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해당 기장이 사실상 주류 요구를 시인했다는 취지의 구체적인 증언까지 나왔지만, 회사는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기장에게는 구두 경고만 내린 채 사건을 매듭지었다.
대한항공이 '승객 안전'을 중심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논란 차단'에 초점을 맞춘 채 사건을 사실상 덮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10일 CBS노컷뉴스 취재 결과, 대한항공은 김모 기장의 주류 요구 사건이 발생한 이후 자체 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김 기장과 함께 기내에 탑승했던 승무원 3명으로부터 진술서를 제출받았다.
3명의 승무원은 진술서에서 모두 사건 당일 김 기장이 먼저 '사과'까지 했다고 공통적으로 진술했다.
한 승무원은 김 기장이 술을 요구한데 대해 "팀장에게 '실수한 것 같다'며 변명했다"고 적었고, 다른 두 승무원도 "김 기장이 미안하다며 사과했다"고 밝혔다. 이는 김 기장의 주류 요구 상황을 회사에 정식 보고한 A사무장의 진술과도 일치한다.
A사무장은 회사에 낸 보고서에서 사건 당시 김 기장이 "아까 실수한 것 같다. (주류를 요청받은) 해당 승무원에게 사과하겠다고 말해, 내려서 얘기하자고 여러 번 말씀드렸다"고 설명했다.
사정을 잘 아는 대한항공 관계자는 "술을 요구한 사실 자체가 없다면 김 기장이 왜 먼저 실수를 언급하고 사과까지 했겠냐"며 "승무원과 A사무장 등 4명이 같은 진술을 하고 있는데 이만큼 신빙성 있는 증거가 어디에 또 있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심지어 김 기장은 당시 '왜 주류를 요구했냐'는 A사무장의 추궁에 "연말이라 싱숭생숭해서 그랬다"며 사실상 술을 요청한 부분을 인정하는 취지로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기장의 이같은 발언 역시 A사무장뿐만 아니라 현장에 있던 다른 승무원이 함께 들은 것으로 파악됐다.
더욱이 이번에 사건이 알려진 뒤 대한항공 외부 익명 게시판에는 "그분(김 기장) 여전히 웰컴 샴페인 달라고 하던데 중독이냐"며 추가 폭로성 글까지 올라왔다.
그동안 "의사소통의 오해로 불거진 사건인데다 술을 달라고 한 증거가 없다"는 대한항공 측 해명에 설득력이 떨어지는 이유다.
결국 대한항공이 진상 파악에는 미온적이면서 사건을 덮기에만 급급했다는 지적이 불가피하다는 평가다. 대한항공 측은 "김 기장이 당시 승무원들에게 사과를 한 건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켜 미안하다는 뜻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앞서 김 기장은 지난해 12월30일 암스테르담으로 가는 여객기에서 승무원에게 2차례에 걸쳐 샴페인과 와인 등을 요구한 의혹이 불거져 논란이 됐다.
승객 안전과 직결되는 중대 사안이지만 대한항공은 "농담으로 한 말이고 실제 음주를 한 것도 아니다"라며 김 기장에게는 구두 경고만 내리고, 되레 음주 요구를 문제삼은 A사무장은 품위유지 의무 위반 등 사유로 팀장에서 팀원으로 강등 조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