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오전 국회 앞 정신장애인 단체 11개가 모여 기자회견을 열었다.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파도손) 이정하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언론은 국민에게 올바른 정보를 줘야 하는 사회적 책임이 있음에도 정신장애인에게 살인적인 폭력을 가하고 있다"며 "언론은 정신장애인 범죄가 나타나면 그때서야 보도를 하고, 입법자들은 여기에 편승해 편견만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언론이 '조현병' 등 정신 병력이 있는 이들의 범죄를 보도하면서 정신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조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말 이들의 말처럼 언론 보도가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혐오를 부추겨 왔던 것일까?
◆ "또 조현병'이라고요?"
"오늘 아침 기사 제목에 '조현병 범죄'라는 신조어까지 뜨는 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중앙자살예방센터 신은정 부센터장이 지난 5일 '정신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혐오와 언론의 역할'을 주제로 열린 정책 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진주 아파트 참사부터 고속도로 역주행 사고까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이들의 강력 사건이 연일 보도되고 있다. 일부 기사에선 '조현병 범죄' '또 조현병' '조현병 공포' 등 특정 정신질환을 강조하는 표현을 여과 없이 내보낸다.
이들 기사에선 정신질환자를 격리시켜야 한다는 댓글도 쉽게 볼 수 있다. 정신질환이 강력범죄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이다.
하지만 의학계에선 정신질환이 있다고 하더라도 범죄와의 연관성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한다.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권준수 교수는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실제로 조현병 치료를 받고 있더라도, 범죄와 병 사이에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경우가 더 많다"며 "성격적인 측면이나 음주 등 복합적인 요소를 살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신질환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범죄로 이어지진 않는다는 말이다.
미국 듀크대 제프리 스완슨 정신의학과 교수도 2015년 정신질환과 범죄와의 상관관계를 밝힌 연구<Mental illness and reduction of gun violence and suicide: bringing epidemiologic research to policy>에서 "역학조사 결과 심각한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이라도 대부분은 절대 폭력적이지 않았다"며 "가장 폭력적인 행동은 술이나 약물 등 정신질환 이외의 다른 원인들 때문이다"고 밝혔다.
그는 연구에서 "지역사회에서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은 대부분 사회적 약자로 살아왔고, 그로 인해 많은 폭력적 요소에 노출되곤 한다"고 적었다.
◆편견 강화하는 보도, 조기발견과 치료 늦춘다
문제는 언론에서 정신질환자의 사건을 보도할 때 범죄의 직접적인 원인을 정신질환으로 본다는 점이다. 정신장애인이 처한 사회적 배경의 설명도 부족하다. 이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강화할 수 있다.
정신장애인 단체인 '정신장애동료지원공동체'는 지난해 10월 입장문을 발표하고 "예전부터 강력범죄 등 참혹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가해자가 정신과 진료 경험이 있다면 마치 정신질환 및 정신장애가 강력범죄에 중요한 동인인 것처럼 보도가 되는 경향이 있었다"고 밝혔다.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유동현 소장은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최근의 언론보도는 장애 당사자의 삶의 방식에 대한 이해 없이 사회에서 격리해야 한다는 시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며 "격리 치료만이 답이라는 분위기를 언론이 방관 혹은 부추기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실제 연구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한양대 광고홍보학과 백혜진 교수 등은 2017년 발표한 논문 <정신질환의 낙인과 귀인에 대한 언론 보도 분석>에서 지난 10년 동안의 주요 일간지 기사를 분석했다.
연구 결과, 1,028개 기사 중 322개의 기사가 정신질환과 관련된 낙인을 다뤘다. 이 중 37%가 정신질환자의 부정적인 속성을 강조했으며 36.3%가 정신질환자를 주변에 피해를 입히는 '지위상실자'로 보도하고 있었다.
정신장애인 당사자와 의학계는 이 같은 보도가 정신질환과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키우는 것을 우려한다. 이들은 정신장애인이 치료 후 사회로 복귀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사회의 편견과 차별로 보고 있다.
편견이 치료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도 수없이 나왔다. 1999년 미국 보건복지부는 정신건강 관련 보고서에서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stigma)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과 관계를 맺고, 고용하고, 더불어 사는 것을 피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이어 "거기에 정신질환 관리를 위한 예산을 적게 쓰게 만들어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이 적절한 치료와 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렵게 만든다"고 적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2001년 보고서에서 정신질환 치료를 막는 주범으로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꼽았다.
권준수 교수는 "치료를 받으러 오는 환자들이 조현병 환자들을 다룬 뉴스를 보고 '혹시 나도 폭력적이 될 수 있냐'며 물어온다"며 "이럴 때마다 걱정할 것 없다고 다독이지만, 언론에서 자꾸 말하다보니 환자들이 많이 위축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병이 그렇듯 정신건강 또한 '조기발견 조기치료'가 중요하다"며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은 병을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하는 것을 막는다"고 지적했다.
국립정신건강센터 조근호 정신건강사업과장은 지난 5일 열린 정책 간담회에서 "기사 클릭수와 열독률을 높이려고 이런 제목을 뽑을 수밖에 없었겠지만 불편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정신질환과 폭력의 연관성을 전달해 대중의 공포심을 극대화하는 보도가) 정신질환에 대한 부정적이고 부적절하며 비호의적인 인상을 줘 환자의 지역사회 적응을 저해하고 정신질환과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 확산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 당사자 고려 없는 정신질환 보도는 그만
일각에선 해외와 같이 정신건강과 관련한 언론보도준칙을 마련할 것을 주장한다.
영국이나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에선 기자협회 등에서 정신질환 관련 사건사고에 대한 보도준칙을 마련해 공표하고 있다.
영국국립기자연맹(National Union of Journalist)에선 대학 연구자 및 이해 당사자들이 모여 '정신건강 및 자살 관련 보도지침'(Mental health & suicide guidelines)을 만들었다.
지침에선 정신건강 및 정신질환에 대한 낙인을 경계하고, 정신질환과 폭력 사이의 연관성을 추정하지 않도록 명시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관련 보도준칙에 대한 논의가 조금씩 나오고 있다.
2012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정신장애인 차별·편견 해소를 위한 실태조사>를 통해 정신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최소화하는 보도 매뉴얼을 정리했다.
특정 행동의 원인을 지목할 때 '우울증', '조울증'과 같은 진단명이나 '정신질환'이란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정신장애를 사건사고의 유일한 이유인 것처럼 기술하지 않는 등 정신장애인을 둘러싼 환경적‧사회적 요인들에 대한 균형 잡힌 보도를 주문했다.
조근호 정신건강사업과장은 또한 언론에 ①정신질환에 대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근거를 언급할 것 ②수사 관련 기사는 사실 확인 후 보도할 것 ③예방, 치료, 회복이 가능한 질환임을 이해하고 보도할 것 등을 제안했다.
정신장애인 단체에선 무엇보다 정신질환으로 고통 받고 있는 당사자의 입장을 고려해줄 것을 주문하고 있다.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유동현 소장도 "사건 위주의 보도 이외에도 기획취재나 의견란을 통해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의견을 듣는 것이 필요하다"며 "정신장애인을 소비 대상으로만 보는 행태를 지양해달라"고 당부했다.
파도손 박환갑 사무총장은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사건‧사고가 발생하면 무조건 병명을 거론하는 등 과도한 언론 보도로 정신장애인들은 위축받고 있다"며 "미디어를 통해 비춰지는 정신장애인들은 예비 범죄자일지 모르지만, 사실은 사회에서 피해를 받고 정신질환이 생긴 사회적 약자들이란 걸 알아줬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