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막말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일부 보수우파 기업인들과 개신교 목사, 정치인, 퇴직 장성, 전직 장·차관, 법관, 교수 등 사회 각계 포진해 있다. 이들로부터 알게 모르게 지원과 격려를 받고 있다. 이 같은 보이지 않는 손들이 그에게 막말을 할 수 있는 힘을 만들어 준 셈이다.
시민들 가운데도 그의 막말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사람이 있다. 정부에 대해 품고 있는 불만과 울분을 그가 대신 말해주기 때문에 그의 막말이 터져 나올 때마다 열광한다. '막말' 목사의 막말은 실은 자신들이 하고 싶은 막말이기도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공개석상에서는 '막말' 목사를 지지하는 내색을 하지 않지만, 페이스북에 포스팅을 하고 단톡을 이용해 '막말' 목사의 동영상을 퍼나르며 공감한다. '막말' 목사에게는 그들 역시 큰 힘이다.
보수 성향의 개신교 신도들도 '막말' 목사에게 힘을 불어넣어 준다. 그들은 그의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인다. 설교시간에 그가 내뱉는 막말에 '아멘'으로 화답한다. 지난해 12월 경기도 광주에서 열린 집회 동영상을 보면 그가 "청와대로 진격할 때 총을 쏘면 모두 죽을 텐데, 죽을 용기 있는 사람은 손 들어보라"고 하자 참석자들이 모두 손을 들었다. 이날 집회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놀랍게도 신학을 공부한 목사부부 150여 명이었다. '막말' 목사의 힘은 이렇게 커져간 것이다.
더 무서운 것은 소셜 미디어 플랫폼에 감추어진 알고리즘이다. 페이스북이나 유튜브 등 SNS는 알고리즘의 작동에 따라 유사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용자들이 점점 더 많이 상호작용을 할 수 있도록 만든다. 자연히 반대의견은 차단하는 동종선호의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때문에 자신이 활동하는 SNS는 모두가 똑같은 성향의 정치적 입장을 가진 사람들뿐이다. 그 안에서 포스팅을 하고 좋아요를 누르다보면 마치 세상사람 모두가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성향과 일치한다는 착각에 빠지게 되고 그것이 대세인 것으로 믿게 된다. '막말' 목사가 막강한 힘을 갖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소셜 미디어를 이용하는 보수우파들로부터 극단적 지지를 얻기 때문이다.
'막말' 목사는 스스로 하나님의 신탁자라는 맹신에 빠져 신으로부터 힘을 얻는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는지도 모른다. 그 결과 그는 히틀러 암살을 시도했던 독일 신학자 본 회퍼와 자신의 목회철학을 동일시하는 자가당착에 빠졌다. 지난해 광화문에서 열린 3.1절 구국기도회에서 그는 '미친놈(히틀러)에게 운전대를 맡길 수 없다'며 히틀러를 암살하려고 했던 본 회퍼처럼 자신도 행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히틀러라는 괴물과 독일 파시즘을 탄생시킨 토대이자 지지세력이 독일 보수우파 개신교였다는 역사를 기억에서 잊어버린 것 같다. 이 같은 무지와 맹신까지도 그에게는 힘으로 나타난다.
'막말' 목사는 그렇게 해서 얻은 힘으로 보수 개신교 안에서 무서운 권력을 갖게 됐다. 그는 상대진영이 비웃든 욕을 하든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상대진영을 섬뜩한 막말로 위협하고 겁박한다. 나아가 자신에게 만들어진 권력으로 양극화와 극단주의를 부추기며 여론을 분열시킨다.
그는 쏟아지는 막말 비난에 대해 자신의 막말이 헌법이 보장하는 정치적 행위이고 양심이고 권리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도를 넘는 정치적 막말은 사회혼란을 야기시키고 극단적 대립을 선동하는 것으로 범죄행위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는 그는 끄떡도 하지 않는다.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앞서 열거했던 보수우파 기업인과 정치인, 목사 등 많은 이들이 우군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거기에 스스로 신탁을 받은 성직자라는 맹신까지 더해진다면…… 이보다 더한 불행은 없다. 그에게 주어진 이상한 힘과 권력이 어처구니없으면서도 무섭기도 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