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과학 격차가 부메랑…국산 대체 '만만치 않다'

기술 격차에 제조장비와 한묶음 '진입장벽'

일본, 한국 대상 반도체ㆍ디스플레이 소재 수출 규제 (이미지=연합뉴스)

일본 정부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핵심 소재의 한국 수출 규제방침을 발표한 지난 1일 국내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관련 일부 기업의 주가는 오히려 상승마감했다.

이번 규제가 한국의 반도체, 디스플레이 업체로 하여금 일본 제품 대신 국산 제품을 찾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분석에서였다.

하지만 주가 상승은 계속 이어지지 못했다. 전날 상승 마감했던 국내 소재 기업 가운데 상당수는 2일 전날보다 많게는 5% 정도 하락하며 장을 마감했다.

국내 소재 기업들이 단기간에 일본을 따라잡기는 쉽지 않다는 현실 인식이 작동한 때문이다.

일본 정부가 수출 규제 방침을 밝힌 품목은 고순도 불화수소와 플루오르폴리이미드(FPI), 포토레지스트 등이다. 고순도 불화수소와 포토레지스트는 반도체 생산에 사용되는 소재며 플루오르폴리이미드는 주로 OLED 생산에 사용된다.

우선 플루오르폴리이미드는 일종의 플라스틱 필름이다. 보통 폴리이미드는 황토색 또는 짙은 회색을 띠는 필름 형태로, 열과 습기에 강하고 변형이 적은 특성이 있다. PC 본체 내부를 보면 짙은 황토 색깔의 띠 모양 회로선이 있는데 이게 바로 폴리이미드다.

폴리이미드는 디스플레이 커버로도 사용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투명성을 높여야 하는데, 불소를 첨가해 수소를 대체한다. 이것이 바로 플루오르폴리이미드(불소계 폴리이미드)다.

불소계 폴리이미드는 폴더블폰에 사용될 수 있는 투명 폴리이미드와 감광성 폴리이미드로 나눌 수 있다.


화학업계 관계자는 2일 "투명폴리이미드는 아직까지 시장 자체가 크지 않은 데다 코오롱인더스트리나 SKC 등 국내 업체가 생산하고 있어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응이 가능하다"면서도 "하지만 감광성 폴리이미드는 전혀 다른 제품으로, 국내에서는 대량생산하거나 품질이 높은 것은 나오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감광성 폴리이미드는 반도체 미세패턴 식각용으로 많이 사용하는데 일본 정부가 불소계 폴리이미드를 규제한 이유는 바로 감광성 폴리이미드 때문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고순도 불화수소는 반도체 식각이나 세척에 사용된다. 현재 일부 국내업체가 만들고 있으나 '파이브나인'(99.999%)급의 고순도 불화수소는 만들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다른 소재보다는 대체 가능성이 높아 크게 문제 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문제는 포토레지스트다. 포토레지스트는 반도체를 식각하는 과정에 사용되는 감광액이다.

반도체는 규사로 만든 둥그런 웨이퍼 위에 포토레지스트를 바른 뒤 회로 설계도를 본뜬 '포토마스크'를 대고 빛을 쬐어준다. 그러면 포토마스크에 가려진 부분의 포토레지스트와 가려지지 않은 부분의 포토레지스트는 화학적 성질이 달라지고 용매에 의해 어느 한 부분만 씻겨나가게 되면서 회로패턴이 새겨진다(식각과정).

반도체의 집적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패턴을 미세하게 설계하고 빛도 파장이 더 짧은 것으로 조사해야 한다. 보통 불화크립톤(KrF) 레이저를 쬐면 248나노 정도의 반도체를 만들 수 있고 불화아르곤(ArF) 레이저를 조사하면 193나노까지 만들 수 있다. 빛이 달라지면 포토레지스트 종류도 달라진다.

문제는 국내 업체의 경우 ArF에 대응하는 포토레지스트를 생산하고는 있지만 시장 점유율이 그리 크지 않다는 점이다. 금호석유화학이나 동진쎄미켐이 ArF급 포토레지스트를 만들고 있지만 일본 제품을 즉시 대체하지는 못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국산이나 일본 제품이나 기술 격차는 없다"면서도 "일본 제품에 맞춰 국내 생산 라인이 설계됐기 때문에 국내 제품으로 바꾸면 생산라인도 다 바꿔야 하는 만큼 진입장벽이 높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식각 광원으로 ArF 레이저를 쓰면서도 더 미세한 패턴을 만들려면 'ArF 액침' 방식을 사용하는데 여기에 맞는 포토레지스트가 일본보다 뒤져 있다"고 밝혔다.

최근 언급되고 있는 7나노급 패턴을 위해서는 파장이 매우 짧은 극자외선(EUV)을 광원으로 사용하는데 여기에 맞는 포토레지스트는 국내에 개발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KTB증권 김양재 연구원은 "국산 소재가 일본산 소재를 대체하기에는 한참이 걸릴 것"이라며 "화학 등 기초과학의 한일 격차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김 연구원은 "우리나라는 화학 전공자가 별로 없으나 일본은 어마어마하게 많다"며 "국내 반도체 생산 공정 100개 가운데 한국산 소재가 사용되는 공정은 2, 3개에 불과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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