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 여객터미널 지하 1층.
굳게 닫힌 '체화창고'(Customs Warehouse)의 문을 두드렸다.
이곳엔 여행객들이 가져왔다 입국장에서 통관되지 못한 물품이 보관돼 있다.
주로 '짝퉁 가방' 등 모조 제품이나 술, 담배, 가방 등 입국 여행객들이 면세범위를 초과한 채 신고 없이 들여오려다가 세관에 덜미가 잡힌 물품이다.
창고로 들어간 물품들은 주인이 세금을 내고 찾아가거나 해외로 반송되기를 기다린다.
그런데 한참이 지나도록 주인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노컷뉴스팀에선 이 궁금증을 해결하고자 직접 인천공항 세관을 찾아가 여행자 물품 처리 과정을 추적했다.
◇ 폐기되는 여행자 휴대품 한 달 5~10톤
현재 세관에선 관세법에 따라 인천공항 세관을 통과하지 못한 물품을 한 달 동안 창고에 보관해두고 있다.
한 달이 지나면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여행자 휴대품을 처리한다.
먼저 돈이 될 만한 물건들은 공매 또는 위탁판매로 국고로 환수한다.
돈이 되지 않거나 도검류, 불법 약품 등 판매를 아예 할 수 없는 물품은 폐기장으로 보내는 식이다.
간혹 옷, 신발, 가방 모조품의 경우 상표를 떼고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아 기부하기도 한다.
기자가 인천세관 체화창고를 방문한 지난 18일은 2019년들어 6번째로 체화창고 물품들을 처리하는 날이었다.
체화창고의 철문이 열리자 폐기를 앞두고 있는 포대 자루 수십 개가 좁은 공간 안에 겹겹이 쌓여있었다.
관세행정관의 말에 따르면 이번에 폐기되는 여행용 휴대품들은 총 5톤가량이라고 한다.
인천공항 세관에선 한 달에 최소 한 번, 많으면 두 번 물품을 폐기한다. 폐기 주기는 창고에 쌓이는 물품의 양에 따라 그때그때 바뀐다.
마약이나 보석 등의 압수물품들은 별도의 압수창고에서 폐기를 진행한다고 하니, 매달 세관에 얼마나 많은 물품들이 쌓이는지 짐작조차 어려웠다.
◇ 인천세관 체화창고 최다 품목은 '담배'
인천공항 체화창고에 가장 많이 들어오는 여행자 물품을 물어보자 "담배가 압도적으로 많다"며 "최근엔 의약품 반입도 늘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실제로 인천공항 세관에서 밝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체화창고에 들어온 담배 건수는 약 2만 5천건으로, 여행자 물품 중 압수 1위를 차지했다.
담배 다음으로는 의약품 1만 2천건, 모조상품 3천건이 체화창고로 들어왔다.
특히 담배는 주인이 찾아가지 않을 경우 공매에 넘어가지 않고 모두 폐기되는데, 대부분 세금 부담 때문에 찾아가지 않는다고 한다.
지난해에만 2만 5천보루의 담배가 그대로 버려졌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담배, 의약품 이외에도 체화창고에선 일본 유명 간식인 곤약젤리도 종종 발견할 수 있었다.
컵 모양에 담긴 곤약젤리는 휴대반입금지물품으로 지정돼 있어 일본 여행객들이 기념품으로 사왔다 세관에서 압수당한다고 한다.
이날도 180여개의 곤약젤리가 폐기처분됐다.
◇ 세관에선 폐기물품 바코드로 분류
체화창고의 물품들은 폐기가 결정되면 바로 포장 작업에 들어간다.
담배와 주류를 제외한 물품들은 내용물을 확인할 수 없도록 포대 자루에 넣어 밀봉한다.
중국산 담배를 담은 비닐봉투를 자세히 살펴보니 겉면에 고유번호와 바코드, 그리고 무게가 적힌 이름표가 붙어있었다.
인천세관 수출입통관총괄과 관계자는 "폐기 결정이 난 물품들이 제대로 폐기가 되는지 확인하기 위한 용도"라고 설명했다.
폐기 대상 물품들을 적은 목록들과 실제 폐기를 할 물품들의 이름표를 비교해가며 폐기 여부를 확인한다는 것이다.
폐기 여부가 확인되고, 폐기 업체에선 포대 자루 전량을 트럭으로 실어 날랐다.
그 과정에서 포대 자루에 붙어 있던 바코드는 모두 떼어졌다.
인천세관 관계자는 "바코드를 떼고 나서부턴 포대 자루에 뭐가 들었는지 아무도 모르게 된다"며 "세관 창고에서 용광로에 이르기까지 누군가 중간에 물품을 가져갈 수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 여행자 물품, 용광로에서 재와 가스로
폐기 업체 트럭은 이름표 없이 꽁꽁 싸매진 포대 자루를 싣고 물품들을 태울 용광로로 향했다.
세관 관계자도 이내 다른 차에 타고 트럭 뒤를 따라갔다.
창고 물품이 폐기될 때마다 세관 관계자들은 업체를 따라가 해당 물품들이 완전히 소각될 때까지 모든 과정을 지켜본다고 한다.
5톤 화물 트럭과 세관 직원들이 향한 곳은 인천 서구 석남동의 한 폐기물 처리장.
트럭이 처리장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폐기 작업이 이어졌다.
체화창고에서 온 물품들의 무게를 잰 뒤, 트럭에 있던 폐기 물품들을 지정된 장소로 옮겼다.
폐기 물품들이 모이자 폐기 업체에선 기름을 붓고 물품들과 섞었다. 폐기물들이 용광로에서 잘 타도록 준비하는 작업이었다.
한참 기름을 섞은 뒤 현장을 살펴보니 세관에서 온 물품들은 기름과 섞었을 뿐인데도 전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이내 지게차가 와서는 폐기 물품들을 용광로로 옮겼다.
담배와 가방 등 여행자가 공항에 들고 온 수많은 물건들이 재가 되는 순간이었다.
사무실에 들어가니 폐기물 처리 상황판을 통해 인천공항에서부터 온 폐기물들의 처리 과정을 자세히 확인할 수 있었다.
상황판에 표시된 용광로의 온도는 섭씨 1170도.
최성만 케이비텍 과장은 "평소 1100도에서 1250도 사이로 용광로 온도를 유지하고 있다"며 "용광로에 들어간 폐기물들은 총 두 번에 걸쳐 소각돼 재와 가스만 남는다"고 설명했다.
한 번 여행자 물품을 폐기할 때마다 드는 비용은 5~6백만원 사이라고 한다.
1년으로 치면 6~7천만원가량의 돈이 세금도 안 낸 물품 폐기에 들어가는 셈이다.
인천공항 세관에 더해 전국 세관 6곳까지 합친다면 처리 비용은 한 해 최소 4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물론 4억원에 달하는 폐기 비용이 국민 혈세에서 그대로 나가는 것은 아니다.
관세법 제160조에 따라 폐기 비용 청구서는 해당 물품의 주인에게 돌아간다.
인천세관 관계자는 "이렇게 한 번씩 물품들을 폐기할 때마다 드는 비용이 상당한 만큼 면세초과 물품은 자진해 신고하시길 부탁한다"고 당부의 말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