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날 오전 더불어민주당 윤호중·자유한국당 박맹우·바른미래당 임재훈·민주평화당 김광수·정의당 권태홍 사무총장은 국회에서 만나 18일 오후 문 대통령과 여야 5당 대표 회동을 열기로 최종 합의했다.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에 대해 정치권이 머리를 맞대고 외교적 해법을 포함한 난국 타개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의 청와대 회동은 지난해 3월 5당 대표 회동 이후 1년 4개월 만이다.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 개최에 합의하며 청와대와 국회간 협치의 물꼬를 텄던 지난해 11월 5당 원내대표들의 청와대 회동 기준으로도 9개월 만에 열리는 셈이니 청와대-국회간 오랜만의 소통 자리다.
올해 5월 9일 문 대통령이 취임 2주년 방송 특별대담에서 여야 대표와의 회동을 제안하자, 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다른 당을 배제한 '양자회담'을 역제안했고, 이후 민주평화당과 정의당을 포함하느냐 마느냐, 즉 '3당 회동'이냐 '5당 회동'이냐 등 포맷을 놓고 지리한 힘겨루기를 하다 끝내 무산된 것을 감안하면 여야 지도부가 모처럼 모여 정국 현안을 논의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크다. 올해 상반기 내내 여야 정치권은 물론 청와대와 야권도 선거법 개정안·권력기관 개편안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책임을 서로에게 덧씌우며 지리한 힘싸움을 했기에 이번 회동에 거는 기대도 크다.
문제는 18일 문 대통령과 여야 5당 대표간 어렵사리 마련된 소통 자리에 윤석열 검찰총장 임명안 재가가 악재(惡災)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여야 5당 대표 청와대 회동이 확정되기 직전 원내대책회의에서 윤 총장 임명 재가 움직임을 "의회모욕이자 의회무시, 국민모욕, 국민무시의 도를 넘는 행위"라고 비난했지만 임명안 재가는 강행됐다.
야당은 당장 반발했다.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윤석열 총장 임명에 이어서 '조국 법무장관 임명' 얘기가 있는데, 이 라인으로 어떤 일을 할 것인가 생각해 보면 결국 야당에 대한 끊임없는 압박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같이 정치하겠다는 생각보다 (야당을) 궤멸하겠다는 이 정부의 기조가 이어진다고 본다"고 날을 세웠다.
"문재인 대통령은 인사청문회 제도를 무력화시킨 독선의 상징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바른미래당 오신한 원내대표), "야당이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 초당적인 협력을 약속한 상황에서 찬물을 끼얹는 행동이 아닐 수 없다. 문 대통령이 언급하던 '협치'는 '협소한 정치'의 줄임말인가?"(같은 당 김정화 대변인) 등 바른미래당도 가만있지 않았다.
문 대통령의 원칙주의 맹신이 더 큰 문제라는 비판도 나온다. 문 대통령은 지난 4월 19일 우즈베키스탄 국빈방문 중 전자결재로 문형배·이미선 헌법재판소 재판관 임명안을 재가했다. 헌법재판관 공백이 하루라도 발생하는 것을 막기위한 불가피한 조처였다는 청와대 설명이 이어졌지만, 당시도 재송부 기한이 종료되자마자 임명을 강행했다. 이미선 재판관은 후보자 인사청문 과정에서 불거진 수십억원 대 주식 투자 논란에 대해 사과했지만, 야당은 국회무시라며 대규모 장외투쟁에 나섰다.
김상조 전 공정거래위원장(2017년 6월12일 재송부시한), 강경화 외교부장관(2017년 6월17일), 이효성 방통위원장(2017년 7월30일), 홍종학 전 중기부 장관(2017년 11월20일),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2018년 10월1일), 조명래 환경부 장관(2018년 11월8일), 김연철 통일부·박영선 중기부장관(2019년 4월7일) 등 장관급 인사 대부분도 청문보고서 재송부 시한이 만료된 바로 다음 날 임명재가됐다. 송영무 전 국방부장관과 조해주 선관위원이 재송부 시한 만료 3~5일 뒤에 임명안 재가가 이뤄진 게 예외라면 예외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윤 총장 임명 재가 전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청문회에서 큰 도덕적인 흠결이나 하자가 발견돼지 않은 상황들을 종합해 임명안 재가를 할 것으로 보인다"며 "과거에도 (재송부 시한 만료 직후) 임명안을 재가했다. 절처와 규정에 정해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야당의 반발이 불보듯 뻔한 상황에서도 과거 전례와 법에 규정된 대통령 임면권을 행사가 정당하다는 취지의 대응은 지난해 11월 5일 청와대에서 열린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 1차 회의에서 한 문 대통령의 발언을 무색하게 하기 충분하다.
당시 문 대통령은 모두 발언에서 "우리 정치에서 가장 부족한 것이 협치라는 그런 말을 많이 듣는다"며 "협치를 바라는 국민들의 기대가 매우 높다. 오늘 그 기대에 부응하는 회의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지난해 12월 전직 특별감찰반원이었던 김태우 수사관이 제기한 민간인 사찰 논란 때 "문재인 정부는 국정농단 사태의 원인을 단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 문재인 정부의 유전자에는 애초에 민간인 사찰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변했다.
현재까지의 검찰 수사 결과, 문재인 정부에 '민간인 사찰' DNA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협치' DNA도 없다는 세간의 평가에 청와대가 어떻게 답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