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요금수납원 노동자 250여명은 닷새째 경북 김천 도로공사 본사에서 점거 농성 중이다. 이들은 추석 당일 아침 직접 고용을 기원하는 합동 차례도 농성 중인 본관 로비에서 지낼 계획이다.
대법원 판결이 내려지기 전부터 시작했던 10m 높이의 서울톨게이트 고공 농성장에도 15명의 요금수납원 노동자들이 76일째 남아있다.
앞서 대법원은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들이 도로공사를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 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 원심을 지난달 29일 확정했다.
한마디로 '도로공사가 요금수납원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라'고 판결을 내린 셈인데, 그럼에도 요금수납원들이 여전히 '직접 고용'을 요구하며 농성까지 벌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직접 고용 대상 인원부터 노사 입장이 엇갈린다. 도로공사가 직접 고용하겠다고 밝힌 인원은 최대 499명이다.
대법원 판결로 공사 직원 지위가 회복된 수납원은 745명인데, 도로공사는 이 가운데 자회사 전환 동의자 등을 제외한 인원을 상대로만 고용의무가 발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문제는 나머지 요금수납원 노동자다. 전체 6500여명의 요금수납원 가운데 5천여명은 자회사로 옮겨졌고, 자회사 전환을 거부한 인원은 약 1500명에 달한다.
도로공사는 현재 1·2심 재판이 진행 중인 요금수납원 1116명에 대해서는 재판을 끝까지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노조는 이러한 도로공사의 주장이야말로 오히려 '해사 행위'에 가깝다고 반발하고 있다.
소송을 제기한 시점만 다를 뿐 같은 내용을 다루는 재판인데다, 이미 대법원 판례가 발생했기 때문에 하급심 역시 도로공사가 패소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굳이 법정비용과 시간을 소모하기보다는 하급심 대상자들도 직접 고용하는 편이 합리적인데도, 노동자들이 지치기를 기다리며 사측이 시간을 끌고 있다는 지적이다.
도로공사 이강래 사장은 지난 9일 고용 방안을 발표하면서 "판결은 그 문제(업무)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 업무 부여는 공사의 재량 사항"이라며 "대법원 확정 판결에 따라 직원으로서의 법적 지위는 인정하지만 수납업무는 자회사가 전담하게 한 방침은 그대로 확고부동하게 유지하겠다"고 강조했다.
도로공사는 자회사에 기존 요금 수납업무를 모두 옮겼기 때문에 복귀자에게는 버스정류장과 졸음쉼터, 고속도로 법면 등의 환경정비와 같은 '현장 조무직무'를 맡기겠다는 계획이다.
즉 요금 수납 업무를 포기한 채 도로공사 직원이 되거나, 도로공사 고용을 포기하고 자회사로 옮겨 기존 업무를 계속하는 '이지선다'를 강요하는 셈이다.
여기에 더해 도로공사는 복귀자의 근무지도 '재량'으로 부여하겠다는 입장이다. 일단 개인별 근무희망지를 고려하겠다지만, 이 사장은 "회사 사정에 따라 본인이 원치 않는 곳으로 배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노조는 이러한 복귀 방식이 모두 전형적인 '노조 파괴 수법'을 따르고 있다고 우려한다.
자회사와 본사를 택일하게 강요하는 '갈라치기'식 인력 배치는 그 자체로 조합원들의 결속력을 약화시키는데다, 노동자에게 익숙하지 않은 일을 맡긴 뒤 저성과자로 분류하거나 거주지에서 먼 곳으로 발령을 내는 것도 모두 흔히 일어났던 노조 탄압 사례다.
특히 요금수납 업무 특성상 여성이나 고령자가 많고, 장애인 비중도 높은 편이어서 사측이 얘기하는 환경정비 등을 맡기 어려운 현실을 감안하면 사실상 자회사행을 강요한다는 지적이다.
도로공사는 복귀 대상자에게 자회사 수납업무와 도로공사 조무직무 중 어느 쪽을 택할지 오는 18일까지 확정하도록 해 해고자의 고용형태를 결정하고, 만약 이에 응하지 않으면 징계 절차를 밟거나 고용 의사가 없는 것으로 판단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요금수납원 노동자들이 속한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은 "직접 고용하라는 대법원 판결문을 1500명을 갈라치기 위한 무기로 활용하기 위한 꼼수만 찾고 있다"며 "1500명 직접 고용 외에 다른 길은 없다. 꼼수 없는 직접 고용으로 대법원 판결을 이행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