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ESS 기업의 1분기 실적은 고꾸라졌고 관련 중견·중소기업은 생존의 기로에 놓였으며, 세계시장에서 기술력을 인정받던 한국의 지위도 위태롭게 됐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다음 달 초 정확한 화재 원인과 함께 안전대책, ESS 산업 생태계 육성방안을 동시에 발표한다는 계획이지만, 이미 피해가 커질 대로 커진 ESS 산업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 또다시 미뤄진 'ESS' 화재원인 결과 발표
ESS 산업이 고사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자 산업부는 ESS 화재사고 원인조사의 중간 진행 상황을 공개했다.
산업부는 지난해 12월 구성돼 활동 중인 ‘민관합동 ESS 화재사고 원인조사위원회’가 총 21건의 ESS 화재 원인 규명과 관련한 시험·실증 등을 조속히 완료해 오는 6월 초 조사 결과를 발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2일 밝혔다.
애초 정부는 조사 결과 발표를 3월로 예고했으나 연기했고, 이번에 다시 6월로 미뤘다.
산업부는 “ESS는 화재 발생 시 전소되는 특성이 있고 다수 기업과 제품이 관련돼 있어 원인 규명에 상당한 시간 소요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총 19명의 분야별 전문가들이 투입돼 현장조사·기업면담, 데이터 분석·검토 등 60여 차례의 회의를 거쳤음에도 또다시 결과 발표가 연기된 것에 대해 업고계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최근 ESS 관련 기업들의 ‘반 토막 실적’에 정부가 책임을 회피하려 중간발표를 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 업계 피해 '눈덩이'…소생 가능할까
ESS 시장의 급격한 성장세에 맞춰 ESS에 대한 투자를 늘렸던 업계는 화재 후 시설 운영이 어려워지면서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지난달 30일 기준 전국 ESS 시설 1천490곳 중 35.0%에 해당하는 522개가 가동을 멈춘 상황. 지난 3월에는 제조사의 자체 가동중단 조치로 765개 사업장이 가동을 중단했다.
올 들어 지난달 말까지 국내 ESS 신규 설치 발주는 사실상 한 건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ESS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온 주요 대기업은 올해 1분기 실적이 '반토막'이 났다.
삼성SDI는 올 1분기에서 영업이익이 전분기보다 52.2% 감소했고, LG화학은 1분기 전지사업 부문에서 계절적 요인과 함께 ESS 화재에 따른 일회성 비용이 발생하면서 적자를 냈다.
그마저도 자금 여력이 없는 중소·중견업체는 기업의 생존까지 위협받는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업계에서는 화재조사가 늦어지는 데 대한 볼멘소리가 계속 나오고 있다. 화재 원인과 안전대책이 나오기 전에는 섣불리 공장을 재가동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 제동걸린 새로운 먹거리 'ESS' … 제자리를 찾을 지 미지수
ESS(Energy Storage System)는 생산된 전기를 배터리에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내보내는 장치다.
밤이나 바람이 없는 날 등 태양광과 풍력이 전기를 생산할 수 없을 때도 전력을 공급할 수 있어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에 꼭 필요하다.
국내 ESS 시장은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에 발맞춰 빠르게 성장했다.
미국 에너지부(DOE) 통계에 따르면 2016년 말까지 전 세계 ESS 설치용량을 살펴볼 때 미국이 452.6MWh로 가장 많았고, 한국은 142.4MWh로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ESS가 설치된 국가로 집계됐다.
산업부가 집계한 지난해 상반기 국내 ESS 설치량은 1.8GWh로 전년 동기(89MWh)보다 20배 이상 늘었다.
산업부는 2018년 기준 세계 ESS 시장에서 국내업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80%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세계시장의 확대, 정부의 에너지전환 정책 기조 그리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던 업계의 요구 등 삼박자가 맞아떨어지면서 ESS 산업은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지만 이제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지경이 됐다.
LG화학, 삼성SDI 등 국내 기업들이 지닌 ESS 배터리 기술은 세계에서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지만, 국내 설치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 지속되면서 글로벌 ESS 시장에서 한국의 지위도 위태롭다.
한 ESS 관련 기업 관계자는 "국민안전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원인 규명 작업은 필수적이지만 이렇게 장기간 산업 자체가 '혼수상태'에 빠지는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글로벌 경쟁력에도 큰 차질이 우려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