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5월 1일부터 '레이와' 시대. 한일관계를 중시하셨던 아키히토 천황님께 감사드립니다. 즉위하실 나루히토 천황님께서는 작년 3월 브라질리아 물포럼에서 뵙고 꽤 깊은 말씀을 나누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한일양국이 새로운 우호협력관계를 구축하도록 지도자들이 함께 노력합시다." (이낙연 국무총리)
'헤이세이'에서 '레이와'로 넘어가는 일본 연호(年號)가 국내에서 도마 위에 올랐다. 정치인부터 연예인까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일본에 대한 각계 언급에 뜨거운 논쟁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달 30일 사나가 올린 이 SNS 글에는 19만2천개의 댓글이 달려 네티즌의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한국 아이돌 그룹에 속한 일본인 멤버임에도 역사의식이 부재하다는 비판과 일본인의 통상적인 시대 구분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팽팽히 맞섰다.
이낙연 총리의 발언에도 논란은 이어졌다. 일각에서는 굳이 일본의 연호 변경을 언급할 이유가 있느냐는 지적부터 '천황님'이라는 높임말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자 국무총리로서 할 수 있는 외교적 발언이었다는 반박이 뒤따랐다.
연호는 군주제 국가에서 임금이 즉위하는 해에 붙이는 이름이다. 대한제국 시절에는 우리 역시 연호를 사용했으나 지금은 사라졌다.
1993년에 발행된 서울대 비교문화연구소 논문에 따르면 일본의 연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평화 헌법' 제정과 1889년 제정된 '황실전범'(일본 황실의 제도와 구성에 대해 정해놓은 일본의 법률)이 폐지됨에 따라 그 법적 근거를 상실했으나 1979년 연호법에 의해 법제화돼 일본 내 공문서에는 모두 연호를 사용하게 됐다.
그러나 공식과 비공식 유무를 떠나 천황제 국가인 일본에서 연호는 2천년 간 이어진 고유한 문화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들에 따르면 현재 일본의 연호는 국내 공문서 등에만 쓰일 뿐, 국제 외교문서에는 쓰이지 않는다.
박훈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교수는 CBS노컷뉴스에 "일본인에게 연호는 그냥 일상적인 감각이다. 2천년 간 써오던 시대 구분인데 그럴 수밖에 없다. 트와이스 사나의 발언은 이렇게 해석할 수 있고, 이낙연 국무총리의 발언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가 국교를 가지는 나라인데 그 나라에 맞는 칭호를 불러야지 어떻게 다른 칭호를 붙여서 부를 수가 있겠나"라고 이야기했다.
남기정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교수는 "천황제가 있기에 연호가 존재하는 것인데 전후 '평화 헌법'에 보면 일본의 천황은 정치 행위를 할 수 없고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 남게 된다"면서 "이런 천황의 역할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있었던 것이기 때문에 그에 따른 '연호 문화' 역시 일본이라는 국가의 존재를 인정한다면 부정하기 어려운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의 연호는 결국 천황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연관성을 가진다. 실제로 일본 내에도 천황제 폐지론이 존재한다. 문제는 과연 천황제 속에서 하나의 국가적 상징으로 법제화된 '연호'를 일본 군국주의의 산물로 볼 수 있느냐다.
남기정 교수는 "피해국가의 국민으로서 다시 과거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일본에 문제제기를 할 수는 있지만 일본 국민의 의사 전체를 부정하는 방법 말고 다른 방식으로 해야 하지 않나 싶다"라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전범국가인 일본에 대해서만 배우고, 전후 일본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1998년 이뤄진 한일공동선언을 보면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와 반성이 들어가 있다. 아베 신조 총리 정권이 어떤 망언을 해도 이에 대해서는 부정한 적이 없기 때문에 서로의 우방국으로 남아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에서는 전후 시작된 상징천황제가 전범국가인 일본에게 면죄부가 됐고, 아베 신조 총리 정권의 문제점까지 은폐시키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렇기 때문에 천황제의 상징인 '연호' 역시 피해국가에는 비판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김민철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일본은 천황제를 빼놓고 설명하기 어려운 국가이기 때문에 이를 문화적 특수성으로 볼 수도 있다"면서도 "아베 (신조 총리) 정권은 연호 등 천황제 산물을 활용해 문제를 은폐시키거나 상징적인 구심체를 만들고자 한다"고 꼬집었다.
이어 "상징천황제가 시작되며 당시 히로히토 천황은 전범 재판을 받지 않았고, 이것이 일본이 동아시아에 했어야 하는 사죄를 희석시키거나 역사적 감각을 후퇴시키는 역할을 했다는 우려가 있다. 전쟁 책임을 회피한다는 측면에서 연호를 통해 천황제라는 시스템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는 가능하다고 본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