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오동 전투', 일본군 역할에 日 배우 고집한 까닭

[노컷 인터뷰] 영화 '봉오동 전투' 원신연 감독 ②

지난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봉오동 전투'를 연출한 원신연 감독을 만났다. (사진=이한형 기자)
※ 영화 '봉오동 전투'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봉오동 전투'(감독 원신연)에 나오는 일본군 역할 중 3명은 일본인이다.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유명 배우 키타무라 카즈키를 비롯해 이케우치 히로유키, 다이고 코타로가 열연을 펼쳤다.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 일본인 역할, 그것도 만행을 자행했던 '일본군' 역할을 맡는다는 것이 매우 어려운 선택이라는 걸 원신연 감독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일본군 역할은 꼭 일본인 배우가 해야 한다는 원칙을 포기하지 않았다.

에이전시에 시나리오를 보내고 무작정 기다리는 동안에도 걱정이 가시지 않았다. 그런데 기대보다 더 많은 이들이 답을 보내왔다. 특히 한국인 배우 박지환이 맡은 아라요시 시게루 역을 하고 싶다는 반응이 꽤 많았다.

'봉오동 전투' 개봉을 하루 앞둔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원신연 감독을 만났다. 유해진, 류준열, 조우진 등 독립군들과 일본 배우들의 캐스팅 과정, 개봉 전부터 제기된 '국뽕 논란'에 관한 솔직한 생각과 개봉을 앞둔 마음 등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 국사책을 찢고 나온 배우들

'봉오동 전투'는 스틸과 포스터가 공개됐을 때부터 역사책에서 튀어나온 것 같다는 평을 들은 바 있다. 극중 독립군 역할을 맡은 유해진, 류준열, 조우진에게 '국찢남'(국사책을 찢고 나온 남자)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원 감독도 그 별명을 안다며 '재미있다'고 답했다.

"정말 정말 그때 당시의 일본 무적의 추격대, 정규군과 상대했던 노고와 열망이 느껴지는 얼굴들이었으면 했어요. (…) 그들(국사책 속 독립군)과 닮았다 정도가 아니라, 어떤 미사여구를 붙이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도 진정성이 묻어나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유해진, 류준열, 조우진 배우는 그런 면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하죠. 연기도 그렇고 걸어온 길이 그렇기도 하고 진중하기도 하고요."

'봉오동 전투'의 독립군 3인방. 유해진은 칼을 잘 쓰는 황해철, 류준열은 명사수 독립군 분대장 이장하, 조우진은 외국어와 각종 잡기에 능하며 총을 잘 쏘는 마병구 역을 맡았다. (사진=㈜빅스톤픽쳐스, ㈜더블유픽처스 제공)
"영화를 위해서 만들어진 캐릭터, 다듬어진 캐릭터가 아니라 현실에서도 친근함을 가져서 (관객들이)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캐릭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면에서는 두 배우(유해진-류준열)가 잘 맞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마병구 역의 조우진 씨는 시나리오 쓰면서 '이건 그냥 조우진이다!' 하고 생각했어요. 제가 예상했던 것처럼 진중하고 깊이 있게 세상을 바라보는 배우들이었어요. 체력적으로도 부담될 수 있고, 대의를 향해서 나가는 캐릭터라서 트라우마가 생길 수도 있고 감정적 부담을 안고 4개월을 보내야 했죠. 그 감정을 갖고 있어야 인물이 표현되니까요. 오랫동안 감정 품고 있는 캐릭터는 쉽지 않아요. 그런데 흔쾌히 함께하겠다고 해서 너무 고마웠어요."

성유빈, 최유화, 이재인 등 다른 배우들은 다 오디션을 봤다. 원 감독은 "오디션 과정에서 체력, 진정성, 친근함 등 지금 말씀드린 요소 3가지를 다 결부해서 진행했다. 너무들 잘해줬다"라고 치켜세웠다.


