해냄으로써 (관객들과) 이야기를 같이 나누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도 많이 물었는데, 제 주변에도 (극중 김지영의 삶과) 비슷한 사람들이 많더라"며 "어렵거나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부분에서는 소설의 구체적인 단락들을 읽고 감독에게도 물으면서 진행했다"고 부연했다.
이 영화는 김지영을 둘러싼 가족과 같은 인물들을 통해 우리 시대에 대물림돼 온 성차별적 모순을 드러내는 데 방점을 찍는다.
감독 김도영은 "이 작품은 자신의 말을 잊어버린 여자가 그것을 찾아가는 성장 이야기로 생각해 풀어갔다"며 "어떤 인물도 특별히 좋거나 나쁘게 그려질 필요는 없다고 봤다. 개인이 아닌 사회적 풍경들에서 그런 (모순적인) 부분들을 짚어내는 것이 원작이 말하려는 의도와 가깝게 봤다"고 했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나의 엄마, 누이, 여동생, 딸, 후배, 동료, 친구들이 어떤 풍경 속에 있는지를 한 번쯤은 둘려봤으면 한다"며 "'이 땅의 많은 지영이들이 이같은 길을 걷는구나' '우리 엄마는 이런 강을 건넜구나'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앞으로 더 많은 지영이들이 나왔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