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녹음 짙어가는 DMZ 화살머리고지…아픈 기억을 쏟아내다

北 공동유해발굴 합의 외면 속 남측 단독 유해발굴 한창
6.25 당시 화살머리고지 전투전초였던 1만1천m² 공간 집중 발굴
16구 추정 유해 발굴…총탄에 뚫린 철모,녹슨 총열,일제 방독면 등 유품 쏟아져
공동유해발굴 합의 안 지키는 북…GP옆에 감시소 만들고 발굴현장 세심히 관찰·감시

28일 강원 철원군 민통선 내 우리측 지역인 화살머리고지일대에서 남북공동유해발굴 T/F 장병들이 지뢰제거와 기초발굴을 하고 있다. 국방부는 지난 4월 1일부터 5월 22일 까지 발굴된 유해는 총 321점이며, 유품은 2만2808점이라고 밝혔다. (사진=박종민 기자)
28일 오후. 남과 북을 이어가며 DMZ(비무장지대) 사이를 흐르는 역곡천은 평온했다.

백마고지 등 주변의 얕으막한 산과 멀리 역곡천을 숨기고 있는 숲은 한창 녹음이 우거져 있었다.

작년 11월 남북 공동유해발굴을 위한 지뢰제거 작업이 시작될 때에 이어 두번째로 화살머리고지를 찾았다.

지난해에는 공동유해발굴이 군사분계선 일대의 긴장완화와 과거의 상처를 보듬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가 컸지만 이번에는 남측 단독발굴이라는 아쉬움 속에 해발 281m 높이의 화살머리고지 GP에 올라섰다.

28일 강원 철원군 민통선 내 우리측 지역인 화살머리고지일대에서 남북공동유해발굴 T/F 장병들이 지뢰제거 작전을 펼치고 있다. 국방부는 지난 4월 1일부터 5월 22일 까지 발굴된 유해는 총 321점이며, 유품은 2만2808점이라고 밝혔다. (사진=박종민 기자)
간간히 지뢰를 찾기 위한 기계음이 들려오는 가운데 멀리 산기슭 아래 널따란 경사지가 보였다.

GP에서 북쪽으로 5백여미터 정도 떨어진 곳으로 격자 형태로 흰 줄이 쳐져 있었다.

대략 1만1천평방미터 정도의 면적으로 지뢰제거가 끝나고 기초 발굴작업이 집중적으로 이뤄지는 곳이었다.

28일 강원 철원군 민통선 내 우리측 지역인 화살머리고지일대에서 남북공동유해발굴 T/F 장병들이 지뢰제거와 기초발굴을 하고 있다. 국방부는 지난 4월 1일부터 5월 22일 까지 발굴된 유해는 총 321점이며, 유품은 2만2808점이라고 밝혔다. (사진-=박종민 기자)
군 관계자는 해당 지역에 대해 "6.25 전쟁 때 전투전초가 있었던 곳"이라며 "주 진지를 방어하기 위해 수백미터 앞에 만들어 놓은 전투전초"라고 설명했다.

이곳에서는 동굴형 진지도 발굴됐다. 1개 분대원이 땅굴처럼 판 곳에 숨어 날아오는 폭탄과 총탄을 피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인데 유해는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남측이 유해발굴 작업을 할 대상 지역은 대략 16만평방미터지만 진행된 발굴 공정은 현재 1%도 되지 않는다.

28일 강원 철원군 민통선 내 우리측 지역인 화살머리고지일대에서 군관계자가 취재진에게 발굴된 유품을 설명하고 있다. 국방부는 지난 4월 1일부터 5월 22일 까지 발굴된 유해는 총 321점이며, 유품은 2만2808점이라고 밝혔다. (사진=박종민 기자)
유해 발굴작업을 하고 있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과 경비·경호를 맡는 5사단은 하루 1백여명을 투입해 오전 8시부터 오후 3시30분까지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화살머리고지는 백마고지 남서쪽 3km 지점에 있는 해발 281m의 고지다. 화살 머리처럼 남쪽으로 돌출돼있어 화살머리고지로 불린다.

한반도 중앙에 위치한 이곳은 전략적 요충지로 1951년 11월부터 휴전 직전인 1953년 7월까지 4차례의 격렬한 고지전이 벌어졌다.

