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굿바이 마이 러브NK: 붉은 청춘'(감독 김소영)은 6년 전 작업을 시작한 김소영 감독의 '망명 3부작' 중 마지막 시리즈다. '모스크바 8진'(정린구·허웅배·한대용·리경진·김종훈·리진황·최국인·양원식) 중 생존해 있던 최국인 감독과 김종훈 촬영감독 두 사람의 증언을 통해 지금까지 접하지 못했던 '망명 북한 청년들'의 이야기를 펼쳤다.
3일 오후, 서울 중구 CGV 명동 씨네 라이브러리에서 '굿바이 마이 러브NK: 붉은 청춘' GV(관객과의 대화)가 진행됐다. 개봉 후 처음 열린 GV는 변영주 감독이 모더레이터를 맡았고, 방은진 감독, 이숙경 감독, 박찬옥 감독 등 여러 여성 감독들도 관객으로 참석했다.
김 감독은 '굿바이 마이 러브NK: 붉은 청춘' 전, 안산 땟골 마을에서 타슈켄트라는 식당을 운영하기 시작한 고려인 김알렉스와 부인 허스베타 씨의 이야기를 담은 '눈의 마음: 슬픔이 우리는 데려가는 곳'(2014), 강제 이주라는 비극적 현실 속에서도 노래와 춤으로 모두를 위로했던 두 디바 방 타마라와 이함덕 이야기 '고려 아리랑: 천산의 디바'(2017)를 선보였다.
김 감독의 '망명 3부작'은 한편으로 '고려인 시리즈'로 부를 수 있다. 그동안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던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에 사는 한국인인 '고려인'의 삶을 성실하고 정교하게 담아낸 덕이다.
변 감독은 당초 말했던 '엄청난 소재', 즉 망명한 북한 청년들을 본격적으로 다루기까지 두 편을 '돌아온' 연유를 물었다.
그러자 김 감독은 "제가 갔을 때 여덟 분 중 여섯 분이 돌아가시고 두 분이 돌아가셨다. (이 자체가) 어떤 압도적인 비극일 수 있었고, 사실 이걸 어떻게 영화로 만들 수 있을까 싶었다. 그래서 3부작을 생각한 거다. 이분들 이야기로 가기 위해서는 중앙아시아의 예술과 역사를 알아야겠다 싶더라. 3부작이라는 큰 그물망 속에서 이분들 이야기를 따라간 것"이라고 답했다.
김 감독은 "(기획을 처음 시작한) 2013년 제가 하고 싶었던 건, 한국 영화사에서 전혀 알려지지 않은 궤적을 찾는 것이었다"며 "모스크바 국립영화학교 다닌 8진을 알게 되고, (그중) 최국인 감독에 굉장히 매혹됐고, 2014년에 가서 간신히 만났다"고 설명했다.
김 감독은 "한국이나 북한이라는 이런 특별한 상황 속에서, 영화로 세상을 보고 영화로 세상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하니까 그분이 알아듣고 고맙다고 하셨다"고 전했다.
변 감독은 왜 8진을 다른 것도 아닌 '영화학교'에 보냈는지 물었고, 김 감독은 "'영화가 제일 중요한 예술이다'라는 레닌의 강령이 북한에서도 굉장히 강력하게 작용했다"며 "(북한은) 가장 뛰어난 영웅을, 아주 엘리트 군단으로 모스크바 국립영화학교에 보낸 것"이라고 답했다.
'굿바이 마이 러브NK: 붉은 청춘'은 8진 멤버들이 남긴 편지글과 일기, 사진에서부터 직접 만든 영화와 희곡 등 풍부한 자료가 나오는 작품으로도 눈길을 끈다. 다큐멘터리에 삽입된 자료 중 가장 좋았던 작품을 묻자, 김 감독은 최국인 감독의 '용의 해'를 들었다.
