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이라는 연인(아마도 구여친)을 그리워하며 술김에 보낸 것들이다. 오타가 나서 다시 한 번 고치기도 한다. 옛 연인 사이에 보내는 카톡은 꼭 새벽 2시쯤 와서 '자니?'로 시작한다는 건 이미 하나의 공식처럼 자리 잡았을 만큼 익숙하지만, 영화 속 인물이 진짜로 그러고 있는 모습을 보는 건 생각보다 신선하다. 연애담을 표방한 영화에서 이토록 지질한 행동이 연타로 나오는 건 흔치 않으니.
20대의 전부였던 전 연인과 결혼까지 갔으나 파혼의 상처를 입은 재훈(김래원 분)은 매일 술만 마신다. 낮이든 밤이든 가리지 않고 술을 마시고, 정신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채로 귀가하기 일쑤다. 화분은 담배꽁초의 무덤이 된 지 오래고,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주차금지 표지판이 나뒹굴며, 귀갓길에 사 온 옥수수가 냉동실을 가득 메운다.
재훈의 회사 기획팀에 새로 들어온 선영(공효진 분)은 그런 재훈이 이해되지 않는다. 꼭 사랑을 처음 해 본 사람처럼, 한 번의 이별에 삶을 송두리째 내던진 모습을 보고 의아해한다. 깊은 새벽 걸려온 재훈의 전화를 2시간 가까이 받아줄 수 있었던 것도 '불쌍해서'다. 재훈이 아무도 자기 얘기를 들어주지 않는다며 울먹인 덕이다.
만나봐야 그놈이 그놈이라고 생각하고, 사랑에 환상 같은 것도 없고, 누군가에 대해 점점 더 모르겠다는 선영. 평생 서로 바라보면서 늙어가는 것을 행복이라고 말하는 재훈. 더 이상 사랑에 무언가를 기대하지 않는 사람과, 여전히 사랑을 믿는 재훈은 첫 만남부터 삐걱대지만, 체면 차리느라 혹은 굳이 신경 쓰고 싶지 않아서 하지 않았던 속얘기를 조금씩 꺼내며 가까워진다.
반면 선영은 사랑의 우여곡절과 희로애락을 이미 경험한 사람으로서, 조금은 건조하고 조금은 냉철한 자세를 보인다. 사랑할 때 무언가를 기대하지 않는 초연한 태도도 인상적이지만, 속을 후련하게 해 주는 한 방이 있다.
바람피웠다가 들킨 주제에 그만 찾아오라는 말에 노처녀 히스테리 운운하는 구남친에게 생식기가 엄지발가락만 하다고 일갈하는가 하면, "남자가 여자랑 같아?"라는 지긋지긋한 말에 뭐가 다르냐고 반문하고, 정확한 사정은 알지 못하면서 그저 재미로 남 뒷말을 하는 회사 사람들에게 "진짜 그게 재밌느냐?"고 직격탄을 날린다.
연인이 되거나 될 것 같은 영화 속 주인공 두 사람의 아름답고 낭만적인 순간보다는, 괜히 얼굴이 화끈거리는 민망하고 난처한 상황이 계속되는 것도 '가장 보통의 연애'의 특징이다. 호감 있는 상대 앞에서는 조금은 숨기고 아닌 척하고 싶은 속내를 밑바닥부터 끄집어내 까발린달까. 그래서인지 언론 시사회가 진행된 극장 안에선 꽤 자주 웃음이 터졌고 한편으로 탄식이 나왔다.
웃기지만 그저 웃기지만은 않은, 판타지를 빼서 더 또렷하게 다가오는 '술 먹고 연애하는 얘기'. 회사 사람들은 또 얼마나 하이퍼 리얼리즘인지. 극중 재훈의 절친으로 나오는 병철 역의 강기영, 눈치 없는 대표 역의 정웅인이 보여주는 코믹한 리듬도 놓치지 않길. 지루할 새 없이 109분이 흘러가 있다.
2일 개봉, 상영시간 109분 36초, 15세 이상 관람가, 한국, 멜로/로맨스·코미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