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의 먹거리 구조 단체 '오즈 하베스트'의 로니 칸(67) 대표가 지난 6일 개막한 제5회 서울 국제 음식영화제 참석차 한국을 찾았다.
그가 출연한 다큐멘터리 '푸드 파이터: 먹거리를 구하라'(댄 골드버그 감독)가 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다. 음식물 쓰레기 문제에 맞서는 로니 칸의 싸움을 2년여에 걸쳐 4대륙을 돌며 담은 작품이다.
주한 호주대사관 초청으로 한국에 처음 온 그를 개막식 직전 서울남산국악당에서 만났다. 그는 "이전까지는 한국에 대해 잘 알지 못했지만, 막상 와보니 역동적이고 생생한 에너지가 넘치는 나라"라며 "제가 출연한 영화가 개막작으로 선정돼 영광"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가 2004년 세운 오즈 하베스트는 '남는 음식'을 소외계층에 나눠주는 사회적 기업이다. 대형 슈퍼마켓이나 호텔, 레스토랑 등에서 유통기한이 임박했거나 조금 지났지만, 먹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는 음식을 수거해 1300여곳의 자선단체에 나눠준다. 지금까지 1억2천500만 끼니를 제공했다.
칸 대표는 "매일 만들어지는 음식의 3분의 1은 버려지고, 음식물 쓰레기의 50%는 가정에서 나온다"면서 "세상 모두가 먹고 살 만큼 먹거리가 생산되는데, 전 세계적으로 7억9천500만명가량이 굶주림에 시달린다"며 모순을 지적했다.
아울러 "음식물 쓰레기는 메탄가스를 배출해 기후변화와 같은 환경 문제를 일으키는 주요 요인 중 하나"라며 "다 같이 해결을 위해 동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어쩌다 음식물 쓰레기와 싸우는 '여전사'가 됐을까.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인 그는 1998년 호주에 이민을 왔다. 처음에는 이벤트 회사를 차려 기업 행사를 대행했다. 그러다 행사가 끝난 뒤 값비싼 저녁 음식들이 무더기로 버려지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너무 많은 음식이 버려지는 것을 보고 그 음식을 자선단체에 가져다주기 시작했어요. 이 음식들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으니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아예 창업했어요. 그때는 음식물 쓰레기 문제가 전 지구적인 문제라는 생각보다 눈앞에 버려진 음식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해결책을 찾다 보니 여기까지 왔죠."
그가 사는 호주 역시 200만명이 식량 불안에 시달리지만, 매년 400만t의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버려진다. 식료품 장바구니 다섯개 중 하나를 버리는 셈이다. 농장에서 생산된 신선한 과일도 납품 크기 규격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혹은 약간의 흠집이 났다는 이유로 3분의 1가량이 버려진다.
다행히 호주 정부는 2030년까지 음식물 쓰레기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그런 정책이 발표되기까지 칸 대표와 오즈 하베스트의 역할이 컸다.
칸 대표는 2017년에는 기증받은 음식을 소외계층이 필요한 만큼 무료로 가져갈 수 있는 구제 식품 마켓도 열었다.
그는 "기부받은 음식이 상하지 않게 제시간에 전달하기까지 어려움이 많다"면서 "200명의 직원과 2천명의 자원봉사자, 트럭 55대 등을 운영하려면 연간 1500만달러(한화 179억원)가 든다"고 말했다. 이 비용은 100% 기부로 충당된다. 그는 "여러 어려움을 딛고 이 일을 지속하려면 불굴의 의지와 열정이 필요하다"며 웃었다.
칸 대표는 한국의 음식물 쓰레기 분리배출 제도에 대해 "좋은 정책"이라면서도 조언을 보탰다.
"한국 식문화는 밑반찬이 많기 때문에 음식물 쓰레기가 많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한국은 가구당 연간 137㎏의 음식물 쓰레기를 배출하죠. 물론 가구당 250㎏을 배출하는 호주보다는 적지만, 더 줄여야 합니다."
그는 가정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묻자 네단계를 꼽았다.
"먼저 살펴보기에요. 냉장고나 부엌에 어떤 음식이 있는지 살펴본 뒤 필요한 목록을 작성해서 장을 보는 것이죠. 두 번째는 목록에 있는 것만 사기, 셋째는 식자재를 적절하게 보관하는 것이죠. 예를 들어 허브는 약간 젖은 타올로 말아서 보관하면 오래갑니다. 넷째는 산 식자재를 모두 요리해서 먹는 것이죠."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그의 냉장고 안을 보면 오래된 피망 한 개만 눈에 띌 뿐 거의 텅 비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매일 출장을 다니다 보니 요리를 할 시간이 없어서다. 그는 냉장고 이야기를 꺼내자 쑥스러운 듯 웃더니 "주말에는 손자들을 위해 요리한다"며 "평소에는 냉장고가 슬퍼하고 있다"고 농담했다.
칸 대표의 최종 목표는 오즈 하베스트라는 회사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 멀쩡한 음식물이 버려지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처음 시작했을 때는 몰랐어요. 이 여정이 나를 어디로 이끌지, 하지만 중독성이 있어요.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니까 그것이 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