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당 의원들은 국회 복귀 조건을 놓고 협상을 벌이는 지도부가 여당과 이견을 좁히다가 깨지기를 반복하자 피로감이 쌓인 상황이다.
장외투쟁 관련 여론의 지지가 예상보다 낮다는 점과 국회 상임위원회 위원장 교체건 등 현안이 밀려있다는 점도 당 지도부 주장과 달리 ‘국회로 복귀하자’는 목소리에 힘을 싣고 있다.
한국당 나경원‧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는 바른미래당 오신환 원내대표의 중재로 국회 정상화를 위한 물밑 교섭을 진행 중이다.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법안을 어떻게 처리할지 합의 문구를 두고 신경전을 벌여왔지만 12일까지 상당한 진전을 이룬 것으로 전해졌다.
선거법을 관할하는 정개특위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검경수사권 법안을 다루는 사개특위 시한 연장 여부를 놓고 막판 진통을 겪고 있지만, 판을 깰 만큼 핵심 요소는 아니라는 평가다.
문제는 여야 합의 진척과 별개로 한국당 내에서 ‘국회 복귀’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면서 단일대오가 흐트러지고 있다는 점이다.
나 원내대표를 비롯한 지도부는 ‘패스트트랙 철회‧사과’를 전면에 내걸었지만, 이는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라는 게 중론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당내에서 ‘국회 복귀’를 촉구하는 의견이 공개적으로 나오는 것은 지도부의 협상력을 저하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개특위 간사를 맡고 있는 장제원 의원은 이날 자신의 SNS(페이스북)를 통해 "한국당에는 소위 '투톱정치' 밖에 보이질 않는다"고 황교안 대표와 나 원내대표를 정면 겨냥했다. 또 "문재인 정권이 백기를 들 때까지 싸우던지, 아니면 국회 문을 열어 제치고 원내 투쟁을 해야 한다"고 작심 비판했다.
앞서 당 지도부가 국회 ‘복귀 조건'을 두고 여당과 밀고 당기는 모습을 보이자, 차라리 조건 없는 복귀가 낫다고 지적한 데 이어 재차 공개 비판에 나선 것이다.
윤상현 의원도 지난달 28일 페이스북에서 “이제는 국회로 돌아갈 시간”이라며 원내 복귀를 촉구한 바 있다.
당초 여야 4당의 패스트트랙 강행 처리에 반발해 국회 보이콧을 선언 후 장외로 나왔을 때만 해도 한국당은 모처럼 보기 힘든 결속력을 보여줬다. 여야 4당에 포위된 상황이 오히려 당내 위기감이 고조시켜 내부 결속을 도모한 셈이다.
또 패스트트랙 강행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은 만큼, 그에 상응하는 명분 없이는 국회로 복귀할 수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지난달 초부터 18일 간 황 대표가 펼친 민생투쟁 대장정에 대한 여론의 호응이 예상보다 낮았고, 일각에서 황 대표 본인의 대권 행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울러 국회 상임위원장 교체건 등 개별 의원들의 이해관계가 달린 현안들이 미뤄지면서, 국회 복귀에 반대했던 의원들이 하나 둘씩 유보 또는 복귀에 찬성하는 입장으로 돌아서는 분위기다.
한국당은 지난해 중순 20대 국회 하반기 원구성 협상 당시 각 상임위원장 자리를 1년씩 쪼개서 맡기로 내부 합의를 했다. 통상 3선 의원이 맡는 상임위원장은 임기가 2년인데, 자리가 부족해 당내 의원들끼리 1년씩 맡기로 한 것이다.
한국당에선 보건복지위원장은 이명수 의원에 이어 김세연 의원이, 국토교통위원장은 박순자 의원 후임으로 홍문표 의원이, 산자위원장은 홍일표 의원 대신 이종구 의원으로 교체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장외투쟁 단일대오에 균열이 생기자, 당내에선 적절한 명분을 갖고 들어가서 원내‧원외투쟁을 병행하자는 중재안이 떠오르고 있다.
한 비박계 중진의원은 이날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이 정도 했으면 장외투쟁으로 우리의 뜻을 국민들에게 알릴 만큼 알렸다”면서 “중도층의 지지가 없는 상황에서 같은 방식으로 투쟁한다는 건 크게 의미가 없고 이제는 들어갈 때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당내 핵심 관계자는 통화에서 “사실 우리도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지금까지 여당에서 적절한 명분을 주지 않아서 여기까지 온 것 아니냐”며 “자칫 명분 없이 들어가면 지금의 지지율이 폭락할 우려가 있어서 정교하게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