군 관계자는 "철원 평야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 백마고지"라며 "백마고지를 확보하려면 반드시 인접한 화살머리고지를 점령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28일 강원 철원군 민통선 내 우리측 지역인 화살머리고지일대에서 남북공동유해발굴 T/F 장병들이 기초발굴을 하고 있다. 국방부는 지난 4월 1일부터 5월 22일 까지 발굴된 유해는 총 321점이며, 유품은 2만2808점이라고 밝혔다. (사진=박종민 기자)
화살머리고지 일대에서는 6.25 전쟁 발발후 4번에 걸쳐 큰 전투가 벌어졌는데 1951년 1차 전투는 국군 9사단이, 2,3차 전투는 미 2사단이, 4차전투는 국군 2사단이 휴전이 될때까지 중공군 등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중공군 등 적군 3천여명이 전사했고 아군 측에서도 국군 2백50여명을 비롯해 유엔군 소속 프랑스 대대원 등 모두 3백여명이 전사했다.

전사자수는 중공군이 압도적으로 많은데 발굴될 유해가 얼마나 될지는 모른다.

발굴된 유품은 당시 벌어진 전투가 얼마나 치열하고 참혹했던지를 그대로 보여줬다.

군은 화살머리고지 GP(군인 비상주) 한쪽에 유품을 모아놓고 취재진에 공개했다.

28일 강원 철원군 민통선 내 우리측 지역인 화살머리고지일대에서 군관계자가 취재진에게 발굴된 유품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국방부는 지난 4월 1일부터 5월 22일 까지 발굴된 유해는 총 321점이며, 유품은 2만2808점이라고 밝혔다. (사진=박종민 기자)
총탄 수십발이 뚫고 나간 수통과 철모,탄약과 탄약이 장전된 녹슨 총열, 수류탄과 고폭탄, 대전차지뢰,판쵸우의, 중공군이 착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일제 방독면과 미군 방탄복 등이었다.

저마다 치열했던 전투와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남북공동유해발굴 TF 단장인 문병욱 대령은 "M1 총열 안에는 아직 탄까지 남아있었다"며 "총을 다 쏘지도 못하고 산화하신 분의 유품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화살머리고지 일대에서 발굴된 유해는 50여구의 것으로 보이는 320여점이며 발굴된 유해수는 16구로 추정된다.

유품 2만3천여점이 발굴됐고 불발탄 2천180개, 지뢰 138발이 나왔다.

유엔 정전위원회 소속으로 유해발굴단의 DMZ 입출입을 관리 통제하는 프랑스 군인인 유고 페느넬 소령은 "화살머리고지에 프랑스 전사자들이 있기 때문에 프랑스에서도 관심이 높다"며 "프랑스 군도 여기에 와서 존재감을 가지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한국근무를)자원했다"고 말했다.

프랑스 대대원들은 미 2사단에 배속돼 화살머리고지에서 전투를 했는데 모두 47명이 전사했다.

아직도 3명의 전사자 유해가 이 고지 일대에 묻혀있다.

28일 강원 철원군 민통선 내 우리측 지역인 화살머리고지일대 한 경계초소에서 군관계자가 취재진에게 발굴된 유품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국방부는 지난 4월 1일부터 5월 22일 까지 발굴된 유해는 총 321점이며, 유품은 2만2808점이라고 밝혔다. (사진=박종민 기자)
북한은 작년 9.19 군사분야 합의에서 화살머리고지 공동유해발굴에 합의했으나 남측의 공동유해발굴단 구성 제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결국 지난 3월부터 남측 단독으로 DMZ 남측에서 유해발굴을 시작했다. 공동발굴을 위한 도로도 개설됐지만 북한이 외면함에 따라 제대로 쓰이지 못하고 있다.

군 관계자는 북한이 공동발굴에 합의를 해놓고 이행하지 않는 것은 문제 아니냐는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북한은 다만 5월 들어 남측의 유해발굴 작업을 감시·관찰하기 위해 자신들의 GP 앞에 새로운 감시초소를 만들었다.

군 관계자는 "북한이 남측의 유해발굴 작업을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비핵화 협상 결렬과 남북관계 진전에 대한 불만의 표시로 아직까지 공동유해발굴에 나서지 않고 있으나 상황이 바뀔 경우 공동유해발굴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28일 강원 철원군 민통선 내 우리측 지역인 화살머리고지일대에서 남북공동유해발굴 T/F 장병들이 한국전에서 전사한 후 65년 만에 가족 품으로 돌아간 고(故) 박재권 이등중사의 유해와 유품이 발굴된 장소에 세워져 있는 추모비에 경례하고 있다. 국방부는 지난 4월 1일부터 5월 22일 까지 발굴된 유해는 총 321점이며, 유품은 2만2808점이라고 밝혔다. (사진=박종민 기자)
전쟁의 참혹함과 아픔을 쏟아내고 있는 DMZ 화살머리고지. 작은 산 하나가 평화의 중요성을 일깨우면서도 평화를 지키는 것이 또 평화로 가는 길이 얼마나 고된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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