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인어공주' 탄생이 못마땅하단 사람들

디즈니, '인어공주' 에리얼 역에 할리 베일리 캐스팅
캐스팅 발표 이후 '흑인 인어공주'에 대한 도 넘은 비난 쏟아져
인종주의+유사 인종주의에 '공주-왕자 서사'가 만든 고정관념 뒤섞인 혐오와 차별
여성을 일종의 '트로피'로 바라보게 만든 '공주-왕자 서사'
"혐오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굉장히 적극적인 행위자"
"어떤 차별적 의식이 있는지 발견하는 독자가 되는 게 중요"

할리 베일리가 디즈니의 라이브 액션 신작 '인어공주' 에리얼 역에 캐스팅됐다. (사진=할리 베일리 인스타그램)
'인어공주 생선구이'

디즈니 애니메이션 '인어공주' 실사화 작품의 주인공 '에리얼' 역에 흑인 배우 할리 베일리가 캐스팅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등장한 혐오 표현이다. 인종차별적 시선은 물론 기존에 갖고 있던 '공주-왕자' 서사에 대한 고정관념 등이 이처럼 괴물 같은 혐오의 단어를 만들어 낸 것이다.

디즈니는 지난 4일 공식 트위터를 통해 미국의 가수 겸 배우 할리 베일리가 디즈니의 새로운 라이브 액션 '인어공주' 주인공 '에리얼' 역으로 캐스팅됐다는 소식을 전했다. 공식 발표 후, 할리 베일리는 자신의 SNS에 "Dreams come true(꿈이 이루어졌다)"는 글을 올렸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에리얼'이라는 자신의 꿈이 무너졌다며 혐오와 차별적 성토를 쏟아냈다. 이유는 새로운 '에리얼'이 '흑인 인어공주'라는 것이었다. 기존 디즈니 애니메이션 속 에리얼은 하얀 피부에 빨간 머리, 푸른 눈의 백인의 모습을 닮았다. 그러나 흑인 배우가 캐스팅되면서 '흑인' 에리얼에 대한 반감, 그리고 일부에서는 '외모'에 대한 평가까지 이뤄졌다.

심지어 국내에서는 '인어공주 생선구이'라는 혐오 표현이 새로이 생겨났다. 사상 첫 '흑인' '인어' 공주를 '생선구이'에 빗댄 것이다. 또 여기에는 '인어공주'를 하나의 주체적 존재가 아닌 '생선'으로 대상화한다는 의미도 들어 있다.

이번 '인어공주' 캐스팅 논란을 둘러싼 여러 혐오와 차별의 언어 속에는 인종차별주의는 물론이고, '외모 품평'이라는 권력 관계가 만들어 낸 유사 인종주의적 시선이 담겨 있다. 또한 '공주-왕자' 서사에 대한 뿌리 깊은 고정관념도 은연 중에 숨어 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인어공주' 속 에리얼. (사진=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김지은 아동문학평론가는 5일 성평등도서관 '여기'와 '서울시 마을 속 성평등 학교 만들기 사업단', '시립동작청소년성문화센터' 공동주최로 열린 '성평등주간 기념 초청강연-페미니즘으로 보는 아동문학' 강연에서 이번 '인어공주' 논란에 대해 "'인어공주' 원작자가 안데르센인데, 그가 말한 인어는 상상의 인물이다. 그 인어가 금발인지 검은 머리인지는 안데르센이 기술한 바가 없다"라며 "내 마음의 인어공주는 하얀 피부에 빨간머리를 가져야 동심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우리나라가 굉장히 강력하게 인종주의적 사고를 드러내도 괜찮은 나라라는 걸 느꼈다"라고 지적했다.

