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처음 알린 이탄희 전 판사(변호사)는 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재판을 받는 국민은 내 사건을 맡은 판사가 (징계) 명단에 포함돼 있는지, 어떤 비위사실이었는지, 징계가 이뤄지지 않았다면 어떤 근거인지 알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전 판사는 '양승태 대법원' 시절이던 2017년 2월 법원행정처에 발령받은 후 사법농단 관련 문건 작성을 지시받자 이에 반발해 사의를 표명한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글에서 "대법원장이 검찰의 통보대로 징계를 해야 할 의무는 없고 징계 시효가 도과된 부분도 애써 눈감을 수 있다"면서도 "(징계 관련 내용을 공개해야) 나머지 2900여명의 판사들도 자유로워진다"고 강조했다.
대법원은 이날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해 총 10명의 현직 법관에 대해 징계를 청구했다. 지난 3월 5일 검찰이 현직 법관 10명을 추가로 기소하면서 현직 판사 66명을 사법농단에 관여했다며 비위통보한 지 65일 만이다.
그러나 비위통보 대상 중 32명은 이미 징계시효(3년)가 지나 배제됐다. 나머지 34명 중에서도 10명만 징계 대상이 된 것인데, 법원은 이들 중 3명이 고등법원 부장판사, 7명이 지방법원 부장판사라는 것 외에는 별다른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발표 직후 △징계 대상자 명단 △대법원장의 징계 청구 내용(수위) △시효 도과된 혐의 △월별 징계 시효 도과된 인원 등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도 "확인해주기 어렵다"고 일관했다.
특히 10명 중에서도 3명은 지난해 6월 대법원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을 통해 13명을 징계 청구할 때 포함됐던 판사들이다. 결과적으로 사법부가 사법농단과 관련해 징계를 받을 만 하다고 본 현직 판사는 20명에 불과한 것이다.
이마저도 징계 청구일 뿐이어서 실제 법관징계위원회 심의 이후 징계를 받을 판사 수는 더 줄어들 수 있다. 지난해에도 징계위는 징계 청구된 13명 중 8명에 대해서만 처분을 하고 2명은 '불문(不問)' 경고를, 3명에 대해서는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그간 법원은 징계 청구 시점이 아니라 징계위를 통해 징계가 확정된 후 관보를 통해 징계 대상자와 내용, 징계 수위 등을 공개했다. 그러나 이번 사안의 경우 징계 청구 단계에서 제외된 인원이 상당한 만큼 그와 관련한 내용을 밝힐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이다.
이 전 판사와 함께 사법농단 사태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온 류영재 춘천지법 판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모든 게 비공개여서 징계청구가 적정한지 문제인지조차 판단이 불가능한 것이 문제"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