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2년 대선 유세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친구로 소개할 정도로, 두 사람은 서로에게 가장 친한 친구이자 정치적 동지였지만 성격은 정반대다.
큰 틀에서 '원칙주의자'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노 전 대통령은 외강내유, 문 대통령은 외유내강으로 스타일이 전혀 다르다.
두 대통령을 모두 보좌했던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은 18일 열린 '노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 시민문화제'에서 "노 대통령은 겉으로 굉장히 강하지만 속으로는 여리고 섬세한 분"인 반면, "문 대통령은 겉으로는 여린 것 같은데 속은 훨씬 더 불이 있고 강하고 단단한 분"이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불의를 보면 참지 못했다.
2002년 대선 당시 이인제 후보 측이 노 전 대통령 장인어른의 좌익 경력을 문제 삼자 "조강지처를 버려야 했느냐"며 역으로 강공을 펼쳐 비난 대신 대중적 호응을 끌어냈다.
대통령이 된 후에도 직설 화법을 계속 사용해 종종 구설수에 올랐다.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논란 때는 당시 야당이 아니라 여당의 대표였던 고(故) 김근태 열린우리당 당의장에게 "계급장 떼고 붙어보자"며 충돌하는 일도 불사했다.
반면, 문재인 대통령은 할 말을 꾹 참고 필요한 말만 하되 고집을 꺾지 않는 스타일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18일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독재자의 후예가 아니라면 5·18을 다르게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한국당 지도부의 계속된 거친 비난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을 직접 가리켜 지적하지 않았다. 대신 간결하게 5·18에 대한 시각을 근거로 한 프레임만 제시했다.
5·18을 둘러싸고 여야가 나뉘어 파열음을 내는 가운데 대통령이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은 것.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문 대통령은 문제가 생겼을 때 잘 참으면서도 개념적으로 잘 접근하는 스타일"이라며 이날 발언을 평가했다.
민주당의 다른 의원은 "노 대통령 본인이 나서서 일을 벌이는 경우가 많았는데, 문 대통령은 그를 대신해 동료들을 뒷바라지 하면서 옆자리를 지켜왔을 정도로 인내심이 대단하다"며 둘의 상반된 성향을 설명했다.
두 대통령 모두 참모들과의 토론을 즐기지만 결론을 내는 방식에선 차이가 있다.
노 전 대통령이 뚜렷한 자신의 주장을 가지고 참모들과 토론을 벌여 서로가 납득할 수 있는 공통 답안을 찾았던 반면 문 대통령은 참모진의 의견이 낫다고 판단하면 이를 존중하되 그렇지 않을 경우 자기 생각대로 밀고 나가는 편으로 알려졌다.
두 대통령의 당선에 기여했던 한 여권 인사는 "문 대통령은 설득이 안 되면 자기 생각대로 추진하되, 설득이 되면 생각을 바꾼다"며 "반대로 노 전 대통령은 결론이 날 때까지 토론을 해 결정하는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노무현재단 유시민 이사장도 "노 전 대통령은 굉장히 괜찮은 토론자였다"며 "어떤 책을 읽거나 이슈를 같이 공부해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상대방에게 매우 다양한 형태의 지적 자극을 주는 분이셨다"고 회상했다.
의사결정 방식은 사뭇 다른 두 사람이지만 실용성을 우선한다는 점은 닮았다.
노 전 대통령의 경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과 이라크 파병은 진보 정권 지도자로서는 내리기 쉽지 않은 결단이었에도 대미(對美) 관계에서의 실익이 더 크다는 판단 아래 지지층과 여론의 반대를 무릅쓰고 관철시켰다.
두 대통령의 선거운동을 도왔던 한 여당 의원은 "국가가 처한 현실이 한미동맹 관계를 유지·강화하지 않고선 안 된다는 걸 직시하셨다"며 "내부 지지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미 FTA나 파병을 선택했을 정도로 선견지명이 있으셨던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문 대통령의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조치도 노 전 대통령의 FTA 체결과 유사한 성격을 띤다. 24조원 규모의 16개 시도 23개 대형 공공사업의 경제성을 따지는 절차로, 지지층의 반발이 만만치 않음에도 추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