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부 퇴진을 내건 오신환 원내대표 당선 후에도 손 대표가 사퇴를 거부하며 내홍이 극대화되자, 오 원내대표를 당선시킨 안철수-유승민 연합군은 오는 6월쯤 퇴진을 전제로 한 '혁신위원회' 구성 등 여러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혁신위 체제는 애초 손 대표가 제안했기 때문에, 명분상 수용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손 대표 측이 물밑에서 '당무위원회'를 검토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당무위를 이용해 당권파 비례대표를 제명한 뒤, 호남계와 함께 민주평화당과의 통합으로 '제3지대'를 열겠다는 구상으로 풀이된다.
6월 퇴진을 조건으로 한 혁신위를 꾸리더라도, 7월 이같은 구상이 현실이 되면 손 대표로서는 반격에 '성공'한 셈이 된다. 교섭단체(의원 20석) 지위를 뺏어올 수 있기에, 안-유 연합으로서는 치명타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 "정치싸움 그만" 孫 심상치 않은 반격 움직임
손 대표는 24일 임시 최고위원회의에서 바른정당계 최고위원(하태경·이준석·권은희)들이 요구한 '의원정수 확대 반대' 등 모든 안건을 거부했다. 안건은 모두 사퇴를 압박하는 '비토' 성격이 있다. 손 대표는 "이런 식의 정치싸움을 그만하라. 다음부터 임시회 소집요구를 받지 않겠다"라고 강조했다.
손 대표의 이러한 강경 발언은 낯설다는게 안팎의 평가다. 평소 공개 회의에서 손 대표는 자신을 향한 공세에 점잖게 대응해왔다.
손 대표의 반격 조짐은 지난 22일 하태경 의원의 "나이가 들면 정신이 퇴락" 발언부터 일부 포착된 바 있다. 기자들과 만난 손 대표는 "예의와 금도를 지켜야 한다"라고 경고했다.
하 의원이 90도로 인사하며 사과 입장을 재차 밝힌 24일 회의에서 손 대표는 "사과를 받아들인다"면서도 "정치인으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대국민 사과를 요구했다. 하 의원은 이후 손 대표를 지지하는 당원들로부터 윤리위원회에 제소를 당했다.
지도부 퇴진을 내건 오신환 원내대표 당선 후 극심한 사퇴 압박에 시달렸던 손 대표는 '정면돌파'에 자신감을 되찾은 모습이다. 우선 당직인선에 있어 사무총장 임재훈 의원, 정책위의장 채이배 의원, 수석대변인 최도자 의원, 비서실장 장진영 전 국민의당 최고위원 등을 임명하며 당권파의 진용을 갖췄다.
지도부인 최고위 구성에서도 당권파는 손 대표, 지명직 최고위원(주승용‧문병호)과 채이배 정책위의장 등 4명, 반대파는 오신환 원내대표, 바른정당계 최고위원(하태경‧이준석‧권은희) 등 4명으로 팽팽하다. 지도부 퇴진 입장이던 안철수계 김수민 청년최고위원은 최근 "대화가 필요하다"며 중도파로 선회했다.
여기에 반대파들이 법원에 제기한 지명직 최고위원 임명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이 24일 기각됐다. 손 대표로서는 버틸만한 충분한 동력이 생긴 셈이다.
◇ 일격 당한 안철수-유승민 연합군, 퇴진 전제 혁신위 논의도
반대파들의 고민 지점은 여기에 있다. 당헌·당규상 당 대표를 끌어내릴 수 있는 방안은 없다. 더이상의 싸움은 여론에도 좋지 않고, 피로감만 쌓여간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럴 바엔 '혁신위원회'를 구성해 손 대표 퇴진을 논의해보자는 주장이 제기된다.
이러한 의견은 주로 안철수계(이태규·김수민·신용현·이동섭·김삼화·권은희)에서 나오고 있다. 손 대표 사퇴에 있어 손을 맞잡은 유승민계는 아직 회의적인 반응이다.