◇ 일본군 역할 캐스팅 뒷이야기

'봉오동 전투'는 키타무라 카즈키, 이케우치 히로유키, 다이고 코타로 등 일본 배우들이 직접 일본군 역할을 맡은 점으로도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지금처럼 한일관계가 매우 나쁜 상황에서, 일본에서 활동 중인 배우들이 불이익을 받을까 봐 걱정하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원 감독도 당연히 조심스러워했다. 하지만 일본군 역할은 일본 배우들이 해야 한다는 생각만큼은 끝내 변하지 않았다. 그는 "야스카와, 쿠사나기, 유키오는 반드시 일본 배우가 해야 한다는 제 고집이 있었다. 끝까지 부린 고집이다. 그 배우들이 해 줘야 살이 붙고 리얼리티와 생동감이 살아난다. 그리고 거짓이 없어진다. 그래야 참 캐릭터로 완성된다는 생각으로, 꼭 일본 배우들을 캐스팅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어, "에이전시 통해서 시나리오 보내주고 그들이 선택하는 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의외로 너무 많은 분들이 답을 주셨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다룬 영화에서 일본군 역할을 한다는 것 자체가 자기 의사의 표현이다.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의미가 커서, 그런 부분에서 많이 놀랐다"라고 전했다. 배우들이 너무나 열정적으로 임해줘서 고맙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초반에는 잔인한 모습으로 나왔다가 중후반부까지 얄미움과 바보스러움을 담당하며 활약한 아라요시 시게루 역은 한국인 배우 박지환이 맡았다. 원 감독은 "시나리오 쓰면서 이미 정해졌다. 제가 '이건 그냥 지환이 거다' 했다. 시나리오 줬을 때 바로 찾아와서 감사하다고 해서 같이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왼쪽부터 각각 야스카와 지로, 쿠사나기, 유키오 역을 맡은 배우 키타무라 카즈키, 이케우치 히로유키, 다이고 코타로 (사진=쇼박스 제공)
"박지환 배우는 그, 보통 사람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약간 야생성 같은 게 있어요. 예측할 수 없는 감성들이 상당히 많아요. 그게 약간, 악해 보이는데 측은하기도 하고… 완전히 입체적인 야생성이 있다. 처음 영화 시작할 때 독립영화 주인공으로 상당히 많이 출연했는데 저는 그것도 너무너무 존경스럽기도 해요. 일본군 셋 캐스팅하고 나서 에이전시에 보냈을 때 박지환 배우 역할 하고 싶다는 사람이 상당히 많았어요."

아라요시는 원래 코믹한 요소를 전반에 드러내는 캐릭터로 만들어진 건 아니었다. 원 감독은 "국적이 다른 사람의 특징을 관찰해 온 게 있었고, 말하는 투나 표정이나 그들이 가진 약간의 과함을 캐치하고 있다가 그 캐릭터에 녹여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정통적인 군인이라기보다는 3·1 운동을 핏빛으로 제압한 나쁜 사람이었는데, 그 공을 인정받아서 뭘 하고 싶냐고 했을 때 자기가 선택해서 이리로 온 인물이었다. 박지환 배우는 시나리오 읽고 와서 자기(아라요시 역)는 병균 같은 존재라고 하더라. 작품에 완전히 빠져들었고 오랜 시간 준비를 참 잘해줬다"라고 전했다.

◇ '국뽕'과 '신파'를 우려하는 반응에 관해

'봉오동 전투'에는 민간인들이 사는 농촌을 습격해 사람들을 죽이고 부녀자를 희롱하는 일본군의 모습도 나온다. 목이 잘려 나가고, 총을 정면으로 맞고, 걷어차이기도 한다. 이후, 독립군이 지략을 펴 일본군들을 해치울 때도 마찬가지다. 셀 수 없이 많이 쏘고, 벤다. 전쟁 영화인 만큼 어느 정도의 잔인함을 피할 수는 없었다.

