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혁신적인 유니콘 기업 못 나오는 이유는…

이동걸 산은 회장 "혁신기업에 대한 투자 구조, 시장 마련되지 않아"
"혁신기업에 대한 소액 투자는 활발하나 거액 투자는 대개 해외에서 유입"
"유니콘 기업 육성 위한 벤처 투자가 취약"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사진=산업은행 제공)
"할 일은 많은데 돈은 없고, 여론의 관심도 없다."

혁신기업을 찾아 지원하는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의 이동걸 회장은 10일 기자 간담회에서 '혁신 성장 지원'의 어려움에 대해 설명하던 중 이런 푸념을 했다.

혁신성장은 소득주도성장, 공정경제와 함께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뼈대를 이루는 개념이다.

한국은행이 지난 9일 생산성 둔화와 인구 감소 등으로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 하락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는 진단을 내놓기도 했지만 한국경제의 성장은 새로운 계기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갈수록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전통산업이 침체되고 있는데 따라 새로운 분야에서 유니콘과 같은 기업들이 나타나야 전체 경제의 성장이 이뤄질 수 있다.

80년대 명맥을 다할 것처럼 보였던 미국 경제가 다시 살아나면서 세계 경제를 여전히 주도하게 된 배경에는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구글 그리고 페이스북과 같은 새로운 글로벌 기업들이 나타나 활력을 불어넣었기 때문이다.

한국경제도 제조업 중심의 성장이 한계에 도달하면서 이런 혁신적 기업의 출현에 목마른 상황이 됐다.

이에 따라 정부가 혁신적인 기업들이 나타나고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하겠다면서 데이터산업 육성이나 규제완화, 사회안전망 강화 및 복지 확대 등의 혁신성장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를 중심으로 산업통상자원부, 중소기업벤처부, 금융위원회 등 각 부처별로 혁신성장을 위한 수많은 세부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또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신용보증기금 등 금융공기업들도 혁신적인 창업 기업(스타트업)을 발굴해 지원하는 활동을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정책들은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어렵고 특히 혁신생태계 조성은 여전히 갈길이 멀다는 진단이 나온다.

이동걸 산은 회장은 혁신 성장 지원과 관련해 "(혁신을 위해 필요한) 생태계가 분리돼 있고, 투자 구조나 투자 시장이 성숙되지 않은 것이 결정적으로 부족한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벤처 투자가 소액은 많이 되고 있지만 거액은 해외에서 다 들어오는 실정"이라며 창업 초기를 지나 성장(스케일업)을 해야 하는 혁신 기업에는 "수백억, 수천억 심지어 수조원이 필요한데 우리나라에선 100억원 이상의 투자가 잘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산은은 과거엔 산업화 지원을 목표로 거대 기업에 정책자금을 공급해 위기를 넘기게 하거나 회생 가능성이 없는 기업은 퇴출시키는 대기업 지원과 구조조정의 역할을 주로 했으나 최근엔 혁신 기업 발굴과 지원 역할로 중심을 옮기고 있다.

산은은 2016년 8월 '벤처투자플랫폼'을 표방하는 '케이디비 넥스트라운드(KDB NextRound)'를 출범시킨 뒤로 지금까지 3년간 규모를 점차 늘리며 운영하고 있다.

케이디비 넥스트라운드는 벤처・혁신 기업들이 투자자들이 모인 가운데 사업설명을 하고 실제 투자를 받을 수 있도록 주선하는 행사다.

출범이후 지난달말까지 모두 283라운드를 개최해 1,027개 벤처기업이 IR을 실시했고 이 가운데 180개 기업이 약 1조원 이상의 투자유치에 성공했다.

하지만 투자 규모를 보면 이들 180개 기업 중 68개사(38%)는 50억원, 왓챠, 마이리얼트립, 데일리호텔, 레이니스트, 백패커 등 32개사(18%)는 100억원 수준이었다.

마켓컬리, 패스트파이브, 밸런스히어로, 티움바이오 등 9개사는 200억원 이상의 투자를 유치했으나 180개 기업중 5%에 불과했다.

이와 관련해 정부가 혁신기업의 성장(스케일업)을 지원하기 위해 2022년까지 12조원 규모의 전용펀드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은 민간 자본 시장에서 혁신적인 창업기업에 대한 초기 투자나 스케일업 지원 투자가 활성화돼야 하고 이를 자연스럽게 유도할 정책적 해법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이동걸 회장은 10일 간담회에서 뛰어난 혁신 기업을 발굴하고 키워내기 위해선 "천억원 정도를 투자했다가 실패해도 견뎌낼 수 있는 정도의 투자자가 필요하다"면서 정책금융기관의 합병을 통해 덩치를 키우는 방안을 고려할 만하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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