안철수계 한 의원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가급적 빨리 손 대표 퇴진을 논의하는 혁신위가 구성돼야 한다"고 말한 반면, 유승민계 한 의원은 "혁신위를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안철수-유승민 연합군은 최근 몇차례 회동하며 이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파악된다. 결론은 내지 못했지만, 퇴진을 조건으로 내건다면 최소 오는 6월로 명시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안철수-유승민 등판이 8월 전에 이뤄져야 한다는 스케줄을 감안해서다.
◇ 명분 때문에 혁신위 받지만, 당무위로 '반격'?
혁신위는 애초 손 대표가 두차례 꺼내든 바 있다. 4·3 보궐 참패 후 얼마 지나지 않은 5월에 혁신위를 제안하며 위원장직에 바른정당계 정병국 의원을 앉히려다 무산됐다. 이후 오신환 원내대표 당선 후 혁신위 구성을 다시 제안했다.
손 대표 본인이 재차 제안한만큼, 퇴진을 조건으로 내건 혁신위라도 명분상 받을 수 밖에 없다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하지만 퇴진 시점을 다음달로 정해놓고 혁신위를 꾸린다면 손 대표 입장에서는 '빈손' 사퇴가 될 수밖에 없다. 이에 또다른 '반격 카드'를 준비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손 대표 측에서는 7월 당무위원회를 구상하고 있다는 전언이 나온다. 당무위는 당무 집행에 관한 최고 의결기관으로, 현재 바른미래당에는 구성되지 않은 상황이다. 손 대표 관계자는 "구상은 있지만, 아직 구성에 착수하거나 한 것은 없다"라고 밝혔다.
당무위 구성은 손 대표와 가까운 '비례대표' 제명과도 연결돼 있다는 시각이다. 바른미래당 한 관계자는 "당무위를 꾸린다면 비례대표 제명을 통해 새로운 대안을 찾는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비례대표 제명은 당적은 바른미래당이지만 민주평화당에서 활동해 당원권정지 징계를 받은 3인(박주현·장정숙·이상돈 의원) 중 2인(박주현·장정숙)이 유력하다. 이 의원의 경우 유승민 의원을 지지하고 있다.
비례대표가 의원직을 상실하지 않으려면 출당 혹은 제명 조치를 당해야하기 때문에 이들의 징계를 풀고, 제명을 하면서 민평당에 갈 수 있는 활로를 열어주는 것이다.
이와 함께 당권파 3인(임재훈·채이배·최도자)을 제명하고, 손 대표와 호남계가 민평당에 가면서 '제3지대' 세를 규합한다는 시나리오다.
최근 한 호남계 의원은 사석에서 자신의 측근을 제명시켜주면 손 대표를 설득하겠다고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자신과 측근이 손 대표의 손을 이끌고 민평당에 갈 수도 있다는 얘기로, 앞서의 시나리오와 같은 맥락이다. 민평당에서도 7월 통합설이 나오는 상황이다.
당헌상 비례대표 제명은 의원총회에서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하므로 문턱이 높다. 하지만 당무위원회에서는 당헌 개정안을 발의할 수 있다. 제명 요건을 낮출 수도 있는 셈이다.
만약 이같은 관측이 현실화된다면 교섭단체는 바뀔 수도 있다. 현재 바른미래당 의원 수는 총 28명이다. 이중 당권파와 호남계 등을 합하면 11명(박주현·장정숙 포함)이다. 민평당 의원 수가 14명인 점을 감안할 때 총 25명이 완성돼 교섭단체 지위를 획득하게 된다.
반면 바른미래당에 남은 안철수-유승민 연합군은 15명이다. 당 활동을 하지 않는 박선숙, 이상돈 의원을 합해도 17명에 불과해 교섭단체 지위를 잃는다.
이 경우 정개개편의 키는 손 대표와 민평당의 '제3지대'가 쥐고 원내 협상력까지 갖춘다는 점에서 향후 패스트트랙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퇴진을 했어도 '역공'에 성공할 수 있는 셈이다.
바른정당계에서는 이같은 행보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바른정당계 한 의원은 "당무위를 구성해 기술적으로 가능하겠지만, 저렇게까지 만들어진 정당이 대체 어떤 감동을 주겠느냐"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