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가 떠나면서 '살기 좋은 농촌을 직접 만들어 보겠다'던 그의 꿈은 중단될 위기에 놓였다.
하지만 봉하마을에는 떠나는 사람보다 눌러앉는 사람이 많았다.
그의 꿈을 잇기 위해 경험도 없는 사람들이 농사를 짓고, 그의 꿈이 잊혀지지 않도록 회사를 때려치우고 '봉하마을 사진사'가 된 사람도 있었다.
◇ 건축업자였던 윤경호는 '봉하쌀' 매니저로
윤 팀장은 부산에서 건축업을 하던 1980년대, 당시 노무현 인권변호사가 노동 탄압에 맞서 싸우는 모습에 반했다.
2000년 '노무현을사랑하는모임'에 가입하면서 적극적 지지자가 됐고 서거 뒤 봉하마을에 남게 됐다.
윤 팀장은 "서거 때 노사모 자원봉사의 손이 부족해서 여러 잡무를 봤다. 봉하마을을 지켜야 겠다는 생각을 했고, 2010년부터 봉하마을에서 농사를 짓게 되면서 아예 눌러앉게 됐다"고 말했다.
윤 팀장은 당시 영농법인 봉하마을 김정호 대표(현 민주당 국회의원)와 함께 오리농법과 우렁이농법 등 친환경 농사를 배우면서 노 대통령의 뜻을 이었다.
윤 팀장은 "대통령 안 계신 상황에서 이를 유지하는 건 힘들었고, 김정호 대표나 저나 경험이 없어 서툴러서 일 배우느라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그렇게 노 전 대통령의 유업을 이어가면서, 현재 봉하마을을 포함한 인근 농가 150가구, 35만평에서 친환경 농업이 이뤄지고 있다.
윤 팀장은 "수익이 많이 나는 건 아니지만 인건비와 운영비 정도는 마련돼 유업을 차질없이 이끌어 올 수 있었다"며 "앞으로 땅을 투기 목적으로 갖는 농가들과, 친환경 농법을 실시하지 않는 농가들을 설득해 더 많이 친환경농법을 하도록 하고 싶다"고 말했다.
◇ "대통령의 꿈 잊혀질까…" 회사 그만두고 '봉하 사진사' 된 김영호
그는 "보수적인 아버지와 다른 노 대통령의 민주적·진보적 모습에 홀딱 반했다"고 했다.
2002년 대선 때부터 노 전 대통령을 '쫓아'다녔고, 서거 이후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봉하마을에 자리를 잡았다.
김 작가는 "서거 이후 '사람사는 세상'이라는 그의 꿈이 잊혀질까 걱정돼 봉하마을에 남아 사진으로 기록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봉하마을을 사진으로 기록해 역사에 남기는 게 나의 일"이라며 "대통령의 유업인 생태농업과 자연환경 지키기, 마을 살리기 등을 이어가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노 대통령을 담은 '봉하마을 4년'이라는 사진책도 출판했고 23일에 개봉되는 영화 '시민 노무현' 제작도 도왔다.
김 작가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진 두장을 보여줬다. 김경수 지사와 유시민 작가가 노 전 대통령과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이다. 김 지사와 유 작가는 각각 재판일정과 모친상으로 10주기 추도식에는 참석하지 못한다.
◇ "대통령 대신 손님맞이 소홀할 수 없죠" 임태성 봉하사업본부 팀장
임 팀장은 2011년 봉하사업본부에 '취직'을 했다. 당시 봉하사업본부장이었던 김경수 경남지사가 면접관이었다. 봉하마을 내 대통령 추모기념관을 전반적으로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
임 팀장은 "2011년 들어와서 대통령 2주기 추도식 준비부터 본격적으로 일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 재임기간 지켜주지 못했다는 마음의 빚을 느꼈고 이를 더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이곳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임 팀장은 "뼈를 묻겠다고 거창하게 말은 못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을 대신해서 방문객들을 맞이한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