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 화재 조사결과 발표 6월로 또 연기…경쟁력 상실 우려

지난 22일 오후 5시 30분께 강원 삼척시 근덕면 궁촌리 한 태양광 발전설비 ESS에서 불이 나 119 대원들이 불을 끄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자료사진)
미래 신성장동력으로 여겨졌던 에너지저장장치(ESS) 산업이 '원인 모를' 화재 사태로 완전히 멈춰섰지만 정부의 화재원인 조사 결과 발표는 늦어지고만 있다.

주요 ESS 기업의 1분기 실적은 고꾸라졌고 관련 중견·중소기업은 생존의 기로에 놓였으며, 세계시장에서 기술력을 인정받던 한국의 지위도 위태롭게 됐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다음 달 초 정확한 화재 원인과 함께 안전대책, ESS 산업 생태계 육성방안을 동시에 발표한다는 계획이지만, 이미 피해가 커질 대로 커진 ESS 산업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 또다시 미뤄진 'ESS' 화재원인 결과 발표

ESS 산업이 고사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자 산업부는 ESS 화재사고 원인조사의 중간 진행 상황을 공개했다.

산업부는 지난해 12월 구성돼 활동 중인 ‘민관합동 ESS 화재사고 원인조사위원회’가 총 21건의 ESS 화재 원인 규명과 관련한 시험·실증 등을 조속히 완료해 오는 6월 초 조사 결과를 발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2일 밝혔다.

애초 정부는 조사 결과 발표를 3월로 예고했으나 연기했고, 이번에 다시 6월로 미뤘다.

산업부는 “ESS는 화재 발생 시 전소되는 특성이 있고 다수 기업과 제품이 관련돼 있어 원인 규명에 상당한 시간 소요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총 19명의 분야별 전문가들이 투입돼 현장조사·기업면담, 데이터 분석·검토 등 60여 차례의 회의를 거쳤음에도 또다시 결과 발표가 연기된 것에 대해 업고계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최근 ESS 관련 기업들의 ‘반 토막 실적’에 정부가 책임을 회피하려 중간발표를 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 업계 피해 '눈덩이'…소생 가능할까

ESS 시장의 급격한 성장세에 맞춰 ESS에 대한 투자를 늘렸던 업계는 화재 후 시설 운영이 어려워지면서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지난달 30일 기준 전국 ESS 시설 1천490곳 중 35.0%에 해당하는 522개가 가동을 멈춘 상황. 지난 3월에는 제조사의 자체 가동중단 조치로 765개 사업장이 가동을 중단했다.

올 들어 지난달 말까지 국내 ESS 신규 설치 발주는 사실상 한 건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ESS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온 주요 대기업은 올해 1분기 실적이 '반토막'이 났다.

삼성SDI는 올 1분기에서 영업이익이 전분기보다 52.2% 감소했고, LG화학은 1분기 전지사업 부문에서 계절적 요인과 함께 ESS 화재에 따른 일회성 비용이 발생하면서 적자를 냈다.


그마저도 자금 여력이 없는 중소·중견업체는 기업의 생존까지 위협받는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업계에서는 화재조사가 늦어지는 데 대한 볼멘소리가 계속 나오고 있다. 화재 원인과 안전대책이 나오기 전에는 섣불리 공장을 재가동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 제동걸린 새로운 먹거리 'ESS' … 제자리를 찾을 지 미지수

ESS(Energy Storage System)는 생산된 전기를 배터리에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내보내는 장치다.

밤이나 바람이 없는 날 등 태양광과 풍력이 전기를 생산할 수 없을 때도 전력을 공급할 수 있어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에 꼭 필요하다.

국내 ESS 시장은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에 발맞춰 빠르게 성장했다.

미국 에너지부(DOE) 통계에 따르면 2016년 말까지 전 세계 ESS 설치용량을 살펴볼 때 미국이 452.6MWh로 가장 많았고, 한국은 142.4MWh로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ESS가 설치된 국가로 집계됐다.

산업부가 집계한 지난해 상반기 국내 ESS 설치량은 1.8GWh로 전년 동기(89MWh)보다 20배 이상 늘었다.

산업부는 2018년 기준 세계 ESS 시장에서 국내업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80%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세계시장의 확대, 정부의 에너지전환 정책 기조 그리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던 업계의 요구 등 삼박자가 맞아떨어지면서 ESS 산업은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지만 이제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지경이 됐다.

LG화학, 삼성SDI 등 국내 기업들이 지닌 ESS 배터리 기술은 세계에서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지만, 국내 설치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 지속되면서 글로벌 ESS 시장에서 한국의 지위도 위태롭다.

한 ESS 관련 기업 관계자는 "국민안전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원인 규명 작업은 필수적이지만 이렇게 장기간 산업 자체가 '혼수상태'에 빠지는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글로벌 경쟁력에도 큰 차질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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