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분양가 상한제 시행 예고에 착공을 앞두고도 구체적인 분양 계획을 잡지 못했던 단지들은 유예 '호재'에 속속 사업을 진행하며 분양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3일 건설업계와 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 기준 아직 분양 공고를 내지 않은 61개 재건축 단지 6만 800가구가 이번 분양가 상한제 유예 조건에 포함될 전망이다.
분양가 상한제 유예 수혜 지역 중 한 곳은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사업장인 서울 둔촌주공단지다.
그동안 분양가 상한제 시행 우려로 착공을 앞두고도 구체적인 분양 계획을 잡지 못했지만 유예 조건이 내걸리면서 가까스로 법 적용을 피해가자 조합원들은 안도감을 나타냈다.
조합측은 현재 철거가 80% 완료된 만큼 내년 4월 이내 분양을 목표로 사업을 진행하겠다는 계획이다.
둔촌주공 조합 관계자는 "아무래도 적용 대상에서 비켜갔으니 조합원들은 좋아하고 있다"며 "시간이 정해진 만큼 일정에 따라서 분양 계획을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60개 단지 모두가 정부의 유예 '혜택'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관리처분계획인가를 받은 단지들이 상한제 시행령 개정 이후 6개월 안인 내년 4월까지 모집공고를 내려면 이달 안에 철거와 이주를 마무리해야 한다.
이 기준대로라면 서울의 경우개포 주공1,4단지와 둔촌주공 등 일부만이 분양가 상한제를 피해갈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 114의 투기과열지구 내 사업시행인가 이후 재건축아파트를 살펴보면 반포주공 1단지의 경우 지난 2017년 12월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신청했지만 조합원들간의 소송이 진행되면서 이주를 시작하지 못했다.
신반포 18차와 서초동 신동아 1·2차, 철산동 주공 10·11단 지 등도 아직 철거와 이주가 이뤄지지 않아내년 4월까지 분양을 진행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 114 관계자는 "조합 내외부 변수들이 있어서 입주자 모집공고를 내는 시기를 단정할 수는 없다"며 "다만 유예기간 내 관리처분인가 이후 사업지들이 공급을 서두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6개월이라는 유예 기간에 일부 조합에서는 불만의 목소리도 높다.
분상제 반대 집회를 이끈 김구철 미래도시시민연대 대회준비위원장은 "유예기간이 2년은 돼야 하는데 6개월이면 철거가 8,90% 완료된 둔촌 주공이나 개포 4지역 등 일부만 수혜를 입고 나머지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의 이번 유예기간 방침은 시장에 공급이 늘어난다는 시그널을 보내는 임시방편일 뿐"이라며 "여당의 선거용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상한제 시행 유예로 국토부가 한 발 물러서기는 했지만 집값을 잡겠다는 의지는 확고하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2일 국토부 국정감사에서 "이달 말 시행령을 개정하면 숫자와 관계 없이 상한제 적용 지역을 지정하겠다"며 "시장이 과열될 경우 더 강한 대책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주택가격 정상화를 위한 정부의 강공 드라이브가 속도를 내고 있는 상황에서 분양가 상한제가 시행될 경우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에 제동이 걸릴 거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국토연구원과 국토교통부가 자유한국당 김상훈 의원에게 제출한 '분양가 상한제 도입 전망 자료'에 따르면 민간택지에 분양가 상한제를 확대 적용할 경우 향후 4년 동안 서울 주택 매매가격이 11.0%포인트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간으로 환산할 경우 하락률은 2.7%포인트에 달한다.
이는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가 시행되면 주택 매매가격이 1.1% 포인트 하락한다는 국토연구원의 전망치보다 두 배 넘는 수치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도 "분양가 상한제 규제가 폐지된 2014년 이후 99㎡ 기준 서울은 1억 9000만 원, 대구는 1억 8000만 원이 올랐다"며 전면적인 분양가 상한제 시행을 요구했다.
분양가 상한제가 강남 재건축 시장을 겨냥한 정책인 만큼 재건축 가격 상승에 영향을 받던 신축들도 당분간 숨고르기에 들어갈 전망이다.
한국감정원 관계자는 "신축과 재건축은 서로 가격을 끌어올려주는 매커니즘이 있는데 분양가 상한제가 시행되면 이 연결고리가 끊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당분간 집값이 안정기에 접어들 것"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분양가 상한제가 시행이 된다고 해도 똘똘한 한채와 강남 재건축 선호가 꺾이지는 않을 거라는 지적도 나온다.
부동산114 관계자는 "정부의 속도 조절론과 정밀 타깃을 통한 선별 규제가 당장 집값을 끌어낼 정도의 파괴력을 가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라며 "서울 집값은 강보합을 나타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도 "분양가 상한제 유예 단지 시공사들에게는 호재일 수 있지만 업계에서는 미지근한 반응"이라며 "집값에 영향을 주려면 강력한 한방이 있어야 하는데 이미 공개된 정책이다보니 파급력은 제한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