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인권유린의 최후…병마와 싸우다 죽어간 삶

피해 장애인 새 보금자리에서 또 박해
세번째 옮긴 시설에서 암투병 끝 숨져
시설 폐쇄하고 강제 전원하면 이후 끝
전문가 "사후 관리와 탈 시설화 필요"

장애인 시설에서 벌어진 인권 유린 사태의 관심은 주로 가해자, 그리고 어떤 처벌을 받을지에 쏠린다. 그사이 피해자는 보금자리를 옮긴다. 피해자의 삶은 더는 관심이 아니었다. 구출됐다는 안도감에 다시 살아가야 하는 막연함은 어쩔 수 없는 일로 치부된다.

17일 오전 장애인 인권유린의 피해자인 고(故)전종환(65·정신지체 2급)씨의 발인을 기다리는 아내. (사진=남승현 기자)
◇ 탈출에도 스러진 인생

지난 13일 숨을 거둔 정신지체 2급 전종환(65·정신지체 2급)씨는 장애인 시설에서 인권 침해를 당한 피해자다.

노동 착취와 보조금 갈취의 굴레에서 벗어난 그는 병원에서 신장 투석과 방광암 투병 끝에 숨을 거뒀다.

전주의 한 장애인 거주시설로 전원되기 전 지난 2013년 전씨가 머문 전북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서는 각종 인권 침해가 발생했다.

당시 이사장과 소장, 부소장 등 9명은 9년간 장애인 30여 명의 기초생활수급비 등 17억여 원을 가로채고 노동력을 착취한 혐의를 받았다.

이들을 지켜본 김병용 전주시 인권옹호팀장(당시 장애인차별철폐연대 사무국장)은 "전씨를 비롯해 대부분의 장애인은 두 번의 깊은 상처를 받은 것"이라고 했다.

당시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지상파 TV와 함께 전국의 학대받는 장애인을 구출했는데 문제는 이들을 수용할 공간과 관리 능력이 부족했다.

충남 공주에서 살던 전씨처럼 여러 장애인은 쉼터가 있던 전북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로 모였다.


(자료사진)
◇ 죽음의 보상

아픔을 품고 온 장애인들을 이용해 갈취한 돈으로 호화 생활을 즐긴 이들에게 내려진 형량은 가벼웠다.

구속기소 된 전북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이사장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소장에게 징역 1년 2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당시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고 본 재판부는 "다만 피고인들이 범행을 자백하고 잘못을 반성하는 점과 장애인을 위해 헌신한 점 등을 참작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그사이 전북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폐쇄됐고 피해 장애인들은 새로운 시설과 자립의 길로 흩어졌다. 전씨처럼 전주의 한 장애인 거주시설로 떠난 장애인이 있는가 하면, 누군가는 자립 생활을 시작했다.

5월 전북도청 브리핑룸에서 전북지역 시민단체가 기자회견을 열고 장수 장애인시설·인권침해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자료사진)
◇ 피해 반복, 사후 관리無

장애인 인권 침해는 반복되고 있다. 전북 장수군의 한 장애인 시설인 벧엘장애인의집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지난 5월 장애인들에게 노동을 강요하고 이들에게 지원된 보조금까지 가로챈 혐의로 시설 이사장과 원장이 재판에 넘겨졌다. 장수군은 시설 폐쇄와 강제 전원 조치 명령을 내렸다.

앞서 4월 대구 북구의 한 장애인 보호시설에서도 사회복지사의 지적장애인 상습 폭행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2월 경기도 오산시의 한 재활원에서는 재활 교사들이 장애인을 때려 논란이 됐다.

전문가들은 장애인 인권 침해의 사슬을 끊기 위해 탈 시설화와 꾸준한 사후 관리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김병용 전주시 인권옹호팀장은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피해를 입고 옮긴 장애인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은 없다"며 "정부와 지자체 차원에서 지원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석대 김윤태(유아특수교육과·심리운동학과) 교수는 "장애인 탈 시설화와 정신적 독립을 위해 서로의 부족함을 채울 수 있는 2~3명의 단체 생활이 필요하다"며 "장애인 자립 비율은 독일이 90%, 미국과 프랑스가 70%이며 한국은 고작 5%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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