김 감독은 "작년 부산영화제에서도 '고려시네마'로 상영됐는데, '용의 해'는 소련당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의 소수민족 정치를 비판하는 영화였다. 당시 유명 감독이 있었지만 사실상 최국인 감독이 다 했다고 한다"며 "위구르족의 패배로 끝나지만, 엔딩 부분에 최국인 감독이 기가 막힌 걸 하셨다. 위구르 사람들이 청나라에 저항한 해를 다 기록한 것이다. 프로파간다 영화인데 또 저항 영화였다. 굉장한 액션 대작이고 만든 솜씨도 매우 좋았다"고 설명했다.
변 감독은 '굿바이 마이 러브NK: 붉은 청춘'의 매력으로 '이미지로 구축하는 도입부'를 들었다. "만약 지금 한국에서 넌내러티브한(nonnarrative) 영화를 만드는 친구들이 있다면, 정말 어떻게 베낄까 하는 생각으로 와도 좋으니까 꼭 봤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고 평할 정도로.
변 감독은 "전 세계의 모든 다큐는 거의, 소재의 시사성이나 캐릭터와의 관계성으로 서사를 만든다. 그런데 김소영 감독은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이런 이미지를 끊임없이 쫓고 있기 때문이고, 그래서 난 이런 이미지를 만들어'라고 보여준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안산에서 만난 김알렉스와 고려인에 대한 쓰인 논문을 보면서 실마리를 얻었지만, 사실 너무 힘들었다. 이걸 이해하고 영화로 만드는 것은"이라며 "역사의 파편을 하나의 프리즘으로 구현하고 싶었고, (유리 조각은) 역사의 빛을 가리키는 프리즘적인 파편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이어, "중앙아시아 천산에서 보면 석양이 너무 아름답더라. 우리 촬영감독이 제가 하자고 하면 다 하는데, 어느 날은 내려가자고 해도 석양이 너무 좋다고 계속 있는 거다. 그러다 내려갔더니 이 파편들이 있는 거다. 유리 파편은 제가 만든 게 아니고, 그 중앙아시아 예술가들이 산에 개념 작업을 해 놓은 것"이라고 부연했다.
김 감독은 "촬영감독이 석양 찍고 있을 때 저는 뭔가를 느낀 거다, 진짜. 그다음 날 다시 가서 찍었다"며 "제가 갖고 있던 개념 이미지가 천산에 형상화돼 있던 것"이라고 밝혔다.
김 감독이 주목한 '고려인'이, 특히 '굿바이 마이 러브NK: 붉은 청춘'이 현재 우리와 어떻게 연결됐는지 묻는 관객도 있었다. 김 감독은 "구소련 지역과 중앙아시아 지역은 (우리) 인식의 오지다. 고려인들과 북한인들을 통해 다른 세계성을 펼쳐 보이려는 생각이 있었다"고 말했다.
'굿바이 마이 러브NK: 붉은 청춘'은 이날 GV를 시작으로 릴레이 GV를 이어간다. 오늘(4일) 오후 3시에는 서울 종로구 인디스페이스에서 시네마달 김일권 대표가 GV를 진행했다. 오는 12일 같은 장소에서는 정지혜 평론가가, 14일 부천 판타스틱 큐브에서는 '현실문화연구' 김수기 대표가, 17일 인디플러스 천안에서는 인디플러스 천안의 이호금 프로그래머가 함께할 예정이다.
현재 '굿바이 마이 러브NK: 붉은 청춘'은 서울 8곳(인디스페이스, 아리랑시네센터, 아트하우스 모모, CGV 압구정, CGV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 롯데시네마 월드타워, 메가박스 코엑스, 메가박스 신촌), 경기·인천·강원 7곳(영화공간 주안, 판타스틱 큐브, 헤이리시네마, 추억극장 미림,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 롯데시네마 주엽, 롯데시네마 부평), 광주·전라 3곳(광주극장, 광주독립영화관 GIFT, 목포 시네마라운지MM), 대전·충청 2곳(대전아트시네마, 인디플러스 천안), 대구·경북 2곳(오오극장, 동성아트홀), 부산·경남 3곳(인디플러스 영화의전당, 씨네아트 리좀, CGV 서면) 등 총 25곳에서 상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