원 감독은 "인터넷에 '일본군 만행'을 치면 그들의 만행 사진이 쫙 나온다. 아마 대부분의 분들이 그걸 찾아보지 않았을 텐데, 저는 그 자료들에 구하기 힘든 학살 자료들도 찾아봤다. 얼마나 끔찍했겠나. 충격적이었다. (영화는) 정말 지극히 일부를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 감독은 "(잔인함을) 강조하려고 한 장면은 단 한 부분도 없다. 사진에 나오는 일본군의 위치, 자세, 웃는 표정 등을 참조했다. 대부분 사진에서 웃고 있더라. 기록의 재현, 기록의 영화라고 말한 것처럼, 그대로 각도 맞춰서 찍은 거다. 물론 그런 걸 장시간 보는 건 폭력으로 느껴질 수 있기에 작은 부분만 하려고 했다"면서도 "전쟁 영화는 메시지가 확실하다. 반전의 메시지가 있는 거고, 그래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위쪽부터 개똥이 역 성유빈, 춘희 역 이재인, 임자현 역 최유화 (사진=㈜빅스톤픽쳐스, ㈜더블유픽처스 제공)
개봉 전부터 제기된 '국뽕'(애국심을 지나치게 고취시키는 것)이나 '신파' 의혹은 어떻게 생각할까. 원 감독은 "제가 '봉오동 전투'에서 표현해 놓은 감정의 수위나 농도가,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신파인 것 같다"라며 "(독립군끼리) 끌어안고 울고, 처절하게 울부짖고… 그런 것 못 하겠더라. 결국 '국뽕'이란 말도 관객분들이 판단해 줄 거라고 본다. 역사 소재로 돈을 벌고 싶어 하는 영화인지, 정말 그들을 기억하고자 하는 이야기인지는 관객분들이 잘 판단할 거라고 본다"고 밝혔다.

원 감독은 '봉오동 전투'가 '국뽕 영화'라기보다는 '긍지'를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영화가 되길 바랐다. 그는 "이게 승리한 전투이지 않나. 모든 전투지에서 수많은 독립군들이 만세를 부르고 소리를 지르고 눈물을 흘리고 얼싸안고 '이겼다!' 하는 장면을 촬영했다. 근데 도저히 못 넣겠는 거다. 승리의 전투인데도, 그건 제가 표현하려는 그런 감정이 아니었던 거다. (찍은 장면의) 감정의 크기가 너무너무 컸던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지금처럼 묵묵하게 바라보는 모습이 훨씬 더 묵직하게 전달된다고 저는 생각했다"라며 "이 한계를 관객분들께서 어떻게 받아들여 주실지는 모르겠지만, 긍지로 받아주셨으면 되게 좋을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 봉오동 전투 이야기가 더 널리 알려지길

원 감독을 만난 날은 개봉 하루 전인 지난 6일이었다. 원 감독은 "역사를 소재로 이야기하는 영화들이 감당하고 감내해야 하는 숙명이 반드시 있는 것 같다"라면서도 "충분히 검열했어도, 시대 상황이 바뀜으로써 시선 자체가 바뀌는 부분이 있더라. 신이 아닌 이상 그런 것까진 예상할 수 없다. 그럼에도 예상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걸 항상 걱정하고 무겁게 바라보고 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원 감독은 "작품에 워낙 오래 빠져 있었기 때문에 마지막 전투를 앞둔 독립군 같은 심정이다. 보통 영화를 찍으면 마음이 되게 흥분되고 기대되고, 내가 만든 이야기에 (관객들이) 얼마나 빠져들고 얼마만큼 캐치하고 서로 소통할지에 대한 기대감이 있다. 그런데 '봉오동 전투' 같은 경우는 상당히 무거운 마음이다. 직시하는 심정으로 개봉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밝혔다.

"분명한 것은, 한 편의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하고자 하는 이야기도 상당히 중요하긴 하지만 영화적으로 관객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부분이 충분히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균형 있게 만들어져서, 어떻게 하면 영화적인 즐거움까지 같이 느낄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 (봉오동 전투에 대한 새로운 사실이) 정말 많이 등장해서 더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지금도 알려진 게 너무 없어서, 더 많이 알려지면 좋겠어요." <끝>

'봉오동 전투' 원신연 감독 (사진=이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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