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일각에서는 '의원정수 확대의 전제조건인 특권 포기 등 국회 개혁 논의는 빠진 채 지역구 지키기에만 골몰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논의의 선후가 바뀌었다는 얘기다.
실제로 현재 정치권의 선거제 관련 논의에서 특권폐지 논의는 쏙 빠진 채 지역구 의석수를 지키기위한 의원정수 확대에만 집중되고 있다.
의원정수 확대 논의에 가정 먼저 불을 지핀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은 "(선거제 개편안대로라면) 전국구 비례대표가 늘게 돼, 인구가 매일 줄어드는 농어촌 지역을 제대로 대변할 수 없지 않냐"고 주장했다.
평화당 유성엽 의원 또한 원내대표가 되자마자 첫 일성으로 '의원정수 확대로 지역구 의석 축소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도 "지역구를 그대로 두고 의원정수를 확대하는 방안을 여야가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모두 지역구 의원수를 지키기 위해 의원정수 증원이 필요하다는 논리로, 소수정당 중심으로 지역구 의원 수를 지키기 위한 의원정수 확대 군불때기에 나선 모양새다.
여당 내부에서도 지역구를 순전히 줄일 수 있겠냐는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이에 이해찬 대표는 "300인 (국회의원) 정수는 지켜져야 한다"고 단속했지만 여야 정치권에서는 영향 받는 지역구 수십여 개에 달하는 상황에서 선뜻 패스트트랙에 올려진 선거제 개편안에 동의할 수 있겠냐는 목소리가 끊이질 않을 전망이다.
하지만 정치권의 '지역구 지키기'를 핵심으로하는 의원정수 확대론에 대해 일부에선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의원 정수 확대에 대해선 정치권이나 시민사회에서도 공감대가 있지만, 국회의원의 특권 내려놓기와 일하는 국회를 위한 개혁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1월에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자문위원회도 360명까지 의원정수를 늘리는 안을 국회의장에게 권고했지만, 어디까지나 국회 세비 동결 등 강도 높은 개혁을 전제로 한 증원이었다.
증원 논의에서 실종된 국회 개혁안에는 국회의원의 세비 축소와 개인보좌진을 9명에서 7명으로 줄이는 방안이 주로 거론된다. 해당 개혁이 이뤄진다면 현재 국회 예산을 늘리지 않고도 360명까지도 의원 정수를 늘릴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와 함께 국회를 투명화하는 제도 개혁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국회법 개정을 통해 정보공개 확대를 제도화해 의원의 '깜깜이 예산'을 투명화하고, 불체포특권 최소화, 재판·수사중인 국회의원 법사위 배제 등의 방안이다.
또 독립된 국회 감사위원회를 만들어 국회의원의 예산을 감사하고, 의원 연봉과 혜택, 해외출장 등에 관한 심의를 하도록 하는 안도 있다.
비슷한 취지로 정의당은 당론으로 '셀프 금지 3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셀프 금지 3법이란 국회의원의 세비 인상, 징계, 해외출장 심사를 독립기구에 맡겨 셀프로 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들이다.
하지만 의원정수를 확대하는 선거제 논의 과정에서 특권 폐지 논의가 선행될 지는 미지수다. 국회법을 고치는 운영위에 절대 다수인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등 거대 양당이 개혁에 미온적인 태도거나, 아예 동의하지 않고 있는 터다.
비례민주주의연대 하승수 대표는 CBS 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 증원에 대한 여론이 안 좋지만 그럼에도 거대 양당은 개혁에 대한 의지가 전혀 없는 상황"이라면서 "시민단체나 국민이 정당들로하여금 국회 개혁에 나서도록 압박하는 방법밖엔 없다"고 토로했다.
이 때문에 의원정수 확대에만 집중되는 논의가 결국에는 선거제 개편을 좌초시키기 위한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선거제 국민의 여론이 의원정수에 안 좋은 것을 뻔히 알면서도, 특권 폐지 논의가 아닌 정수 확대부터 이야기하는 배경에는 결국 선거제 개혁을 흔들려는 시도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평화당 유 원내대표는 "이런 상태에서 패스트트랙에 올라타 있는 선거제 안은 절대 처리할 수 없다"고 의원 정수 확대 없이는 선거제안에 동의할 수 없다고 선을 긋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