김 평론가는 사회학적으로 혐오의 감정들은 인종주의의 유사계열로 본다고 설명했다. 태어난 차이로 인해 차별받아 마땅하다는 것이 인종주의의 핵심인데, 강자가 약자에게 행하는 폭력적 행동의 기반에는 '인종주의적' 사고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혐오문화와 관련한 것을 '유사 인종주의'라고 부른다. '외모 품평'도 성차별적인 문화라는 점에서 권력 관계에 의해 생겨나는 '유사 인종주의'의 일종이다.


인종차별과 외모 품평이라는 문제 외에도 '인어공주'을 바라보는 논란적인 시선에는 '공주-왕자' 서사를 통해 학습된 여성에 대한 대상화 내지 고정관념이 들어 있다.

'백설공주' '잠자는 숲속의 공주' 등의 동화에서 볼 수 있는 이른바 공주-왕자 서사에서 공주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아니라 일종의 '트로피'로 작동하고 있다.

왕자는 공주의 얼굴도 모른 채 험난한 길을 떠나 악당을 물리치고 시체처럼 누워 있는 공주를 깨운다. 공주에게 동의받은 적 없는 '키스'라는 행위를 통해 공주를 깨운다. 동화 속 공주는 왕자의 키스를 거부하지 않는다.

김 평론가 역시 공주는 사랑의 존재가 아닌 '트로피'로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김 평론가는 "왕자에게 주어지는 예쁘고 저항하지 않는 시체와 같은 수동적인 여자, 그런 여자를 왕자에게 보상으로 주는 것"이라며 "'공주-왕자 서사' 속에서 우리는 젠더 수행을 어떻게 보는가. 왕자에게 사랑받기 위해 공주는 시체와 같은 상태로 가만히 있어야 한다. 그리고 모든 공주는 아름다워야 한다. 왕자는 '아름다운 공주'를 위해 가는 거지 '여성'이라는 한 주체를 향해 가는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김 평론가는 "할리 베일리는 'Dreams come true(꿈이 이루어졌다)'라며 미국에 있는 많은 유색인종이 바라는 꿈을 이뤘지만, 댓글은 '네가 내 에리얼을 망쳤다'라고 한다"라며 "이는 '트로피'가 색깔이 바뀌었다는 식으로 반응하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인어공주 생선구이'라는 전에 없던 혐오의 말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생겨났다. 그리고 인터넷을 떠돌며 혐오를 확대하고 재생산하고 있다.

김 평론가는 "혐오를 만들어내는 사람의 순발력과 노력을 보면 굉장히 빨리 혐오를 찾아내고 있다"라며 "혐오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지적으로 게으르거나 나태해서 혐오를 하는 게 아니다. 굉장히 적극적인 행위자"라고 지적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 4'의 보 핍(사진 왼쪽)과 디즈니 라이브 액션 '알라딘'의 자스민 공주. (사진=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김 평론가는 최근 경향에 대해 왕자는 안 변하는데 지금 공주들이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5월 개봉한 영화 '알라딘'에서 자스민 공주는 예전처럼 알라딘을 도와 악당 자파로부터 나라를 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자스민은 더 이상 침묵하지 않고 '술탄'이 된다. '토이 스토리 4'의 양치기 소녀 인형 '보 핍'은 드레스를 벗어 던지고 능동적이고 도전적인 캐릭터가 되어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디즈니는 그간 '디즈니피케이션(Disneyfication)', 즉 소망에 맞춰 현실을 탈바꿈했다. 디즈니 역시 기존의 '공주-왕자' 서사를 답습하며 인종주의와 성차별적 고정관념을 생성해 온 만큼, 이번 '인어공주' 캐스팅은 디즈니에게도 자신의 과오를 뛰어넘을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 평론가는 "가장 차별적 이슈로 가득한 작품도 어떤 독자가 누구와 함께 읽고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차별에 대한 대항을 키우는 교육이 될 수 있다"라며 "어떤 차별적 의식이 있는지 발견하는 독자가 되는 게 더 중요하다. 그냥 넘어가지 않고, 편견과 차별 의식에 적극 대응하는 '반편견 행위'를 하는 게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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